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고향사랑 기부금을 냈다. 또 한 번의 묻지마 기부를 한 셈이 됐다. 몇 년 전 중증장애시설이 마스크를 생산한다기에 기부를 했는데 영수증조차 발급받지 못했던 아픈 추억이 있다. 물론 그 회사는 영수증 발급을 약속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기부금 수령 단체가 아니었다. 고향사랑 기부금도 고향이라는 설레는 단어에 가슴이 뛰어 기부를 했는데, 다행인 것은 영수증이 제대로 발급된다는 것. 그러나 내 기부금이 어디에 쓰일지는 아직 모른다.

그런데도 축구선수 손흥민(춘천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음성군), 나영석 PD(충청북도),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광주 북구) 등 대한민국과 세계를 열광시킨 이들은 태어났던 고향에 기부금을 보냈다. 2023년에 처음으로 도입된 ‘고향사랑 기부제’를 널리 알려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솔선수범한 것이다.

고향사랑 기부제란 자신이 사는 거주지 외의 고향 등 지자체에 기부하면, 지자체가 해당 기부금을 주민 복리에 사용하는 제도이다. 문재인 정부는 도농 간, 세대 간의 재정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기부’라는 방식을 제안했다. 일본에서 시행한 ‘고향 납세제도’를 한국화시킨 것인데, 일본 또한 지방자치단체 세수가 줄어들면서 도입한 정책이다. 일본은 제도를 도입한 2008년에 개인 기부 기준 약 865억 원(81.4억 엔)을 모았다. 이후 2020년에는 약 82배가 증가한 한화 약 7조 1486억 원을 모금했다. 기부금 세액공제(2008년 : 10%--->2015년 : 20%)와 답례품 혜택이 일본에서는 큰 유인책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답례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향e음(고향사랑 기부제도) 홈페이지가 ‘지역답례품 쇼핑몰’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 요인으로만 기부 제도가 유지된다면 ‘기부’라는 말은 의미가 퇴색된다. 기부는 반대급부 없이 순수한 선의로 이루어져야 한다. 고향사랑 기부제로 인해 답례에 익숙해진 기부자가 오히려 성실한 기부단체에까지 답례품을 기대하는 역효과를 만들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선단체들의 기부금이 지자체 예산으로 옮겨갈 위험성도 있다.

지자체는 목표금액 없이 기부금을 모집하며, 세부적인 사용 계획 없이 코앞의 모금에만 급급해 보인다. 고향e음에 따르면 기부금은 지역 주민들의 복리를 높이는 데 최종 사용된다고 안내되어 있다.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지역 공동체 내 문화, 예술, 보건 환경을 증진한다는 내용은 기존의 지역 내 공익법인들의 사업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공익법인들은 모금하기 위해 모금 방법과 그 내역, 결과 보고 등을 주무관청에 보고하고 법률 규정을 지켜가면서 투명하고 효율적인 기부금 사용을 강제 받고 있다. 모금은 기부자를 향한 설득이다. 문제를 공감시키고, 기부 외에도 봉사활동, 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현재 자선단체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고향사랑 기부금의 중심에 있는 지자체가 현재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자체는 기부문화와 기부시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주 드러나는 기부금 횡령과 사기는 지역, 이념, 정서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새희망씨앗, 미르재단, 정의기억연대 사건이 그러하다. 반려견을 이용해 기부금을 모집하고 도박에 사용한 ‘경태 아부지’ 사건은 수많은 소액 기부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이처럼 플랫폼 메인 뉴스에 기부금 사건사고가 뜰 때마다 후원 해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게시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고향사랑 기부제도는 지자체장의 치적을 위해 한순간에 왜곡될 수 있고, 신의를 저버리는 미꾸라지가 한 마리라도 나타날 경우 기부 중단뿐만 아니라 기존의 기부시장까지 해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기부 제도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국민을 향한 ‘기부 교육’이다. 기부자들이 자신의 관심과 선호도에 따라 기부처를 선택하고, 얼마를 기부할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신이 지출한 돈의 효용성을 평가하여 다시 재구매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경제 교육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반적인 기부는 단순한 소비에 그치고 만다. 반대급부가 없는 기부금일수록 기부금의 효율성과 변화를 확인해 환류의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기부자들을 참여시키고, 시민사회 등 제3자의 감시와 평가 장치를 마련한다면 자연스러운 기부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정책에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르지만 해당 제도가 투명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갖춘 모범적 기부제도가 되길 바란다. 시혜적인 사업도 일부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노약자에게 잔푼 용돈으로 지급된다면 기부금의 효용성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겨울 농한기에 볏짚으로 가마니를 짜고, 새끼줄을 꿰는 등 노동을 통해 급여를 제공했던 새마을 운동의 사례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고향사랑 기부금이야말로 고령화 등의 인구 특성을 반영하여 취약계층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는 환경을 만들고, 보건/문화/예술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기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디딤돌로 고향사랑 기부제도가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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