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현직 대통령을 평가하는 미국 중간선거는 늘 여당의 무덤이다. 특히 경제가 나빠지면 유권자들은 여당을 준엄하게 심판했다. 오바마, 클린턴, 부시 정권이 모두 임기 첫 중간선거에서 대패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 초중반인 경우에는 예외 없이 야당이 대승을 거뒀다. 이번 선거도 3고(고물가, 고휘발유가, 고범죄율)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로 민주당의 참패가 점쳐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 패턴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선거 당일 에디슨리서치 출구조사 결과, 유권자들은 인플레이션(32%)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았다.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가난하다”(39%), “좋지 않다”(36%)고 암울한 평가를 내렸다. 공화당의 선거를 진두지휘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과 민주당이 5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냈다"고 민주당을 공격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압승을 일컫는 소위 ‘붉은 물결’현상은 일어나지 않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패배하고, 하원도 과반보다 겨우 4석 정도 더 얻을 전망이다. 사실상 중간선거 패배다.

그 이유를 미국 정치 분석가들은 공화당의 대선 불복, 여성의 낙태권 부정 등 극단적 정치구호가 바이든 정부의 낮은 경제 성적표를 상쇄해준 때문으로 봤다. 또 트럼프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트럼프키즈’ 위주로 검증되지 않은 후보들을 대거 내세운 것도 대승할 수 있는 선거를 망친 요인으로 분석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연방 상·하원 및 각 주(州)의 주요 공직에 출마한 공화당원 중 약 300여 명이 지난 대선 때 트럼프와 함께 선거 결과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선거 부정론자'로 추계했다.

이 같은 정치적 이슈는 각 주가 처한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다르게 작용했다. 뉴욕주 같은 민주당 텃밭에서는 트럼프의 대선 결과 부정이나 여성의 낙태권리 등 정치적 이슈보다 경제 악화나 범죄율 증가 등 ‘먹고사는 문제’가 더 관심을 끌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늘 힘을 못 쓰던 공화당의 약진현상이 나타났다.

민주당 캐시 호철 뉴욕주지사 후보는 공화당 후보에게 선거 초반 큰 차이로 리드했으나 가까스로 이겼다. 여성의 낙태권리나 대선 불복 같은 민주주의 위기라는 캠페인이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은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주에서는 지난번 대선 결과를 부정하거나 엎으려는 시도도 없었다. 이에 따라 양당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인 연방 하원의원 선거구에서 4명의 공화당 후보가 현직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승리했다. 이는 민주당이 하원을 공화당에게 내준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반면 선거 때마다 승자가 바뀌는 펜실베이니아 같은 스윙 스테이트에서는 대선 결과 부정이나 여성의 낙태권리 등 정치적 이슈가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와 함께 ‘반 이민, 반 세계화, 반 워싱턴정치’를 추구하는 트럼프식 극단주의나 검증되지 않은 트럼프키즈 후보들도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트럼프식 극단주의가 중도층에 대한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바이든 후보가 2년 전 얻은 표보다 훨씬 많은 표를 얻었다. 심지어 20%포인트 이상 더 얻은 후보도 있었다.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운동의 중심에 섰던 더그 마스트리아노 공화당 주지사 후보는 민주당 조시 샤피로 후보에게 14% 포인트 차로 완패했다.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큰 표차로 민주당 후보가 이겼다. 이와 함께 네바다, 애리조나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트럼프키즈의 패배는 공화당의 상원 장악 실패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그러나 공화당 내 트럼프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이번에 트럼프키즈는 210여 명이나 연방 상·하원, 주지사 등 중요 공직에 당선됐다. 트럼프를 비판하던 인사들은 당내 예비선거에서 대부분 낙방했다. 트럼프는 이처럼 강력한 지지층과 선거 압승을 발판으로 대권 도전을 하려 했다. 비록 그의 이 같은 계획이 어긋나 스타일을 구겼지만 그는 대선 출마의지를 접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 지지하는 팬덤이 그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허나 트럼프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여성의 낙태권리 부정, 충성파 위주 공천으로 양원 장악에 실패했다는 당내 반발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화당 내에서 반 트럼프 여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트럼프 키즈로 분류됐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인기가 트럼프를 웃도는 여론조사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국가기밀 누설, 탈세 의혹 등 사법 리스크도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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