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최근 카톡으로 크리스마스 e카드를 하나 받았다. 나는 카톡을 열어보고 눈을 의심했다. ‘Merry Christmas’라는 글이 적힌 카드의 배경사진 때문이었다. 그 사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포승줄에 묶여 연행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풍자라 하기에는 도를 넘은 합성 사진이었다. 좌파의 염원이 서려 있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게 카드를 보낸 이는 명문 대학 출신의 엘리트다. 그는 나름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자부한다. 공부도 많이 했다. 그런 사람이 이처럼 몰상식한 카드를 보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물론 그는 좌파 인사다. 우파를 항상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렇지만 이런 카드는 비판이나 풍자가 아니라 맹목적 증오심의 발로다. 품격이 없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욕설을 퍼붓는 시정잡배의 행위나 다름없다.

그가 속한 카톡방에 올라오는 글들도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일색이다. 주로 좌파 인사로 구성됐다고 하지만 ‘닥치고 비판’이다. 물론 우파진영도 마찬가지다. 신문의 댓글이나 카톡방은 좌파에 대한 우파의 증오가 흘러넘친다. 양 진영 모두 건전한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로가 상대를 없어져야 할 존재로 여긴다. 도저히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승패가 갈렸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판단의 기준은 진영논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수사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죄를 지었으면 수사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야당은 “정치적 목적의 야당 탄압”이라고 반발한다. 과거 정권 시절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인사가 줄줄이 사법처리될 때 민주당은 현재 여당이 하는 말과 같은 말을 했다. 사회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당시 국민의힘 역시 정치보복이라는 시각으로 비판했다.

나와 아주 가까운 60대 초반의 친척이 있다. 열렬한 이재명 대표 지지자다. 그의 가치관이니 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윤 정권을 무조건 비판하고 이 대표는 맹목적으로 지지한다. 그는 매일 SNS에 윤석열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린다. 그러나 한 번도 이 대표를 비난하는 글은 올리지 않는다. 이 대표의 형수와 형에 대한 욕설도 “상황을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고 옹호한다. 진영논리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다.

이런 경향은 우파도 마찬가지나 좌파 인사들이 더 심한 것 같다. 대표적 좌파 논객 유시민 작가와 우파 논객 전원책 변호사를 예로 들어보자, 유시민 작가의 경우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문재인 정권이나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는 말이나 글을 듣거나 본 적이 없다. 그럼 문재인 정권은 완전무결했다는 말인가? 당은 무오류(無誤謬)라는 공산당식 태도와 뭐가 다른가. ‘jtbc썰전’에 그의 대항마로 나왔던 전원책 변호사는 그래도 그렇지 않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윤 정권에 대한 시시비비를 나름 가리고 있다. 우파에게는 이처럼 일말의 염치는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든 언행이 합리성과 보편성, 도덕성을 지닐 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정치인의 언행은 더욱 그래야 한다. 도덕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그것에 스스로 복종해야만 하는 법칙’이다. 거짓말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네 정치인들은 이를 우습게 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전에 했던 말을 입장이 변했다고 예사로 바꾸고 눙친다. 심지어 자기 편이면 흑을 백이라고도 한다.

정치를 하려면 양심은 접어두고, 거짓말은 예사로 하고, 얼굴 가죽이 두꺼워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참말인 것 같다. 우리는 정치인들에게서 유머와 품격 있는 언어를 찾아볼 수 없다. 정계에는 증오와 독설만 난무한다. 삼류 깡패나 건달도 하지 않는 언행을 예사로 한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잘못 해도 사과는 하지 않는다.

원로배우 김혜자 씨는 2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는 대본도 형편없고 연기자도 형편 없다. 그럼에도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건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곡을 찌르는 명언이다. 새해에는 정치인들이 이 말을 새겨들었으면 하는 기원을 하며 이 해를 보낸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