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얼마 전 아내가 논을 사고 싶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무슨 여유가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를 가리키며 저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날은 기온이 예년 평균보다 높은 ‘더운’ 가을이 지속되다가 하루 만에 갑자기 기온이 20도나 곤두박질치고 한파경보가 내려진 11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뉴스에서는 11월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것은 기상특보 역사상 처음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 더군다나 평년보다 높은 온도를 계속 보이던 날씨가 하루 사이로 한겨울 기온으로 떨어진 것이 충격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이상기후 현상에 대한 뉴스는 최근 수년에 걸쳐 점점 자주 이어졌었다. 특히 2022년에는 더욱 자주, 그리고 광범위한 현상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가지 뉴스가 쏟아졌었다. 대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긴 남아시아 파키스탄, 5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전체의 64%가 가뭄에 휩싸인 유럽, 가뭄과 폭염에 따른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80배 정도가 불태워진 미국 서부 등등의 뉴스가 계속되었다.

세계기상기구(WMO)를 비롯한 국제기구는 기후 재해로 하루 평균 115명이 숨지고, 2800억 원의 손실이 생기고 있다고 기후변화 보고서를 통해 공개하였다. 이러한 피해를 집중적으로 겪고 있는 5곳의 나라 또는 지역 상황에 대해 국제구조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소말리아. 5년 연속으로 적절한 강우가 없는 상태가 지속된 극심한 가뭄이 나라를 기근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웃한 케냐와 에티오피아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두 번째는 파키스탄.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는데 이는 영국만 한 크기의 면적이다. 이로 인해 삶이 파괴된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넘는 3300만 명에 이르고 140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세 번째는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은 27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어 내전에 황폐해진 농업이 더 어려워졌다. 아프가니스탄의 일부 지역은 이웃 파키스탄과 함께 심각한 홍수 피해를 겪었다. 2022년 8월 폭우로 인해 180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다.

네 번째는 온두라스. 2020년에 발생한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허리케인 피해로 온두라스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거의 100만 명이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장기간의 가뭄으로 심각한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 2022년에는 폭우로 인해 최소 200가구의 집이 무너지는 피해를 겪었다.

다섯 번째는 사헬. 아프리카의 사헬은 부르키나파소, 차드, 에리트레아, 감비아, 기니비사우, 말리, 모리타니, 니제르, 세네갈, 수단 10개국에 걸친 1억 3500만 명이 사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기온은 세계 평균보다 1.5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가뭄과 홍수의 악순환은 사막화의 속도를 증가시키고 있어 현재 3000만 명 이상이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듯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 가뭄과 홍수는 언뜻 보기에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둘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면 땅이 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결과 돌발적인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후 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 나아가 기후 위기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기후 위기는 인간이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초래한 재앙이므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뉴스를 보고 아내가 논을 사고 싶다는 것은 기후 위기가 기근을 초래하니 머지않아 우리도 식량난을 겪을 수 있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대비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감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논은 어찌어찌 살 수도 있겠지만 계속되는 가뭄에 물은 어떻게 댈 것이고 홍수에 물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논을 사야겠다는 불편한 열망을 갖기보다는 어디든 나무 한 그루 더 심고, 난방온도 1도 더 낮추고, 일회용 컵 하나 덜 쓰는 작은 실천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다음 글은 1월 19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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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1969년 강원 원주 출생. 서울대 임학과 학사 석사 박사. 식물분류학 및 수목학 전공. 서울대수목원 연구원, 중국 남경식물연구소・식물원 교환연구원을 거쳐 2001년부터 신구대 교수로 재직. 신구대식물원 원장 역임. 저서: 길에서 만나는 나무 123, 자연자원의 이해(공저), 세계의 식물원 산책(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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