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선 논설위원,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 사회협력교수

이주선 논설위원
이주선 논설위원

칼 포퍼(1902~1994)는 1945년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에서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반하는 역사주의적·전체주의적 관점을 비판했다. 원래 이 책은 ‘플라톤의 마술’(1권)과 ‘예언의 높은 물결;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그 여파’(2권)로 나뉘어 발간되었다.

1권에서 포퍼는 플라톤의 ‘국가론’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인도주의적,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전체주의를 옹호한 것으로 비판한다. 그는 플라톤의 사회변화와 사회 불만에 대한 분석에 공감을 표했으나, 전체주의로 귀결되는 방식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플라톤이 스스로 위대한 철인 통치자가 되려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2권에서 포퍼는 헤겔과 마르크스가 20세기 전체주의의 뿌리가 되고 있다고 헤겔의 역사철학과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계급투쟁 역사관을 비판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인류가 지향할 근본 목표가 ‘변화하고 소통하는 개인 중시의 자유로운 사회’인 “열린 사회”이며, 이를 실현하려면 ‘정해진 규칙과 규범에 순응하는 공동체 중심의 통제된 사회’인 “닫힌 사회”를 지향하는 전체주의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을 처음 읽은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예순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 이 책을 상기한 이유는 우리가 과거 피와 땀으로 쟁취한 ‘자유민주주의’와 ‘열린 사회’를 와해시키려는 세력들이 득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유린한 유신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어용 나팔수들을 동원해서 합리화했다. 그리고 이에 항거하는 대학생, 야당, 재야 등 반대세력을 고문, 투옥, 강제징집 등으로 살해·억압하는 인권유린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군부독재 전체주의에 대항해서 싸우던 시절 칼 포퍼의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우리가 왜 목숨을 내놓고 군부독재와 싸워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이해시킨 길라잡이였다.

물론 이 책을 읽고도 마르크스와 레닌, 모택동과 김일성 숭배 좌파 전체주의자들이 된 ‘사이비 열린 사회’ 추종자들이 많아진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사회의 주류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를 계급투쟁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를 ‘과학적’이라고 생각해서 공산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전체주의를 과학적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생각은 과학이 합리성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전체주의는 합리성이 아니라, 감성적·선동적 방식으로 성립한다. 당연히 획일적이고 개인의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니 다양성이 보장될 리도 없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공산주의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역사 왜곡이자 김일성 일가 옹호 사이비 요설인 소위 ‘주체사상’을 신이 보내는 교시처럼 읽고, 받아쓰고, 암기한 자들이 좌파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2700만이나 되는 인민들을 굶기면서 동족의 나라인 대한민국에 핵전쟁을 위협하는 김일성 왕조를 찬양하고 그 체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세력이 사회 각 분야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허점을 이용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사회를 전체주의화하는 데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과거 군사독재 시기 음성적으로 민주화운동에 편승하던 이들이 이제는 대놓고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으로 심지어 어린 중학생들을 동원해서 민주적 선거로 뽑힌 대통령 탄핵집회를 하고, 핵무기로 위협하는 김정은 정권 앞에서 미군 철수와 정부의 대북 군사대응을 공개 비난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암 덩어리는 바로 이 전체주의 경향의 강화이다. 사실 열린 사회는 다양한 사상과 주장이 백화제방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특정한 전체주의적 관점이 다른 관점과 사상의 표방과 추구를 억압하는 경향이 있을 경우, 열린 사회를 지향하려면 반드시 이를 제어해야 한다.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사상(국가사회주의)을 표방하거나 관련 상징물에 대한 고무·찬양을 금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 군사독재정권들은 ‘반공을 국시로 한다.’면서 이를 정권 옹위 및 합리화에 이용했다. 이는 그 후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반공)’을 무슨 퇴행적 군사독재 옹호로 간주하는 사회적 통념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너도 나도 공산주의의 폐해 지적을 주저하게 만들어 주사파 세력 발호의 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독일의 나치사상이 독일을 망하게 한 전체주의 독재의 근원이었다면,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은 바로 대한민국의 번영과 자유민주주의를 망치는 ‘열린 사회의 적’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민주화운동은 바로 사회 각 부문에 똬리를 튼 전체주의적 주사파와 공산주의 지향 성향을 축출하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은 군부독재 권력에 항거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도 우리가 가진 지식과 합리성으로 이를 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대열에 각자가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미래를 새롭게 하는 데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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