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철도 노사 잠정 합의안의 강제시행 법안에 서명했다. 노조가 합의안을 따르지 않고 파업을 할 경우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간주, 해고까지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하원에서 찬성 290, 반대 137로, 상원에서는 찬성 80, 반대 15로 가결됐다. 미 의회가 30년 만에 노사문제에 개입, 9일로 예정된 미국 철도노조의 파업에 초당적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미국 철도 사용자 측과 12개의 주요 철도노조 지도부는 지난 9월 백악관의 중재에 따라 노사간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었다. 이 합의안은 향후 5년에 걸쳐 임금을 24% 인상하고, 매년 1000달러(약 132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잠정안은 개별 노조들의 인준 과정에서 4개 노조가 표결 끝에 수용을 거부하는 바람에 합의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철도노조는 오는 9일 파업을 앞두고 있었다.

미국 경제단체들은 철도파업이 시행되면 물류대란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하루 평균 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또 회복 기미가 보이는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소비자물가 상승 등 인플레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친노조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는 바이든 대통령과 노조가 지지기반인 민주당이 노조의 파업을 막는 법안 제정에 앞장섰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당파적 갈등이 심한 나라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퓨리서치는 지난달 16일 미국인 88%(한국은 90%)가 지지하는 정당 편을 들어 서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나라에서 바이든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자기 지지기반인 노조에 반하는 정책을 취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미 정부와 여당은 그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기에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리 식으로 보면 노조 탄압에 나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예를 찾아보자.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를 단행했다. 친일 프레임이 씌워져 있는 보수 정권은 감히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결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일본 하면 죽창가를 부르며 반일을 부르짖는 진보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일본문화 개방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반대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자기편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김 전 대통령의 큰 치적 중 하나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진보 또는 보수 정권이 이처럼 국가를 위해, 자기 진영의 노선에 반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진영 내 반발을 살 것이다. 그러나 그 반발은 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 반면 그 조치나 정책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총선에 이기는 길이고 국가를 위하는 길이다. 우리처럼 진영 대립이 심한 경우 집토끼는 내키지 않아도 결국 자기 진영에 투표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는 방송지배구조 개선법도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추진했다면 여론의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때는 자기들 멋대로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다 정권이 바뀌자 과거 야당 시절 자신들이 내놨던 지배구조 개선법을 들고 나오는 것은 그 저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지금 무소불위의 의회 권력을 쥐고 있다. 정말 국가를 위해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민생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중도층의 지지는 절로 따라올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지금 손 놓고 바라보는 화물연대 파업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도 정권 탈환의 한 방법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기들 지지기반인 철도노조의 파업을 막는 데 앞장선 것처럼. 친노조적인 민주당이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중도와 보수가 동의할 만한 중재에 나선다면 인기는 치솟을 것이다.

사실 노조 개혁에는 보수 정권보다 진보정권이 더 적임이다. 노동계의 반발 강도가 보수정권보다 진보정권이 훨씬 약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기본적으로 진보정권을 우군으로 보는 탓이다. 만일 민주당이 노조 개혁에 나서 성과를 거둔다면 차기 정권은 중도층의 지지로 절로 굴러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금처럼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어 투쟁, 이태원참사의 정쟁 활용,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의 실언 등 소소한 가십 같은 문제로 정쟁을 일삼는다면 다음 선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쉬운 길을 버려두고, 더구나 그것이 국가를 위하는 길인데도 왜 험난한 길을 가려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우리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게 정치인들의 셈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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