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표지의 문구가 인상적이었던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기부금이 잘못 사용된 사례 중 하나로 ‘플레이펌프’를 꼽았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리면서 노는 놀이기구 ‘뺑뺑이’에 펌프를 결합한 플레이 펌프를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이라는 국제 구호단체가 도입했다. 그리고 물 부족 국가들에 이 식수 펌프를 보급했다. 우리 직원 중 한 명도 이 펌프가 한창 보급될 당시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플레이펌프 같은 적정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국제개발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핫 이슈였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2008년, 1000 개 이상 설치된 플레이펌프.
 2008년, 1000 개 이상 설치된 플레이펌프.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을까? 아이들이 돌리는 힘만으로는 물을 계속 끌어올리기에 부족했고, 아이들이 돌리다가 넘어져 다치는가 하면, 돈을 주면서까지 ‘타고 놀도록’ 해야 했다고 한다. 결국 뺑뺑이를 돌리는 건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의 몫이 되었고, 즐겁지도 않고 품위 없고 모욕적인 ‘일거리’로 전락했다. 효율성을 따져보지 않고 직감적인 판단과 선의만 앞세웠던 이 업체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폐업했으며, 플레이펌프는 후원사업의 실패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값진 시도였다. 주민의 참여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방식은 자선단체들에게 교훈이 되었고,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그간의 사업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2015년, 빌게이츠 – 대변에서 걸러낸 물을 마시는 모습.
2015년, 빌게이츠 – 대변에서 걸러낸 물을 마시는 모습.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저개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되는 또 다른 사업이 있다. 약 100조 원의 재산을 가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 빌 게이츠는 대변을 깨끗한 물이나 비료로 재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배설물(똥)을 가열해 순수한 수증기만 걸러낸 뒤 이 수증기를 냉각시켜 식수로 쓰는 장치를 개발한 기업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걸러낸 물을 마신 후 “다른 물처럼 맛이 좋다.”라고 칭찬했다. 이 배설물 처리 기계는 게이츠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5년 말 아프리카 세네갈에 시범 설치를 하기도 했다.

올해는 삼성전자까지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의 RT(Reinvent the Toilet)프로젝트에 참여해 ‘물이 필요 없는 화장실’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 가정용 RT는 현재 사용자 시험까지 마쳤는데, 게이츠재단은 RT 양산을 위한 효율화 과정을 거쳐 저개발국에 제공할 계획이다. 기업의 힘과 기술의 도움으로 자연의 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해 낼 수 있는 기반이 생긴 셈이다. 기부와 참여로 바뀐 세상을 기대하게 됐다.

2022년, 기부를 위해 손잡은 이재용 삼성 회장과 빌게이츠 MS 창업자.
2022년, 기부를 위해 손잡은 이재용 삼성 회장과 빌게이츠 MS 창업자.

효율성을 냉정하게 따져보고 진행한 또 다른 사업도 있다. ‘기생충 감염 치료’ 사업이다. 한 구호단체가 아이들의 학교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기생충 감염 치료를 했더니 출석률이 높아졌다. 다른 사업들보다 비용 대비 최대 효과를 내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생애를 추적 관찰한 결과, 기생충 감염 치료를 받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잘살게 됐다고 한다. 이 사업은 지역밀착형의 손 쉬운 사업이지만 시간을 두고 효과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1950~60년대 우리의 구충사업도 이런 면에서 보면 국제 구호단체들 사이에서 성공사례로 꼽혔을 것이다.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저자 윌리엄 맥어스킬은 선의와 열정에만 이끌려 실천하는 이타적인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이타적인 행위가 실제로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불편한 진실을 지적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할 때, 무의식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따져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특히 소비를 할 때 그 효용과 가치를 더 많이 따져본다. ‘가성비’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와 닿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무엇을 소비할 때 효율성을 깊게 생각해보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명 착한 소비라고 불리는 ‘기부’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따지고 있을까? 기부할 때 이 기부금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지, 그리고 그 사업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수많은 기부단체가 있고, 그들은 수만 개의 사업을 하고 있다. 수만 개의 사업 중 어떤 사업에 내 기부금을 줄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보고 기부를 결정하는 것은 무익한 사업에 내가 낸 기부금이 사용된 것을 알고 실망해서 기부를 중단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부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부’는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한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며, 기부단체가 하는 사업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따져보고 기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참여하고 행동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다양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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