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20세기 초 국제근대건축가협회(CIAM)는 도시를 기능적인 실체로 정의하고 그 주요 기능을 거주, 노동, 여가, 그리고 통행으로 정의하였다. 도시계획에서는 각 기능들의 구역을 분리하여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 되었으며 이 원칙은 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의 도시계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업혁명 이후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으로 모든 기능이 뒤섞여 혼란하고 열악한 거주환경을 양산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방식이다. 건축이나 디자인에서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말이 절대적 진리로 여겨졌다. 기능주의적 도시계획과 건축의 시대였다.

그러나 어디 사람 사는 것이 그렇게 기능적이기만 한가. 집 가까이에 상가가 섞여 있으면 편리하고, 회사나 제조업체 등도 가까이 있으면 출·퇴근도 더 쉽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분리되어 배치된 각 기능구역을 연결하는 길은 왜 그리 막히는지 출·퇴근이나 시장보는 데 세월 다 보내게 생겼다. 사람들은 기능주의 도시계획과 건축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름동 복합커뮤니티센터(복컴). 설계 건원건축(2013 완공). 세종특별자치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아파트일색인 주거지에 새로운 랜드마크이며 중심이 되고 있다. 사진:김기호, 2021.
아름동 복합커뮤니티센터(복컴). 설계 건원건축(2013 완공). 세종특별자치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아파트일색인 주거지에 새로운 랜드마크이며 중심이 되고 있다. 사진:김기호, 2021.

후발 근대국가인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서구의 기능적 도시를 본받아 완성하려고 애써왔다. 특히 신도시 등 새로 조성되는 도시는 기능분리 원칙 적용의 실험장이었다. 그 결과 단조롭고 황량한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로 채워진 거대한 아파트 주거도시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제 여기도 엄격하게 적용되던 기능분리적 도시계획 원칙이 도전받고 있다. 이제 토지나 건물을 복합적, 혼합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잘 보여 주는 것 중의 하나가 ‘복합커뮤니티센터’(복컴)라고 할 수 있다.

새롬동 복컴, 세종시 행복도시. 우측이 복컴(설계 토문건축사사무소 2018 완공)이고 좌측 길 건너가 근린상가군이다. 보행과 자전거로 쉽게 접근 가능하다. 사진: 김기호, 2021.
새롬동 복컴, 세종시 행복도시. 우측이 복컴(설계 토문건축사사무소 2018 완공)이고 좌측 길 건너가 근린상가군이다. 보행과 자전거로 쉽게 접근 가능하다. 사진: 김기호, 2021.
새롬동 복컴 안내판, 세종시 행복도시. 다양한 시설이 공간적으로 복합되어 있다. 복컴 이용주민 만족도는 만족 64.2%, 보통 31.3%로 비교적 높다.(건축공간연구원 조사 발표, 2016.10.17.) . 사진: 김기호, 2021.
새롬동 복컴 안내판, 세종시 행복도시. 다양한 시설이 공간적으로 복합되어 있다. 복컴 이용주민 만족도는 만족 64.2%, 보통 31.3%로 비교적 높다.(건축공간연구원 조사 발표, 2016.10.17.) . 사진: 김기호, 2021.

복컴은 아파트바다 속에서 구심점을 잃어버린 도시 이곳저곳에 작은 동네 중심(인구 2만~3만, 洞의 규모)을 만들려는 것이다. 복컴 속에는 문화, 체육, 사회복지와 행정 등을 위한 기능이 공간적으로 연계되어 설치되고 시간적으로 유연하게 운영된다. 내부에 카페도 있어 교류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 주변에는 우체국이나 파출소 등 근린공공시설과 상가지구 등이 배치되어 있다. 누구든 집을 나서면 주(主)볼일 외에 여러 잔 일들을 함께 보는 것을 그대로 계획에 받아들여 편리하게 한 번에 여러 일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복컴은 동네의 교류중심이며 랜드마크가 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낮과 밤으로 구성되어 공간 효율성과 안전성에도 기여한다. 건물 옥외공간도 함께 사용하고 주변에 소공원이나 초등학교 등도 배치하여 그 활동이 확장되고 연계되도록 하였다. 기능의 분리가 아니라 복합과 융합이 주목표이다.

복컴과 주변의 연계시설들. 새롬동 복컴(새롬동 도서관), 초등학교(유치원 포함), 공원, 그리고 은행 및 다양한 근린생활시설이 연계 배치되어 있다. 지도: 카카오맵, 2023.1.
복컴과 주변의 연계시설들. 새롬동 복컴(새롬동 도서관), 초등학교(유치원 포함), 공원, 그리고 은행 및 다양한 근린생활시설이 연계 배치되어 있다. 지도: 카카오맵, 2023.1.

복컴이 기대하는 것은 주민이 제공되는 프로그램만 구경하는 관람형에서 프로그램에 관여하고 체험하고, 그곳에서 창작도 하는 참여형으로 바뀌는 것이다. 주민이 동네사람이 되고 주인이 되어 상호 교류와 이해를 도모하고 동네 삶에 대한 지혜를 모아가는 공동생활의 기반이 되는 곳이다. 주민들이 복컴에 가서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주변 카페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놀다 때로는 쇼핑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 등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동네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도 함께 커 갈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고령화 시대를 맞으며 요즘 대세로 등장하는‘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위해서도 적합한 동네 및 도시 모델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런 자율적‘복합커뮤니티센터’의 활성화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요람이 되어 정치인의 골치 아픈 셈법을 대체하는 건전한 시민과 정치 감수성을 키우는 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이는 도시계획가의 과도한 희망일까?

아름동 복컴의 앞마당과 소공원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이나 확장된 활동의 공간이다. 사진:김기호,2021 
아름동 복컴의 앞마당과 소공원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이나 확장된 활동의 공간이다. 사진:김기호,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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