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지난해 말 서울시는 ‘반포아파트지구’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놀라지 마시라. 아파트 동네인 반포의 아파트를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도시계획상 ‘아파트지구’로 지정한 것을 이제 철회한다는 것이다. ‘아파트지구’라는 도시계획 수단이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대서울 도시기본계획도,1966. 인구 500만 명을 위한 계획. 1963년 편입된 영동지역(서초, 강남 등)의 개발을 포함하여 거의 오늘날 서울의 범역(範域)과 유사하다. 영등포, 마포, 성수동, 대치동 등에 매우 큰 공업지역(회색)이 있는 데 비해 주거지(노란색)는 적다. 인구 천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낭만적 도시계획이었다. 자료: 도시계획전시회 유인물 ‘서울은 이렇게 변한다’(도시기본계획의 줄거리)에 지명 부기.
대서울 도시기본계획도,1966. 인구 500만 명을 위한 계획. 1963년 편입된 영동지역(서초, 강남 등)의 개발을 포함하여 거의 오늘날 서울의 범역(範域)과 유사하다. 영등포, 마포, 성수동, 대치동 등에 매우 큰 공업지역(회색)이 있는 데 비해 주거지(노란색)는 적다. 인구 천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낭만적 도시계획이었다. 자료: 도시계획전시회 유인물 ‘서울은 이렇게 변한다’(도시기본계획의 줄거리)에 지명 부기.

 

서울의 기능분산 구상, 1966. 입법, 사법, 행정과 대통령부 등 주요 국가기관을 강남과 강북으로 나눠 배치해 다핵도시와 인구 분산을 추구하고 있다. 자료:‘서울은 이렇게 변한다’의 기능분산 부분.
서울의 기능분산 구상, 1966. 입법, 사법, 행정과 대통령부 등 주요 국가기관을 강남과 강북으로 나눠 배치해 다핵도시와 인구 분산을 추구하고 있다. 자료:‘서울은 이렇게 변한다’의 기능분산 부분.

1970년 서울의 인구는 543만 명이다. 245만 명이던 1960년에 비해 10년 사이에 어림잡아 2배 이상 증가했다. 매년 구(區)하나 정도 인구(30만 명)가 늘어나고 있었다. 모두 어디서 살았을까, 또 앞으로 어디서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아파트공화국은 시작되었다. 1966년 8월 15일 김현옥 서울시장은 부임한 지 4개월 만에 ‘대서울도시기본계획’이라는 최초의 서울시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시청 앞 광장에 전시관을 짓고 시민들에게 공개하였다. 20년 후(1987년)를 내다보는 장기적 계획에서 목표 인구를 500만 명으로 설정했다. 서울 인구집중을 억제해야 한다는 의지에서 잡은 방어적 목표지만 인구 수는 겨우 4년 후(1970년) 벌써 목표를 넘어섰다.

국토의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억제라는 중요한 과제와 별도로 서울로, 서울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우선 집을 마련하는 것은 당시 정권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결국 해답은 당시 흔히 지어지던 단독주택보다 밀도가 아주 높은 공동주택, 아파트였다. 그러나 아파트는 단독주택을 짓는 대지를 여러 개 모은다고 지을 수 있는 주택형이 아니다. 더구나 공동주택을 대량으로 빠르게 짓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이곳저곳에 한 동(棟)씩 짓는 방식이 아니라 단지식 개발이 필요하며 이는 대규모 택지를 요구했다.

영동아파트지구 종합개발계획(1976년)의 아파트지구분포도. 영동제1지구(현 서초구, 1968년 시행인가), 제2지구(현 강남구, 1971년 시행인가)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의 한강변과 고속도로변 신개발지들이 대거 지정되었다. 자료:김혜영, 이상헌, 영동아파트지구계획에서 근린주구론의 적용과 한계, 도시설계 21권 6호(2020.12.),124쪽.
영동아파트지구 종합개발계획(1976년)의 아파트지구분포도. 영동제1지구(현 서초구, 1968년 시행인가), 제2지구(현 강남구, 1971년 시행인가)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의 한강변과 고속도로변 신개발지들이 대거 지정되었다. 자료:김혜영, 이상헌, 영동아파트지구계획에서 근린주구론의 적용과 한계, 도시설계 21권 6호(2020.12.),124쪽.

정부는 국회 상임위원회 국정현황보고(1975.3.)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김재규 건설장관은 서민주택 건설을 위한 택지 공급대책으로 도시계획에 아파트지구를 신설하고 택지 개발을 위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재검토하여... 집단체비지제도를 확립하며...”(조선일보,1975.3.14.). ‘미관지구’, ‘고도지구’ 등 일정 지역의 특성을 관리하는 도시계획수단인 ‘지구(地區)’를 아파트를 집단적으로 짓기 위하여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다음 해(1976.1.) ‘아파트지구’는 도시계획법 시행령에 의연하게 자리 잡게 된다.

이는 아마도 세계 최초이며 유일한 것이 틀림없다. 아파트지구 내 주택용지에는 아파트 이외의 건축은 허용되지 않았다(건축법시행령,1976.4). 드디어 아파트공화국의 터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더불어 아파트공화국의 실세인 ‘아파트단지’도 그 모습을 구체화하고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반포아파트지구(이촌동에서 바라봄). 아파트지구답게 한강변이 온통 아파트로 채워져 있다. 근년에 재건축을 통하여 강변 경관이 초고층 위주로 변하고 있어 답답함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가운데 교량은 반포대교. 사진: 김기호, 2021
반포아파트지구(이촌동에서 바라봄). 아파트지구답게 한강변이 온통 아파트로 채워져 있다. 근년에 재건축을 통하여 강변 경관이 초고층 위주로 변하고 있어 답답함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가운데 교량은 반포대교. 사진: 김기호, 2021

그러나 ‘아파트지구’의 미래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아파트지구 내에 어떻게 큰 대지를 만들어야 하는지, 누가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할 것인지’라는 실제적 과제가 남아 있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2)에서 “주택계획의 요체는 민간의 주택 투자를 촉진하도록 정책을 유도하는 데 있다”(주택부문 계획 설명 146번)고 판단한 정부는 민간 건설업계의 참여를 독려하도록 방향을 정했다. 사업성이나 자금 동원 등으로 주저하던 건설업계는 세금 감면이나 대지를 크게 만드는 필지 규합의 편의 등 인센티브 제공과 함께 서서히 아파트 건설로 들어섰다.

당시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샐러리맨 등 신중산층에게 아파트가 환영을 받으며 아파트는 건설산업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등장하였다. 주택공사 등 공공부문과 대도시 민간 아파트의 건설은 이제 전국으로 거침없이 그 지경을 넓혀가며 이미 주택 수로는 1990년대에 가장 많은 주택형이 되었으며 2018년에는 거주세대수에서 50%(주택 수에서는 62.3%, 2019)를 넘어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대표 주거형이 되었다. 드디어 아파트가 집권당이 된 공화국에 우리는 살게 되었다.

반포아파트지구 내 아파트단지들. 30층 내외의 재건축 아파트가 12층의 기존 아파트와 대조를 이루며 다른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22
반포아파트지구 내 아파트단지들. 30층 내외의 재건축 아파트가 12층의 기존 아파트와 대조를 이루며 다른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22

현대 우리나라 도시계획 정책 중 최고의 성과를 거둔 ‘아파트지구’는 이제 사라지고 있다(2003년 법에서 ‘아파트지구’ 삭제. 2022년 ‘반포아파트지구’ 지정 폐지). 그러나 아파트 재고는 앞으로 50년 100년을 넘어 계속 우리 공간환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아파트독재'에서 벗어나 우리 주거생활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며 한편으로 좀 더 포용적인 아파트생활문화를 추구하고 다른 한편 다른 주택유형에서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 사람마다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주거를 선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살 만한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 아파트들의 재건축도 높이나 주택 수의 증가에 얽매이기보다 어떻게 사람들의 개인적, 사회적 삶을 풍부하게 하고 인간적 도시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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