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5, 4, 3, 2, 1!”

추운 날씨에도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이다. 울산 간절곶과 강릉 경포대, 부산 해운대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저마다 소망을 빌며 보람찬 한 해를 다짐하는 가족과 연인들의 사랑과 열정이 참 예뻤다. 하지만 한때는, 다 같은 날들을 묵은해니 새해니 구분해 놓고 야단법석인 사람들이 유난스러워 보였다. 일출은 왜 꼭 1월 1일에 봐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심지어는 아내나 아이들이 타종 행사를 보고 자자고 해도 쓸데없는 짓이라며 잠이나 자라고 말렸다.

그러나 그렇게 일 년을 지내고 보니, 그래도 한 해를 돌아보며 결심하고 소원을 빌고 새해 목표도 세워보는 것이 나쁘지 않음을 깨달았다. 새해 목표로 건강과 화목한 가족, 경제적인 안정을 꼽는 사람이 많다. 내 집 장만, 취업과 결혼, 운동과 다이어트, 독서, 여행도 단골 메뉴다. 하지만 그 결심도 작심삼일, 연초엔 붐비던 헬스장이 한 달만 지나도 80~90% 가까이 빠진다고 한다.

작심삼일이나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일 년 전 세웠던 목표를 왜 이루지 못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무슨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큰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과 연결되지 않는 목표 달성은 의미가 없다. 새해 목표를 달성했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목표 달성 후 생을 마감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점검하는 일이 먼저다.

내 나름의 철학과 핵심 가치를 떠올리며 인생의 항로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사명서’를 작성해 보았다.

‘중심 잡고 소박하게 살겠습니다. 맑고 인정 많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친구 같은 남편으로서 우리의 사랑과 믿음에 물 주고 거름 주며 정성 들여 가꾸겠습니다. 봄이(외손녀)네와 윤슬이(친손녀)네가 평화와 웃음이 넘치는 가정 이룰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며 한결같이 지지하겠습니다. 꿈을 잃지 않고 ‘가족 문제 예방’을 위해 묵묵히 제 길을 지켜나가겠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나누며 살겠습니다.‘

한때, ‘운동 열심히 하기’, ‘독서 열심히 하기’ 같은 애매모호한 목표로 어디까지가 열심인지를 알 수가 없어 목표 달성에 실패한 적이 있다. 또한 ‘일주일에 한 권, 일 년에 50권 책 읽기’ 같은 무리한 목표를 세웠다가 한 달도 안 돼 포기한 적도 있다. 그러기에 구체적이고 실현할 수 있으며 측정이 가능한 목표를 잡기로 했다. ‘단순한 삶’,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건강 챙기기’, ‘부부농사에 투자하기’로 방향을 잡고 실천 사항을 적어 보았다.

1. 단순한 삶- 저녁 약속 주 1, 2회로 줄이기,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외에는 습관적인 휴대전화 사용 금지

2. 건강 챙기기- 지하철 이용하기, 매일 스트레칭하고 주 2회 이상 자전거 타 기, 체중을 매월 1kg씩 줄여 5kg을 감량한 뒤 연말까지 유지하기, 1년간 금주

3. 부부농사- 기본적인 음식 12가지를 배우고 익히기, 한 달간 아내와 자전거 로 제주도 구석구석 여행하기

이제 부모님이나 선생님, 누군가의 채근과 닦달로 뭔가를 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 나 스스로 내적 동기를 만들고 그것을 시스템화할 때이다. 가족에게 짐이 아니라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남편과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첫 번째 바람이다.

금주는 몇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그 좋은 음식, 자제하며 마시면 되지 술 끊는다며 유난을 떨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실행하질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실험적으로 술 없는 365일을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 강제로 술을 끊어야 하는 신세가 되기 전에 내 의지로 술 안 마시는 일 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아내와 자전거로 제주도 여행하기는 오래전부터 품어 온 소망이다. 넘어져서 다친 적이 있기에 아내는 한사코 자전거는 안 타겠다며 버텼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내를 꼬드겼다. 자전거 교실에 함께 다니면서 자전거 타기의 매력을 맛보게 했다. 그리고 어렵게 아내의 동의를 얻어낸 부부 목표다. 또한 42년째 밥 차리는 수고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기본적인 음식 12가지를 배우고 익혀 가끔은 내가 상을 차리기로 했다.

한때는 나의 개인적인 목표를 부부 목표나 가족 목표로 포장한 뒤 아이들과 아내에게 은근한 압박을 가한 적도 있다. 가족 목표는 개인의 목표를 합쳐 놓은 것이 아니며 가족 모두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욕구를 파악하고 참여를 끌어낸 뒤,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목표가 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렵다. 가족 목표는 달성도 중요하지만 함께 참여하고 조정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그 과정이 소통과 가족의 유대에 도움이 된다. 무리한 목표라고 생각하면 도중에 목표를 수정하는 융통성과,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이점을 생각하며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새해 첫 달은 꿈을 꾸는 달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불안한 국제 정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안보와 외교, 기후 변화 등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은 현실 앞에서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게 하는 힘이 새해에는 있다.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으로 한 해를 시작해 보자. 연말쯤 나에게 어떤 보고서를 보여 줄 수 있을지 벌써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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