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연방의회 의원과 주정부 구성원을 대거 교체하는 미국의 중간선거에서는 집권당이 패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선 승자가 약속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은 좀처럼 2년 안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에 임박해 부각된 이슈의 영향도 큰데 많은 유권자가 쉽게 느끼는 오르는 물가, 즉 인플레이션이 이에 해당되는 현안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선거 전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큰 도전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많았다. 왜 그런지, 또 예고되었던 ‘빨간 물결(공화당 압승)’이 없는 선거 결과가 우리에게도 영향이 큰 미국 경제 현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자.

   금리인상·자국 우선주의는 지속될 것

작년에 출범한 바이든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다소 인플레이션을 부추겼을지 모르나 에너지 가격 급등 등 외부적 요인이 중요했고, 주요국들 모두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장바구니 물가가 작년보다 크게 올랐으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반응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억울해 할 수도 있으나 아마도 운칠기삼(運七起三)의 영역일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미국 중앙은행 연지준의 금리인상 기조에 영향이 없을 것이다. 중앙은행은 정치권의 간섭 없이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만을 근거로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금리를 올릴 때 과하지 않나 은연중 눈치를 보게 된다. 하지만 드물게 인정사정없이 과격한 정책을 펼칠 때가 있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의장이 그랬다. 지금의 연지준도 비슷한 모습이다. 좀비처럼 귀환한 인플레이션에 맞서 혈투를 벌이고 있다.

현재 인플레이션이 8% 수준이고, 고용 상황이 양호한 데다 임금 상승세가 높아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 목표로 언급한 2%는 너무 낮아서 좀 높여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하락세를 보일 때까지 금리 인상은 계속될 전망이고, 인상 폭 축소는 가능하나 물가 상승세 하락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국내산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큰 관심사이다. 상원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이 법을 통과시켰고, 최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발언을 근거로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법 개정이나 폐지가 가능할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상·하 양원의 압도적 지지가 필요해 결과를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조치는 기후변화 대응책의 일부인 동시에 첨단 제조업 생산시설을 미국 내에 유치하려는 ‘미국 우선’ 정책을 반영한다.

의회는 올 8월 IRA 통과 직전 양당의 극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확충을 목표로 하는 ‘반도체 및 과학법(CSA)’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자국 반도체 생산시설을 대폭 지원하고 한국·일본·대만을 포함하는 ‘칩4’ 반도체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자국우선주의 기조에 당의 구분이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 위협하는 ‘선거 불복’ 세력

미국의 주(州)들은 행정·입법·사법 3부 정부 조직을 갖춘 국가 수준의 자치권을 행사하는 정체(政體)이다. 우리 식으로 분류해 대선, 총선, 지자체 선거를 중앙선관위가 아니라 각 주가 관장한다. 대선을 예로 보자. 주마다 후보의 득표수로 결정된 우승자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차지하게 된다. 선출직인 주의 총무장관(Secretary of state)이 선거를 관장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조지아 주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증거는 조지아 총무장관과의 통화 내용이다. 그가 2021년 1월 2일 조지아 주 총무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2020년 대선에서 자신이 수십 만 표 차이로 이겼는데 총무장관이 바이든 승리를 잘못 공인했다고 우겼다. 트럼프는 결과를 뒤집기 위해 "내가 1만1780표가 필요해(I just want to find 11780 votes)"라고 했다. 아무도 뒷밭침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지만 트럼프는 지금도 대선에서 자신이 이겼다고 우기고 있다. 선거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는 이런 식의 억지가 되풀이되면 유지되기 어렵다. 언젠가는 선거부정으로 졌다며 권력 이양을 거부하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

대선결과 불복은 이미 심각한 후유증을 연출했다. 트럼프를 추종하는 폭도들이 작년 1월 6일 상원이 2020년 대선 결과를 인증하는 것을 저지하고 패배를 번복하기 위해 의회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고 사상자도 여럿 발생했다. 최근까지 900명 이상의 폭동 참가자가 검거되어 기소되었으며, 의회경찰을 공격한 혐의로 10년 형이 선고된 경우도 있고, 일부 주동자는 20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내란음모(Seditious conspiracy) 혐의로 재판 중이다. 트럼프는 올 9월 집회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의회폭동 참가자들을 사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언했다.

민주주의 위기가 언급되는 것은 다수의 공화당 후보들이 트럼프의 억지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화당 정치인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전통적 공화당원(Republican)과 트럼프당원(Trumplican)이다. 전자의 예로는 트럼프의 억지를 거부한 조지아 주 총무장관과 주지사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이 이번에 재선된 것은 희망적 조짐이다. 대선 결과를 부인하는 후보 중 당선자도 적지 않지만, 주요 지역에서 낙선한 경우가 더 많다.

끝으로 공화당 압승이 무산된 것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민주주의와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위협하는 정치인들을 뽑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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