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지난주 미국 정부가 구글을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디지털광고 시장에서 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2020년 이후 연방 및 주 정부가 구글을 유사한 혐의로 제소한 것이 다섯 번째이다. 구글뿐만 아니라 아마존, 애플 등 미국의 5대 하이테크 대기업, 즉 빅테크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각종 소송과 규제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공정경쟁 저해와 이용자 개인정보 침해가 이유다.

알리바바, 텐센트, 틱톡 등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도 약 3년 전부터 된서리를 맞았다. 알리바바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계열사 앤트그룹은 중국의 최대 결제 수단인 알리페이의 운영사인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핀테크기업으로 알려졌다. 금융산업, 특히 소비자금융이 앞섰던 한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중국에서 현금결제가 사라진 것은 전적으로 알리페이 때문이다. 10여 년 전 고국을 다녀온 중국 유학생들이 위안화 현금을 쓰려다 구박받았다는 경험담을 듣고 무척 신기해했었다.

빅테크가 구박을 받고 있는 것은 미국이나 중국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방식뿐만 아니라 정부 개입의 이유에 차이가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2020년 10월 공식 석상에서 중국의 금융규제를 정면 비판한 후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중국 당국은 이 일 직후 예정되었던 앤트그룹의 상하이와 홍콩 증시 동시 상장을 통한 기업공개(IPO)를 중단시켰다. 40조 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대형 기업공개여서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터라 갑작스런 당국의 취소 조치는 충격적이었다.

중국 정부는 비슷한 시기에 무분별한 확장으로 부동산 과열을 조장하던 대형 부동산개발회사들에도 철퇴를 가했다.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은 일견 미국의 19세기 말, 20세기 초 상황을 연상시켰다. 19세기 후반 전대미문의 성장과 부호들을 낳은 도금시대가 끝난 후 미국 정부는 독점적 거대 트러스트를 해체하는 산업 및 기업 개혁 조치를 밀어붙였다. 고삐 풀린 민간 대기업에 제동을 가했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이며 차이점이 많다.

중국의 빅테크 때리기는 당시 시진핑 주석이 소득격차 해소를 목표로 하는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내세우며 시작되었다. 소득격차 해소와 빅테크 때리기의 관계는 고수들의 선문답 같아 이해가 어렵다. 시장경제 체제의 나라에서 소득격차 해소를 위해서 정부는 지출과 과세를 통한 소득보전 및 고용 확대, 근로자 교섭권 강화 등을 동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국도 반독점, 소비자 정보보호를 내세우나 시정을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가를 보면 진정성이 의심된다. 미국의 과거 반(反)트러스트 정책은 철도, 철강, 통신 등 대상이 된 독점 대기업의 쪼개기로 이어졌다. 작금의 미국 하이테크 대기업 정책도 기업 분할을 통한 독점 해소를 중요한 해결방안으로 상정하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국의 해결방안으로 보인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마윈은 앤트그룹의 대주주 지배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또 당국은 알리바바와 텐센트 계열사의 ‘황금주’를 확보했거나, 할 예정이다. 황금주는 지분 비율과 무관하게 핵심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임원 선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별한 종류의 주식으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사용되곤 한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빅테크 때리기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높아져 미국과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가가 최근 크게 올랐다.

미국과 유럽의 빅테크 옥죄기는 이들의 시장 지배력을 낮추고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이 목표이다. 중국의 정책은 빅테크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목표로 보인다. 이미 사회적 통제를 위해 중국 정부는 각종 하이테크 수단을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알리바바나 알리페이의 방대한 소비자 정보를 장악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런 비교는 ‘중국몽’과 결이 다른 ‘미국몽(American Dream)’으로까지 연결해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며 중국몽을 중요한 통치 비전으로 내세웠는데, 국가의 번영과 중국의 역사적 위상 회복을 강조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중국은 경제력보다는 군사력이 더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이를 패권 국가로 부활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공해(公海)였던 동중국해를 내해화(內海化)하려는 것이 한 예다. 중국 당국은 중국몽이 모든 중국인의 공통된 꿈이라고 한다. 이런 거대한 과제는 공산당 주도로 국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매진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집단적, 또는 전체주의적 목표이다.

미국몽은 누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비전이 아니며 의미도 제각각이다. 원래 고향에서 탄압과 가난에 시달렸던 여러 나라의 이주민들이 찌든 모습으로 대양과 대륙을 건너 미국으로 향하며 품었던 ‘거기에는 일할 기회가 많고, 잘살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였다. 또 ‘풍요한 상류층의 삶’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의미도 있다. 국력을 결집하는 비전이기에는 지도자도, 뒷받침할 역사도 없어 허술하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약속한다.

더 두고보아야겠으나 허접한 꿈의 나라가 전체주의적 거대 비전의 나라보다 더 잘산다. 집단과 개인 사이의 우리 사회의 균형추가 어떠한지 살펴볼 때다. 과연 한국몽은 무엇이며 있기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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