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 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나의 이력과 사진을 걸고 칼럼이 게재됐다. 글을 접한 주변 사람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10대에 독서 활동을 극도로 꺼렸고 20대에 접어들자 대학교 도서관 책을 끼고 살기 시작하더니, 30대에 세 권의 책을 출간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평생 책과 드라마틱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기에 이번에 칼럼을 연재한다는 소식에 그들은 ‘아니 네가?’ 하는 마음으로 적잖이 당황했으리라.

하여간 요즘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일단 글을 뱉고 보는 편이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와 같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내가 쓴 글은 내가 주인이니까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다.‘라는 아집을 한껏 내세운다. 쉽게 적은 글은 두 번 세 번을 거듭 다듬는다. 그렇지만 마감이라는 괴물 같은 존재 앞에서 마음이 졸기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글을 연재한 작가들을 참고하려고 젊은 작가의 대중문화 평론, 문화 비평에서부터 버트런드 러셀의 칼럼을 엮은 런던통신까지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들은 나와 너무도 달랐다. 본인의 주관이 뚜렷하게 돋은 글 안에 통찰력이라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글쓰기 앞에서 용감하다는 본인은 스스로 ’참 오만했구나’라는 반성은 각설하고, 글이 써지지 않는 통에 만화책을 펼쳤다. 글을 적는 동안 동요하지 않던 손가락이 ‘슬램덩크’를 읽을 때만큼은 책장을 넘기느라 빨라졌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꽤 빠져들었다.

‘퍽, 파악, 끼익, 콱, 팟, 터억’

슬램덩크 속 글자의 8할은 의성어라고 보면 된다. 종이라는 물성으로도 박진감 넘친다는 감상평이 어울릴까 싶지만 이 만화책이라면 가능하다. 북산 팀의 농구 경기가 어른 손바닥만 한 책 안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걸 그린 작가가 이내 부러워졌다. 그는 원하는 바대로 글을 썼고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잘 구성된 한 편의 스토리를 짰고 끝내 1억 7000만 부가 팔렸다. 그는 잘 팔리는 작가이자 뛰어난 기획자이다.

계획대로라면 글쓰기를 끝내고 올해 첫 100만 관객을 넘긴 주인공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자 했으나 시간이 가도 도무지 글이 써질 기미가 안 보였다. ’슬램덩크‘ 영화 관객 4명 중 3명이 3040대라는 데이터가 보여주듯, 영화관의 객석은 나처럼 피로한 어른들로 하나둘 채워졌다.

무적의 산왕으로부터 승리의 기세를 가져온 강백호의 왼손은 그저 거들 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내 왼손은 팝콘을 입으로 나르느라 분주했다. 달고 짠 팝콘이 입안에서 포각포각 깨졌고, 나는 작품을 완성한 감독이 누군지 몰라도 부러웠다. 개봉 2주 만에 200만 가까운 관객을 이끈 능력 있는 기획자이다. 최근에 원작과 결말을 제대로 못 살렸다며 호되게 비난을 받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비하면 '슬램덩크‘ 영화는 전체 분량은 차치하고 경기 하나로 승부하면서 '용두용미(龍頭龍尾)'의 표본이라는 칭찬이 자자했다.

알고 보니 ’슬램덩크‘의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가 이번 영화감독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이 됐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농구)을 잘 만들었고(만화책), 30년 뒤 또 한 번의 기회(영화 각본, 제작)가 주어진 것이다. ’슬램덩크‘가 1990년대에 농구를 사랑했던 3040 남성들에게 진한 추억과 향수를 가져다줬다면, 서투른 기획자인 나에게는 부러움을 한가득 안겨다 준 셈이다.

그는 농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수십 년간 사랑받는 스포츠 만화책을 만들었다. 강백호가 외친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라는 명대사는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10대에 농구부였다. 훈련 뒤에도 끝까지 남아 드리블과 기본기를 연습할 정도로 농구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던 167센티미터의 가드 포지션의 연습생이었다고 전해진다. 만화책 속에 얹은 해박한 농구 지식과 경기 분석력은 작가의 세세한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심지어 그의 농구 사랑은 '농구인 장학금 지원 사업'으로 이어지며 일본의 농구 인재 육성에도 기여했을 정도다.

그는 30년 묵은 한 소재로 또 한 번 변주를 꾀했다. 원작 팬들은 N차 관람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흔히 ’슬램덩크‘는 강백호와 농구 이야기로 알려졌지만 감독은 사람들의 기대를 의도적으로 빗나가게 했다. “원작을 그대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 싫었다.”며 새 이야기를 발굴했다. 영화 속에서 168센티미터의 포인트가드 송태섭은 불리한 신체 조건으로 힘겹게 상대와 맞붙는데, 산왕전에 임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과거의 가족사 플래시백을 통해 후반부로 갈수록 빌드업된다. 강백호나 정대만의 인기에 비해 주목을 덜 받은 인물이지만,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서사를 갖고 있었다는 게 영화를 통해 드러났다. 영화는 영화대로, 원작은 원작대로 좋았다. 기존의 것에 갇히지 않는 작가의 창조성이 이번에 개봉한 영화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은 점은 자각하고 고민하는 5명의 캐릭터가 농구를 대하는 자세에 있다. 매 경기 자신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만나 자신의 전략을 간파당한다. 당황은 잠시, 상대를 파악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 낸다. 결국, 자신의 강점을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형 캐릭터들로부터 팬들은 동질감이 짙어진다. 비록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인물에 불과하지만 내심 나 역시 현실의 고민 앞에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도 모르게 그리게 된다.

매번 글쓰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마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가 덜컥 논설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남자 정대만처럼 계속해서 정면 돌파할 것이다. 실력의 밑천이 드러나도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기본기를 착실하게 쌓아 4개월 만에 반짝 성장을 일군 초짜 강백호처럼 나도 칼럼 분야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 한계는 팝콘처럼 포각포각 깨어질 것이다. 두렵다고 피하지 않고 꾸준히 쓴다면 송태섭의 성장처럼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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