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60대 중후반의 두 남자가 한 시간 넘는 통화를 세 번이나 했다. KBS에서 32년간 근무하면서 ‘아침마당’, ‘6시 내 고향’,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굿모닝 대한민국’, ‘일요스페셜’, ‘집중기획’ 등을 제작했던 송희일 PD와 나눈 수다였다. ‘젊은 나그네’라는 여행 모임에서 30년 넘게 만나 온 사이지만 이렇게 긴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다. 어딘가 아프다고 모임에도 나오지 않고 대화방에서 퇴장을 해버려 근황을 모르던 차에 송 PD가 촬영한 동영상을 누군가 올렸기에 내가 전화를 먼저 걸었었다.

작년 12월, 허리에 통증을 느껴 정형외과엘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해서 종합병원에 들러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 3기였다. 그게 올 1월 말이었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유전자 변이도 있어 얼마나 더 살지도 알 수 없는 충격적인 결과에 죽음이 떠올랐다.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고, 죽으면 연락할 명단도 만들어 보았다. 촬영 장비에 딱지를 붙이며 딸에게 물려줄 준비도 했다. 암과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피곤과 호흡 곤란, 빈혈, 뼛속 깊이 몰려오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웠다. 신장도 망가지고 입안과 항문이 헐고 자꾸 구역질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몸이 망가지고 마음도 무너지는 시련 앞에서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치료를 거부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생을 마감할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런데 동생이 자기 마음을 어떻게 읽었는지 수시로 전화했다. “형, 인터넷 그만 보고 딴생각하지 말고 바로 큰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세요.” 동생의 충고를 따라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한 달간의 강력항암제 치료까지 집중적으로 받은 뒤, 몸과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른 지 한 달밖에 안 된단다.

가장 큰 변화는 여유를 찾고 몰라보게 너그러워졌다는 것이다. 주로 생방송을 했던 터라 제시간에 즉각 즉각 일 처리를 못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고함을 질렀던 급한 성격이 본인도 놀랄 만큼 느긋해졌다. 자연과 새를 벗 삼아 그들을 촬영하며 신비한 경험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들판을 촬영하다 눈이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 30분 후 눈이 내렸고, 오리에게 ”연기 좀 해 봐“하고 말을 걸면 폭포 같은 개울을 기를 쓰고 올라가는 장면으로 오리가 응답해 주었다.

할 얘기가 별로 없었던 딸들과의 대화도 많아졌다. 없던 솜씨가 불쑥 생긴 건지, 딸이 아빠를 위해 만들어 준 음식도 맛있었다. 이젠 딸들의 잔소리도 싫지 않다.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아내와의 관계는 더 크게 변했다. 세종시로 내려온 뒤로는 웃을 일도 더 많아졌다. 설거지와 장보기, 집수리도 자청했다. 손재주는 없지만 퇴직 후 그거라도 해야 돈을 아낀다고 생각하니 재미있고 시간 보내기에도 좋았다.

생선 두 마리를 굽기 위해서 있는 그릇, 없는 그릇을 다 내놓는다. 손질한 생선 담을 그릇, 구운 생선 담을 그릇, 먹다 남은 생선을 담아 냉장고에 보관할 그릇까지 잔뜩 늘어놓는 남편을 보면서도 아내는 싫어하지 않았다. 전구 하나를 가는 데에도 어떤 공구가 필요한지를 몰라 온갖 공구를 다 늘어놓는 남편을 아내는 무슨 자동차 수리하느냐고 놀린다. 서툰 솜씨로 동영상을 참고하며 음식을 만들면서 ‘제조 과정’은 절대 보지 말라고 일렀건만 궁금한 걸 못 참아서 내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아내에게 이젠 화내고 짜증 낼 일이 없어졌다. 아내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무조건 괜찮다고, 징징대지 않으려고 무리하지 않고 적절하게 표현하며 소통하는 지혜도 익혔다.

그런 아내보다 자신이 한 살이라도 더 살아야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못된 남편, 수시로 짜증 내고 화내는 남편, 그런데 암까지 걸린 남편 병시중하는 아내의 뒤치다꺼리는 자기 손으로 하며 빚을 갚겠다는 남자의 진심에 울컥, 내가 눈물이 고였다.

무엇보다 기적 같은 변화는 매사에 감사하는 자신이라고 했다. 설거지할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내와 함께 장에 갈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염식 음식조차 맛있게 먹고 똥 잘 누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감사, 감사를 달고 산다. 암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친구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봄의 색깔이 보이고 차 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들렸던 암 병동이 영혼의 단련장이요 마음의 치유 공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제의 ‘송희일’이는 죽고 완전히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준 암, 자신의 인생에 반환점을 찍고 나침반이 되어 준 암이야말로 축복이라고 했다. 통증만 잘 관리하면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인사도 나눌 수 있는 암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얘기는 들어봤다. 하지만 암이 축복일 수 있다는 저 내공은 또 어떤 경지일까!

건성으로 다녔던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성경책 읽는 것이 큰 기쁨이다.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하느님이 더 특별하게 보살펴주는 손길도 느낀다. 물질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심플 라이프’,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친절한 매뉴얼이 될 수 있는 영상을 만들 계획이란다. 이제 더 오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를 위한 의미 있는 일로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송 PD의 결심에 경외심마저 들었다.

왜 우리는 매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도 뻔한 소리로 흘려듣는지…. 왜 우리는 죽을병에 걸려서야 뭘 깨닫고, 쫄딱 망해보고서야 뭔가를 느끼고,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뒤에야 철이 드는 건지…. 뭔가 위로가 되는 한마디를 건네려고 했던 전화 한 통이 큰 울림으로 돌아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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