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근래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만든 아주 다른 두 가지 양상의 데모가 있었습니다. 민노총이 주동한 화물연대 파업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였습니다. 필자는 이 두 가지 데모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문제를 정치‧사회학적으로 분석할 생각도 없으며, 그런 전문성도 있지 아니합니다.

그런데도 언뜻 보기에 화물연대 파업은 이를 주도하는 민노총이라는 거대 조직이 있는 데 비해, 전장연의 경우는 사회적‧문화적 코드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인 화물연대 파업은 다른 연관 산업 분야와 먹이사슬 관계로 뒤엉켜 있어 국가재정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에 온 사회의 관심 사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전장연의 투쟁은 상대적으로 출·퇴근길 시민을 짜증스럽고 불편하게 만드는 차원으로 인식되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형태의 데모 상황을 국외, 특히 사회보장제도가 튼튼하게 자리 잡은 유럽권 사회에서 지켜본다면 아주 다른 시각으로, 아주 다르게 평가할 것입니다. 즉, 화물연대 파업 부류의 데모에는 일상의 한 모습 정도로 여기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한 예를 들면 파리 국제공항의 공중화장실은 악취 때문에 정상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웠던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데모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민들은 불편한 심기를 서슴지 않게 표현하면서도, ‘데모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근로자가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두터운 공감대가 있기에 이를 묵인 또는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하철 공간에서 신체장애인 집단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유럽에서 지켜본다면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그런 수준인가?”라며, ‘선진국 반열’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의아해할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근래 필자는 전장연의 시위 때문에 지하철 이용에 불편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탑승을 기다리던 중 전장연의 시위로 운행에 차질이 생겼다는 역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 불편함을 격하게 탓하는 언론매체나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 필자는 아쉬운 생각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렵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합스부르크 600년전(Habsburg 600 Years Exhibition, 1270~1918)’이 열리고 있었고, 필자는 반가운 마음에 그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유럽 문화권에서 ‘합스부르크 왕조’ 관련 이야기를 정말 자주 들었기에 감회가 사뭇 달랐습니다.

        '합스부르크 600년전’의 포스터.
        '합스부르크 600년전’의 포스터.

1960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방문했을 때, 온통 합스부르크 왕조 관련 이야기만 듣고 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 후에도 유럽 문화권에서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810)라는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테레지아는 600년 합스부르크 왕조의 유일한 여성 군주였는데, 합스부르크 왕조는 도나우(Dounau)강을 끼고 오늘날의 헝가리, 체코 및 크로아티아 지역을 지배하던 명문가였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Louis XVI, 1754~1793)와 함께 파리 콩코드광장에서 기요틴(Guillotine, 斷頭臺)에 오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 1770~1793)가 바로 앞서 언급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유럽에서 합스부르크 왕조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 600년 왕조의 미술품이 드디어 서울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합스부르크 왕조의 소장품 전시를 알리는 플래카드에서 스페인 왕가의 공주 마르가리타(Margarita Teresa, 1651~1673)의 초상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초상화는 너무도 유명한 스페인 왕실 화가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의 작품으로, 또 다른 그의 작품 ‘Las meninas(시녀들)’에 등장하는 공주를 직감케 하였습니다.

필자는 오래전 마드리드의 프라도(Prado)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그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벨라스케스의 독특한 작품 구성에도 감탄했지만, 작품 속 예쁜 공주가 여러 시녀와 반려견에 둘러싸인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시녀 중에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난쟁이(Dwarf)’가 있었습니다. 순간 스페인 왕가에서 귀여운 공주를 장애인인 ‘난쟁이 시녀’와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시녀는 걸음걸이도 정상일 수 없고, 구사하는 언어도 어눌했을 텐데 말입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시녀들’(1656년경). 오일 온 캔버스, 230x150cm.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시녀들’(1656년경). 오일 온 캔버스, 230x150cm.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그때 그 작품을 보며 ‘과연 나는? 과연 우리 사회는?’ 하고 자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특별한 것을 보았습니다. 시내 번화가 사거리에는 택시만 세워놓고 대기하는 곳이 있는데, 그만큼 교통의 요지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 지정된 택시 구역 바로 뒤에 ‘장애인 주차 구역’이 있었습니다. 어느 외진 곳이 아니라, 가장 교통이 번잡한 위치에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이 있다는 사실이 범상치 않게 다가왔습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그 사회의 메시지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장애인이 소지하고 있는 신분증으로 박물관, 미술관 같은 공공시설에 우선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반자도 함께 말입니다. 아무리 입장을 기다리는 방문객의 줄이 길어도 말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이런 각별한 배려는 그 사회의 선진성을 잘 보여주는 문화코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금부터 4세기 전에 그려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스며 있는, 장애인에 대한 ‘무(無)편견’과 오늘날 프랑스 사회의 행정력 사이에는 이처럼 같은 문화 코드가 존재합니다.

필자는 얼마 전 한 언론매체에서 높이뛰기 선수인 시각장애인의 애절한 호소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넘고 싶은 건 1m 63cm의 높이가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그 절절한 울부짖음에 우리 사회가 좀 더 세심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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