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80세 생일을 맞으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80대 현역 대통령이 됐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고령은 70세에 취임해 78세에 임기를 마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76)은 지난달 15일 재출마 선언을 했다. 미국은 지금 노인정치(gerontocracy) 전성시대다.

행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의회도 지난달 중건선거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82),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에 유임된 미치 매코널(80) 등 노장들이 이끌어 왔는데 내년 1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117차 미국 의회는 미국 역사상 ‘최고령 의회’로 의원들의 4분의 1이 70세 이상이다. 특히 89세 의원이 두 명이나 있는 미국 상원은 ‘양로원’(‘a retirement home’)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미국 정계의 노화 현상은 의학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활동 가능한 연령이 상향된 데에 기인하다. ‘80세는 새로운 70세’(‘Eighty is the new 70.’)라는 주장도 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든과 트럼프를 ‘슈퍼에이저’(super-agers)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버드 의과대학원 저널은 슈퍼에이저를 ‘70대와 80대이지만 자신들의 나이보다 수십 년 젊은 사람의 정신과 신체 능력을 가진 사람’(‘people in their 70s and 80s who have the mental or physical capability of their decades-younger counterparts’)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출입기자단장 피터 베이커(Peter Baker)는 바이든과 트럼프 둘 다 ‘쇠퇴하는 능력’을 의심받고 있으며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3분의 2는 이들의 재출마를 원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CNN은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나이가 부각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80대 미국 대통령 시대를 연 바이든 대통령은 ‘일하는 80대’라는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으나 앞으로 재선 도전을 앞두고 무거운 시험대에도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논평했다.

아직도 자전거를 타며 거의 매일 운동을 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을 (나이가 아닌) 활력(energy)과 업무 수행 능력으로 평가해 달라고 주문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바이든이 활기차며 총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세대 교체를 원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주당원들은 2024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주자가 될 경우 그를 이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맞수는 바이든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트럼프가 대선 최종 후보가 될 경우 민주당이나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낙선시키는 것이라며 바이든이 이를 해낼 수 있다면 4년 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미국 중간선거에서 18~29세 유권자의 63%는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이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대학생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이 주효했던 것이란 분석도 있다. 예상보다 좋은 중간선거 결과에 고무된 바이든은 기자들에게 차기 대선 출마 여부를 두고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 가족들과 상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그의 재선 출마 여부 결정이 어떻게 내려질지 전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는 달리 유럽에서는 장년정치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영국에서는 인도계 이민 3세이자 힌두교도인 리시 수낙(Rishi Sunak, 42) 전 재무장관이 지난 10월 총리로 선출됐다. 영국 역사에 총리가 등장한 1721년 이후 3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비(非)백인 총리인 수낙은 35세에 하원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하였으며 210년 만의 최연소 영국 총리다. 또 거의 동시에 이탈리아 총리로 취임한 조르자 멜로니(45)도 40대다. 이에 앞서 유럽 정치의 세대 교체를 선도한 지도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44)이다. 그는 5년전 39세의 나이로 지난 60년간 프랑스 정치를 지배해온 보수와 진보 양대 주류 정당 후보들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며 지난 4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58.5%를 득표해 41.5%를 얻은 극우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58)를 누르고 낙승했다.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의 최연소 지도자인 마크롱은 2002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연임에 성공한 프랑스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난주 마크롱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국빈으로 초청되어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과 그의 독립을 지원한 프랑스 간의 수세기에 걸친 전통적인 우의를 과시하며 아버지뻘 되는 바이든을 미국식으로 Joe라고 부르며 격의없이 소통하였다. 이러한 두 정상의 모습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지도자들 사이에는 세대차가 장벽이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2024년 미국 대선은 미국의 노인 대통령이 유럽의 장년 지도자들과 국제무대에서 계속 망년지교(忘年之交)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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