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지금 미국에서는 전·현직 대통령이 동시에 특별검사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CBS방송은 지난 9일 바이든의 개인 변호사들이 작년 11월 중간선거 직전에 미 워싱턴DC 싱크탱크인 펜 바이든 외교·글로벌 참여 센터 사무실에서 약 10건의 기밀문서를 발견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 사무실은 바이든이 야인 시절인 2017~2019년에 사용한 곳이다. 기밀문서는 바이든이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낼 당시 제작된 문서로, 우크라이나와 이란 영국 관련 브리핑 자료들이 포함됐다고 한다.

또 바이든의 댈레웨어주 사저에서도 지난달 20일과 이달 11일, 12일 기밀문서가 발견된 데 이어 지난주에도 6건의 추가 기밀문서가 법무부 수사관들이 바이든 측 변호사들의 동의하에 실시한 수색에서 발견돼 압수됐다고 미국 언론은 보도했다. 이들 6개 기밀문서 중에는 부통령 재직 시 작성된 문서 외에도 바이든의 상원의원 시절 문서까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 벽두부터 연이은 비밀문서 유출 관련 보도는 2024년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예기치 않은 악재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출마 결정 발표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문서를 유출해 사저인 마러라고 리조트에 보관한 것을 “이처럼 무책임할 수 없다”(“How could anyone be that irresponsible?”)고 맹공한 바 있는 바이든은 CBS 보도 다음 날인 10일 기자회견에서 "이 사실(자신의 기밀 유출)을 알고 놀랐다”고 언급한 뒤 보좌진이 개인 사무실로 짐을 옮겼기 때문에 그 안에 기밀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측에서는 기밀문서를 고의로 빼돌린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의 경우는 ‘부주의로 인한 실수’(‘inadvertent mistake’)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연방 법무부는 지난해 1월 트럼프 측으로부터 회수한 184건의 비밀 문서에 이어 지난해 8월 그의 마러라고 사저를 전격 수색해 1급 비밀을 포함한 11건의 기밀문건을 압수했다. 이에 앞서 미 국립문서관리청이 기밀문서의 반환을 요구했을 때 트럼프는 “이것은 그들 것이 아니고, 내 것이다(It’s not theirs; it’s mine.)”라며 반발했다. 이들 문서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가 안보와 관련된 CIA, FBI, 미국 국가안보국 등의 기밀문서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 측은 지난해 11월 2일 기밀 보관 사실을 최초로 인지했을 때 당일로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신고하고 다음 날 반납했으므로 트럼프의 경우와는 달리 사법적 문제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 유출이 연달아 밝혀지는 가운데 공화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자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12일 이 사태를 ‘비상 상황’(‘extraordinary circmstances’)으로 규정하고 바이든 비밀문서 유출 건의 조사를 위해 로버트 허(Robert Kyoung Hur) 전 메릴랜드주 연방검찰청 검사장을 특별검사에 임명했다. 한인 2세인 허 전 검사장은 트럼프가 임명했던 인사로, 그를 바이든 비밀문서 유출 사건의 특별검사로 임명한 것은 공정한 수사를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미국은 특별검사를 법무장관이 임명한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 반출 사건은 지난해 11월 특별검사가 임명돼 수사가 진행 중인데, 전·현직 미 대통령이 동시에 특별검사 수사 대상이 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또 두 사람은 내년 대선의 유력 주자로 수사 결과는 대선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백악관에서 회담한 뒤 관례와는 달리 공동 기자회견을 생략했는데, 이는 기밀 반출에 대한 곤란한 질문을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미국 중간선거 전에 발견된 비밀문서의 유출 사실을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봐 두 달 이상 언론에 은폐했느냐는 것이다. 바이든의 개인 변호사들은 중간선거 6일 전인 지난해 11월 2일 이 문서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악관은 금년 초 CBS가 문서 유출 사건을 취재 보도할 때까지 두 달 이상이나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주 캘리포니아 수해 지역을 방문하던 바이든 대통령은 오랜 침묵을 깨고 기밀 문서 발견을 중간선거 전에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 “후회는 없다”("no regrets")고 말하고 그는 변호사들의 권고대로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

오바마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을 지낸 데이비드 액셀로드(David Exelrod)는 CNN에 출연, ‘위기관리의 기본은 모든 것을 최대한 빨리 털어 놓는 것’인데 바이든 백악관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건이 ‘모닥불로 끝날 건지 아니면 대형 화재로 번질 것인지는 앞으로 추가 폭로 여부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나 그의 참모들을 기밀 문서 유출로 기소하려면 ‘고의성’(‘intent’)을 입증해야 한다. 또 미국 법무부는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이 기소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에게 어떤 정치적인 피해를 줄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공화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원 법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시작했으며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맹공을 퍼붓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3분의 2는 이 사건의 의회 조사를 지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유출된 비밀 문서의 발견 사실을 백악관 공보팀에게도 알리지 않고 68일간이나 언론에 은폐한 바이든 법률 참모들의 전략을 ‘판돈이 큰 도박(gamble)’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