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이석구 언론인

최근 미국 하원에서는 참 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졌다. 의장 선출 선거가 5일에 걸쳐 15번이나 시행됐다. 선거는 의회 서기가 한 명씩 호명하면 해당 의원이 일어나지지 후보를 말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의원 1인당 투표 소요시간을 10초씩만 잡아도 434명이 투표하는 데 줄잡아 18시간이나 걸렸다. 공화당이 과반을 넘는 다수당인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극우 성향의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이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든 때문이다.

이번에 반란을 일으킨 공화의원들은 극우파인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 소속이다. 이 단체는 2015년 1월 결성되어 '작은 정부, 세금 감면, 개인의 자유'라는 우익적 가치를 내걸고 결성된 공화당 내 모임이다. 약 40여 명이 회원이다. 짐 조던 의원(오하이오, 초대 회장) 등 9명이 모여 창설했다.

미 하원 의원은 총 435명(공화 222명, 민주 212명, 1명 사망)이다. 공화당은 지난 중간선거에서 과반수(218명)를 가까스로 넘어 다수당이 됐다. 따라서 5명만 반기를 들어도 공화당 단독으로는 당 지도부 뜻대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은 매카시 의원이 자신들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지난번 대통령선거를 적법하다고 인정하고, ‘대여투쟁에 나약함을 보인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지지하지 않았다.

매카시 의원은 결국 이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양보를 거듭한 끝에 의사봉을 쥐게 됐다. 매카시는 그동안 당 지도부만 가능했던 의장 해임안 제출을 단 한 명의 평의원이라도 제출할 수 있도록 의사규칙을 개정하겠다는 양보를 했다. 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하원 운영위원회의 3분의 1을 프리덤 코커스 소속 강경파 의원들로 채우기로 합의했다.

10%도 안 되는 의원들이 의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문제가 많지만 미국에서 당장 인위적으로 이를 고치려는 시도나 비판은 없다. 이는 그를 뽑아준 유권자들이 판단할 몫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당이 단일대오로 똘똘 뭉쳐 진영 대결을 벌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당내 다양한 의견이 국정에 반영되고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협치(당내든 당 대 당이든)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이런 반란이 가능한 것은 각 당의 후보 공천권이 우리처럼 당 지도부가 아니라 유권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원이나 일반 유권자가 ‘직접’ 참여하는 각종 예비선거를 통해 대통령, 상하 의원, 주지사 등 각 선거에 나설 당의 후보를 선발한다. 따라서 의원들이 우리처럼 차기 공천을 의식, 당 지도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소수 강경파가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든 이번 하원의장 선거가 좋은 예다.

미국 정치도 갈수록 진영 대결로 치닫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정파 간 또는 여야 간 타협 또한 다반사로 이뤄진다. 최근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의 반발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경기부양책을 일부 수정한 것도 좋은 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도 공화당의 반대 당론과 달리 찬성해준 몇 명의 공화의원들 덕분에 가능했다. 물론 그는 이 과정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요구를 들어 법안 일부를 수정해야 했다. 의원 각자의 신념과 지역구 사정에 따른 이 같은 협치는 예비선거라는 공천제도가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진영 대결은 나라를 두 조각 낼 정도로 심각하다. 정치권과 학자들은 그 모든 원인을 승자독식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고 있다. 상당히 합리적 지적이다. 그러나 꼭 그런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와 인권 탄압이 제3공화국 헌법 때문인가. 헌법학자들 중에는 제3공화국 헌법이 형법이라고 할 정도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 좋은 법체계라고도 한다. 현행 소선구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도로 만들어진 제도다. 그 결과 다당제가 됐으나 지금 같은 진영 대결은 벌어지지 않았다. 결국 제도가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사람과 투표 성향, 공천권이 문제다.

비례대표 확충, 중대선거구제 등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식으로 선거제도가 개편되면 다당제가 될 수밖에 없다. 역대 총선에서 어느 당도 득표율이 과반을 넘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다당제가 되면 협치가 되고 의원 각자가 지도부 눈치를 보지 않고 헌법기관으로 신념에 따른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진영 [데일리임팩트 관리자 ]대결 구도도 없어질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현재처럼 진영과 지역에 따라 ‘묻지 마 투표’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당지도부가 공천권을 갖는 한 의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개편된 제도에서 당선된 의원들도 결국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진영대결에 앞장설 수밖에 없다. 차기 선거에서의 당선 여부가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 개편에 앞서 공천권을 유권자들에게 돌려주는 방안부터 모색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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