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를 선정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념 갈등 및 진영 논리로 인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된다는 강박관념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포착해냈다는 해석이 뒤를 이었다. 거짓을 말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정치 풍토를 향한 경고 메시지로 읽어도 좋으리란 의견도 있었다.

2주 전 이번 학기를 마치면서 교보문고에 들른 길에, ‘우리는 모두 거짓말쟁이’로 번역해도 좋을 책 ‘Everybody Lies’를 집어 들었다. 제목에 낚이긴 했는데 내용이 예상외로 흥미진진하여 마지막까지 독파했다. 낯선 이름의 저자 쎄스 스테판스 데이비도위츠(Seth Stephens-Davidowitz)는, 제목 뒤에 길게 붙은 부제 속에 책 주제를 요약해 놓았다. 인터넷에 남긴 흔적이 빅 데이터 및 뉴 데이터가 되면서 인간이 진실로 어떤 존재인지 마침내 선명하게 포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짓말쟁이인 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례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일례로 미국인 대상 일반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의 성생활 통계에 따르면, 이성애 커플 중 여성의 섹스 횟수는 연평균 55회, 콘돔 사용 횟수는 평균 16%로 밝혀졌다. 이를 토대로 연간 콘돔 사용량을 계산해보면 약 11억 개에 이른다. 반면 동일한 방식으로 남성의 콘돔 사용량을 추적해보면 연간 16억 개에 이른다 하니, 남녀 중 어느 한쪽은 거짓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닐슨(Nielsen) 마케팅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팔린 콘돔 숫자는 연간 6억 개 수준으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구글의 검색 건수를 비교해보면 ‘섹스리스 결혼’이 ‘불행한 결혼’의 3.5배요, ‘애정없는 결혼’의 8배나 된다고 한다. 콘돔 사용을 둘러싼 거짓말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작은 단서 아니겠는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거짓 응답 및 응답 회피로 인해, 뉴욕타임스를 위시한 유수 언론과 여론조사 전문가들 모두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당선 불가 판정을 내렸다. 심지어 여론조사의 귀재라 불리던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이 99.99%라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 만큼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는 것이 데이비도위츠의 주장이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피크에 달하던 시기, 니그로(negro) 혹은 니거(nigger)와 같은 인종차별주의적 단어가 검색 상위권에 올랐던 주(州)와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주(州)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음을 생생한 도표로 보여주면서 말이다.

인간은 너나없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설문조사에 응하는 경우,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문항이나 다수가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문항에 체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굳이 진실을 말해야 할 인센티브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도 속인 채 태연히 거짓을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할 때는 태도의 반전이 일어난다고 한다. 최대한 솔직한 질문을 자판에 두들겨야만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기에 가능한 한 거짓말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다수의 설문조사를 통해 파악된 미국의 게이 비율은 전체 인구의 2.5% 내외에 머무르지만, 구글이 제공하는 빅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5% 수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다. 날씨의 뒤를 이어 자주 검색되는 단어가 포르노라는 사실도 인터넷 검색에서 드러나는 솔직함의 지표라 할 수 있겠다.

그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조사되는 지지율 추이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지표임이 분명하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르며 선거 결과 예측에 올인해온 여론조사기관의 노하우를 결코 가벼이 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거짓 응답의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현행 대통령 지지율 조사만으로는 민심의 정확한 동향을 파악하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 통계야말로 내로남불처럼 남이 하면 조작(造作, manipulation)이요 내가 하면 조작(操作, operation)인 상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당별 콘크리트 지지층의 동향 파악도 필요하겠지만, 극단을 지양하는 중도층, 어느 곳에도 마음 두지 않는 무당층, 솔직함을 거부하는 샤이층(?)의 속내를 정확히 판별해내는 것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보 검색 과정 자체가 그대로 요긴한 정보가 되어 빅 데이터로 축적되는 세상에서, 복잡다단한 민심을 보다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도구 및 방법을 다각도로 발굴하고 다양하게 시도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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