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대표

 

민경보 논설위원
민경보 논설위원

2020년 5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촉발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을 앞둔 지난 6월 해당 가맹점들의 반발로 시기를 늦추었다가 지난 12월 2일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세종시와 제주도에서만 우선하게 됨에 따라 전국적으로는 1년 뒤로 또 후퇴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모든 매장이 아니라 전국에 100개 이상의 가맹점을 소유한 대형 프랜차이즈·카페·찻집·패스트푸드 가맹점만 저촉을 받게 되고, 개인·무인카페, 편의점은 제외된다.

이러니 규제를 받는 매장에서는 형평성 문제(제주도에서는 3300여 개 매장 중 10%만 해당)를 들어 보이콧하는 곳까지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보증금라벨(중복 환급을 막기 위해)을 일회용 컵에 일일이 붙여야 하고, 반환 요구를 하면 이를 확인한 뒤 300원을 되돌려 줘야 하니, 가뜩이나 심한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음료를 구매하고 다 마신 뒤 컵을 반환하면 보증금 300원을 돌려받는 이 제도는 고객이나 업소나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에이! 300원 안 받고 말지’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가격만 300원 올리는 제도가 되고 만다.

많은 일회용품 중에서도 유독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말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 기준 프랜차이즈 외식업 브랜드가 5404곳인데, 브랜드 프랜차이즈 19곳(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에서만 연간 약 10억 2000만 개의 플라스틱 컵이 사용(환경부 발표)되고 있다고 한다. 부피가 있어 눈에 띌 정도로 드러나는 것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다 보니, 전국 어느 곳에서나 버려진 것을 쉽게 볼 수 있어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회용 컵의 활성화는 커피자판기가 효시라고 할 수 있다. 특수 컵이라고 부르던 용량 380ml 이상의 인쇄된 종이컵은 1986년 아시안게임 전에 유명 햄버거가 상륙하면서 일회용 컵과 빨대(Straw) 등 일회용품들도 함께 수입되었는데, 그 당시 플라스틱 컵은 사출성형(射出成形:Injection Molding) 방법으로 생산되어 가격이 높았다.

플라스틱제품의 가격은 개당 중량과 시간당 생산량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종이컵과 가격에서 비교가 될 수 없었으니, 일회용 컵 시장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였다. 서울 원효로에 밀집해 있었던 플라스틱 포장용으로 일본에서 개발된 게토바시(蹴飛ばし) 성형기술로는 종이컵만큼의 품질을 대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종이컵과 달리 컵에 직접 인쇄하는 것은 여러 기술 부족으로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때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어떤 국민인가, 시장이 있으면 기술개발은 하고야 마는 저력을 가진 국민이 아닌가. 1990년 이후 플라스틱 성형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먼저 원자재인 플라스틱판(Sheet)의 품질이 균일해져 갔다. 판의 폭은 넓어지고 두께는 균일해야 성형공장에서는 불량률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압출기(押出機: Extruder)의 성능에도 많은 기술 개발과 발전이 있었다. 용융(melting)된 플라스틱을 균일하게 잘 밀어내기 위해 공급스크루(Screw Feeder)장치와 다이스(Dies:용융된 플라스틱판의 두께를 결정짓는 장치)의 기술개발과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기계적 장치(Calender) 등의 개발과 원자재를 제습(除濕)까지 하게 되었다.

성형(成形)에서는 진공성형(眞空:Vacuum Thermoforming)과 자동절단기(Trimming)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발전함으로써 591ml 용량의 컵을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그 후 압공성형(壓空: Pressure Thermoforming) 기계가 수입되면서 사출제품과 유사한 품질의 균일한 두께에다 콤파스(Compass)로 그려낸 정원(正圓)에 가까운 플라스틱 컵이 생산됨에 따라 비로소 컵 전용인쇄기의 수입으로 오늘날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지금의 플라스틱 컵을 비롯한 종이컵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일회용품 수입 대체품을 개발한 애국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가격경쟁까지 불붙으니 앞다투어 더 중량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금형 기술개발, 생산 공정개발은 물론 주변기기의 발전을 불러왔고, 이는 성형 기계의 동남아 수출로도 이어졌다. 더구나 내용물이 쉽게 흘러나오지 않게 컵과 뚜껑이 딱 맞게 성형되는 금형의 세공기술이 개발되고, 컵의 뚜껑에 뚫어진 구멍 하나도 뜨거운 커피를 마실 때 내용물이 진공이 되지 않게 내부 공기가 빠져나와 마시기 좋게 설계된 것이다. 또 기업이 원하는 광고는 플라스틱 곡면에 빠르게 인쇄(5도 컬러)를 하는 컵 전용 인쇄기술로 해결되었으며, 그에 따른 인쇄 부자재는 물론 잉크도 국산화가 되었다. 이 정도만 열거해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기술개발의 산물이고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재활용을 위해 환경부는 컵의 표준화를 얘기하고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마다 기계구조가 다르고 원자재가 다르고, 성형 방법 또한 다르며, 무엇보다도 금형이 곧 기업의 기술축적이고 자산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표준화를 하지 않아도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모양만 각양각색이지 재질은 세 가지(PET, PP, PE) 이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컵 표면에 인쇄된 잉크의 양은 재활용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드문 일이 되었지만, 옛적에 도장을 찍을 때 인주 밥이 많이 묻으면 도장이 뭉개지고 번지게 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최소량의 인주가 묻어야 선명하게 찍힌다.

이제 이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 단순한 생각에서 다시 시작해 보았으면 한다. 매장 내에서 음용되는 모든 용기는 다회용으로 하고, 외부로 나가는 소위 테이크아웃 음료는 일회용품으로 하자고 정하자! 그리고 과학적인 제품의 문제는 과학으로 풀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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