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도보여행' 신미숙 대표

지난 10월에 다녀왔던 운탄고도 하늘길. 회원 한 명이 신미숙 대표의 뒷모습을 찍었다. 하늘 가까이 닿은 길을 걸으면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사진 신미숙 씨 제공.
지난 10월에 다녀왔던 운탄고도 하늘길. 회원 한 명이 신미숙 대표의 뒷모습을 찍었다. 하늘 가까이 닿은 길을 걸으면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사진 신미숙 씨 제공.

2016년 11월 11일 오전 11시. 다음 카페 걷기 모임 ‘신나는 도보여행’이 첫발을 뗐다. 여럿이 함께 걷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날짜를 창립기념일로 정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올해 11월 11일, 신나는 도보여행 회원들은 오후 1시에 모여 우면산 자락을 걸었다. 6년이라는 세월 동안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함께 길을 걸었다. 지금까지 지인을 카페에 초대하는 방식으로 모인 회원만 800명이 넘는다. '신나는 도보여행'을 만들고 걷기 좋은 길을 발굴해 찾아 걷는 신미숙(64) 대표. 그가 걷기만큼 좋아한다는 그것! 걷고 난 뒤 한잔하며 나누는 사람 사는 이야기다.

“모임 만들 때 ‘행복한 도보여행’도 생각해 봤어요. 그 모든 것에 앞서서 걸을 때 신나야 걸을 수 있잖아요. 처음 걸을 때 50명이 조금 안 됐어요.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함께 걸을 사람이 왔으면 해서 카페에 올라오는 글과 사진은 검색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도 꾸준하게 회원 수가 늘었어요.”

 창립 6년을 맞아 11월 11일 우면산에서 열린 기념 도보 행사. 사진 신미숙 씨 제공.
 창립 6년을 맞아 11월 11일 우면산에서 열린 기념 도보 행사. 사진 신미숙 씨 제공.

걸으며 세상과 소통한다
신미숙 씨는 걷기 좋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는 전문 도보 여행가이다. 신 씨의 머릿속 대부분은 ‘길’이 차지하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끼리끼리 움직이는 거예요. 모임에 들어와서 뭔가 한자리하려는 분이 있으면 또 불편하고요. 길을 함께 걷기 위해 오는 거니까 모두와 공평하게 잘 어울리는 게 좋아요. 그래서 모임 회원으로부터 기부도 안 받아요. 그만큼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다 보니 사람들이 건강한 모임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거라고 봐요.”

새로운 회원이 와도 오랫동안 함께 걸었던 사람처럼 스며들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신 씨. 편 가르기를 하려는 회원이 보이면 주의를 주고 싹을 잘라냈다. 적어도 자신과 함께 걷는 사람들이 낯설어하지 않고 소외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걷고 또 힐링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서운하다고, 섭섭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할 수 없어요. 내가 만든 카페니까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게 제 의지대로 했습니다.”

'신나는 도보여행'을 만들기 전 국내 최대 규모의 걷기 모임에서 중심 역할을 하다가 자신이 개척한 길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 신 씨는 따로 떨어져 나왔다. 함께 걷던 회원 몇 명이 같이 모임을 해보자고 하기에 고심 끝에 나와서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 누비며 걷기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강원도 운탄고도에 다녀왔습니다. 10km를 걷기로 했는데 회원들이 좀 더 걷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때 좀 힘이 들었어요. 10km 지점에서 멈추지 않으면 출구가 없었고요. 제가 회원들한테 그냥 10km 지점을 지나쳐 가겠다고 했더니 모두 너무 좋아했어요. 도롱이연못을 지나 화절령까지 20km를 걸었어요. 회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저 또한 감동받았습니다. 특히나 땅보다 하늘과 더 가까운 느낌의 길을 걸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하고 발길을 못 떼는 거예요. 저도 앞서 걸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그냥 단순히 걸을 뿐인데 왜 눈물이 나고 감동하나 생각해 보니 걷기를 통해 정신적으로 치유받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신 씨. 60년 혹은 그 이상 살면서 각자의 기억 속에 상처가 있다는 말이다.

 낙엽 수북한 우면산을 걷고 있는 '신나는 도보여행' 회원들. 사진 신미숙 씨 제공.
 낙엽 수북한 우면산을 걷고 있는 '신나는 도보여행' 회원들. 사진 신미숙 씨 제공.

얘기를 듣다 보니 신 씨에게 길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공간이었다. 신 씨는 충북 강내면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이후 부모님은 서울에 자리를 잡겠다며 신 씨를 친척 집에 맡겨두고 고향을 떠났다.
“서울 가시면서 어린 동생들은 데리고 가시고 저만 친척집에 보내셨어요. 곧 중학교 진학을 해야 하니 그 지역 명문인 청주중학교에 입학하길 원하신 거죠. 그때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옛날에도 차 한 대씩 다니는 신작로가 있었는데, 먼지 날리는 길을 보면 막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눈물을 흘리고 누가 올 것 같아서 쳐다보기도 했어요. 어떤 그리움이 항상 있었던 거죠. 그때부터 길이 좋아지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어린 신 씨가 많이 힘들어 하는 상황을 알게 된 부모님은 서울 집으로 데리고 갔다. 가족과 떨어져 있던 시간을 채우던 그리움과 함께 길의 의미가 신 씨의 마음에 새겨진 셈이다.

  길을 걷는 것은 자연과, 동료와 대화를 하는 일이다. 사진 신미숙 씨 제공.
  길을 걷는 것은 자연과, 동료와 대화를 하는 일이다. 사진 신미숙 씨 제공.

함께 걸으며 서로를 위로한다 
신 씨는 40대 후반이 돼서야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인생의 전환점이 다들 있잖아요. 그때가 저에게는 그런 시기였던 것 같아요. 아이들도 키우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요. 나보다는 중요한 게 많아서 나를 잘 못 본거죠. 길을 걸으면서 제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
몸을 낮추고 엎드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야생화에 카메라 렌즈를 대고 찍을 때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걷다보면 작은 생명체에 대한 소중함과 설렘을 느낀다. 사람이 채워주지 못한 모든 것을 자연 속에서 채워갔다.
“걷기가 준 행복 중 하나가 사람한테 실망하지 않고 기대지도 않게 된 겁니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걸으면서 제가 많이 위로 받았거든요. 함께 걷는 모두가 길 위에서 하나가 되고 위로 받아요. 동지야 모여라! 우리 함께 치유 받자, 우리 함께 힘을 내자! 그래서 제 얼굴이 항상 스마일인 겁니다(웃음).”
지금도 여전히 신 씨를 걷게 하는 원동력에 그리움이 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에 대한 그리움인 것 같다고 했다.
“굉장히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더라고요. 그런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 자꾸 걸었던 것 같아요.” 안 걸어본 곳 없이 다 걸어 다녔으니, 지금 '신나는 도보여행' 회원과는 그중에서도 좋은 길을 골라 찾아다닌다.
“전국 각지에 '걷기' 길이 참 많은데 생각보다 어려운 코스가 있을 때도 있어요. 제가 다녀봐서 힘들거나 어려운 길에는 사람들과 가지 않아요. 제가 감동한 길만 갑니다. 굳이 꼭 힘든 길을 걸을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가 30대도 아니고, 대부분이 50대에서 60대거든요. 목적지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걸으면서 힐링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자연 그대로인 길을 찾아 걷는다. 그런 길이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다고 신 씨는 말했다. 
“예를 들어 충청북도의 ‘양반길’도 참 좋았어요. 인위적이지 않아요. 산막이옛길과 이어졌는데 다듬어지지 않은 그냥 산길이지만 힘들지 않고, 정상을 향해 가지 않는 편안한 길이에요.” 
신 씨가 생각하는 좋은 길이 뭔지 물었다. 
“방해받지 않고, 어떤 모든 잡소리, 의미를 떠나서 길을 걸었을 때 나와 만날 수 있는 한적한 길이 좋은 길이라고 봐요. 사람이 많이 찾지 않지만 오롯이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창립 기념 걷기를 마치고 뒤풀이 장소. 기분 좋게 딱 한잔하며 마음을 터놓는 귀중한 시간이다. 사진 신미숙 씨 제공.
창립 기념 걷기를 마치고 뒤풀이 장소. 기분 좋게 딱 한잔하며 마음을 터놓는 귀중한 시간이다. 사진 신미숙 씨 제공.

도보 여행이 끝나면 기분 좋게 술 한잔!
걷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회원들과 함께 기울이는 술잔의 여유도 걷기의 전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다. 
“언젠가 뜨거웠던 여름이었는데 북한산을 정말 힘들게 걸었어요. 다리도 노곤하고요.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필요한 순간이었어요. 근데 오후 5시라 문 연 곳이 많이 없었어요. 결국 한곳 찾아 들어가서 다들 생맥주 한 잔씩 시켜 한 모금 들이켰는데 진짜 생명수인 거예요.”
각자 마음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맥주 딱 한 잔.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목까지 채워놓았던 지퍼를 내린 느낌이었어요. 많은 얘기를 하지 않지만 풀어지는 마음,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도보 후에 소주 한 잔, 막걸리 한잔, 맥주 한 잔은 생명수라고 봐요. 걸을 때와 술 한 잔을 놓고 있을 때 또 다른 거죠. 그래서 저는 뒤풀이를 참 좋아해요. 물론 상황이 안 돼서 못 먹을 때도 있지만, 항상 뒤풀이 장소까지 다 알아놓고 걷기를 계획합니다.”
지금까지는 도보를 했지만 그때부터는 삶을 공유하는 또 다른 시간이다. 걷기가 아무리 좋아도 한두 시간 걷다 보면 힘들기 마련이다. 
“뒤풀이는 걷기 모임에서 딱 5%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기분 좋게 걷고 마시고, 다른 사람의 삶과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사는 게 목표입니다.”
신 씨가 가장 두려운 건 걷지 못하게 될 그날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는 날까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가서 먹고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지금이 행복해요. 회원들과 함께 갈 길을 정하고 만나서 걷고, 한잔까지 마무리하는 삶이요. 언젠가 다리를 다쳐 못 돌아다닐 때가 있었는데 정말 걷는 게 제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 무릎이 허락하는 날까지 건강하게 걷고, 마실 겁니다!”

'신나는 도보여행 '신미숙 대표. 다리가 허락하는 날까지 걷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신나는 도보여행 '신미숙 대표. 다리가 허락하는 날까지 걷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신나는 도보여행' 신미숙 대표 추천 길과 먹거리 식당 3곳

안산자락길. 사진 신미숙 씨 제공.
안산자락길. 사진 신미숙 씨 제공.

안산자락길 : 서울 서대문구 
전국 최초 무장애 자락길이다. 독립문역이나 서대문구청 뒤쪽을 시작으로 오를 수 있다. 그중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 독립문역이 좋다. 서대문형무소를 오른쪽에 끼고 무장애 데크길로 걷다 보면 전망이 확 트인다. 안산은 메타세쿼이아 길과 잣나무길이 감동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순환형이다. 이렇게 좋은 길이 도시 속에 있어 놀랍다.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식당추천 : 종로구 사직로 ‘대성집
독립문역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다. 일제 잔혹사가 그대로 보존된 이곳을 지나 안산 자락길을 오르면 마음 한편이 시리다. 그 시린 맘을 국밥 한 그릇이 따뜻하게 채워준다. 메뉴는 세 가지로 간단하지만 그중 도가니탕이 좋다. 탕 안에 도가니 쓰지가 가득해 소주가 생각나는 맛이다. 브레이크 타임 오후 2~5시.

수리산 둘레길. 사진 신미숙 씨 제공.
수리산 둘레길. 사진 신미숙 씨 제공.

수리산 : 경기도 안양시, 군포시, 안산시
수리산은 군포시를 중심으로 안양과 안산에서 접할 수 있다.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지정된 도립공원이며, 시민의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갈치저수지 근처에 있는 ‘덕고개당숲’은 2002년에 ‘아름다운 마을 숲’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 길 중 안양 명학역에서 시작되는 수리산 둘레길이 좋다.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길이다. 이어지는 길이 너무 예뻐서 계속 되돌아보게 된다. 2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식당 추천 : 안양 댕리단길 ‘갈비로망’
수리산은 어디든 시내와 접근성이 좋다. 느긋하고 편안한 길을 걷고 난 후 왠지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을 때 간다. 고깃집은 누군가 1명이 고기를 구워야 해서 잘 안 가는데 이 집은 고기를 맛있게 구워주는 서비스가 있고 가성비도 좋다. 오롯이 대화에 집중하며 고기 한 점에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어 좋다. 

문경새재에 조성된 공원. 사진 신미숙 씨 제공.
문경새재에 조성된 공원. 사진 신미숙 씨 제공.

문경새재 : 경북과 충북의 사잇길

문경새재는 6.5km 전 구간이 단단한 흙길로 된 넓은 길로 맨발로 걸어도 무리가 없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옛길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뿐만 아니라 보부상들과 관리들까지 넘나들었다. 사계절 다 예쁘지만 가을 새재 길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의 간절함이 묻어 있는 길, 장원급제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는 듯한 문경새재 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은 길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식당 추천 : 문경새재 공원 입구 ‘왕건 집’
문경에서만 생산되는 약돌돼지구이가 맛있다. 지방마다 다른 지역 특산물 요리를 대할 때 기대감으로 더욱 즐겁다. 거정석(일명 약돌)을 먹여 키운 돼지를 숯불에 구우니 약돌 돼지의 쫄깃한 식감이 고추장 양념과 만나 혀끝에 오래 머물러 있다. 약돌돼지는 충북 쪽에서 문경 쪽으로 걷는 과거급제 길로 걸어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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