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깨비시장의 ‘술을 빚는 사람들’ 

'술을 빚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목동깨비시장 심근보 상인회장(왼쪽)과 양천구 목3동도시재생지원센터 조진호 사무국장이 깨비어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술을 빚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목동깨비시장 심근보 상인회장(왼쪽)과 양천구 목3동도시재생지원센터 조진호 사무국장이 깨비어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지난여름 북적거리는 동네 시장 축제에서 수제 맥주를 마신 적이 있다. 시원하면서도 묵직하게 당기는 맛이 잠시라도 더위를 잊게 해줬다. 이 맥주의 고향은 목동깨비시장, 이름은 깨비시장과 맥주(beer)의 합성어인 ‘깨비어’다.

그런데 이 맥주, 축제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맛볼 수 없다. 알고 보니 정말 한번 맥주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장 사람들이 모여 야심차게 제조해낸 술이다. 가능성을 바라보고 ‘술을 빚는 사람들’이라는 이름도 내걸었다. 시작은 무모해 보였지만 제법 진지하게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술을 빚는 사람들’의 주축인 목동깨비시장 심근보 상인회장과 양천구 목3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조진호 사무국장은 말했다. 

이들을 만난 건 11월 1일. 목동깨비시장 안에 들어서니 김장에 쓸 배추와 무, 알이 꽉 찬 꽃게, 갓 삶아 나온 족발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 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시장 안은 주말에 있을 ‘제6회 깨비놀이마당’ 준비로 바빴을 것이다. 전국이 이태원 참사로 애도 분위기에 잠겼고, 손님 맞이를 위해 담가두었던 수제맥주 깨비어는 빛을 보지 못했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 함께 만들자고 하면 남녀노소 시장상인회 3층에 모여 힘을 모은다. 사진 목동깨비시장 제공.
맥주를 만드는 과정. 함께 만들자고 하면 남녀노소 시장상인회 3층에 모여 힘을 모은다. 사진 목동깨비시장 제공.

깨비어의 탄생은 시장길을 무대로 축제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발단이 됐다. 

조진호 시작은 시장에서 우리들만의 문화 행사를 하려면 뭐가 좋을까 얘기를 나누다가 우스갯소리처럼 흘러나왔어요. 길 가운데에다 테이블을 쭉 놓고 독일이나 네덜란드처럼 맥주 들고 드론으로 촬영 한번 했으면 좋겠다! 이게 진짜 시작이었어요. 

장난처럼 던진 이야기에 시동이 걸리더니 두 개의 협의체가 생겨났다. 맥주 주조하는 ‘술을 빚는 사람들’이라는 모임과 축제를 관할하는 ‘양천 놀이문화공동체 협동조합’이다. 상인회장인 심근보 씨가 주조 담당이라면, 조진호 씨는 축제 전반을 기획하고 사업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행정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시장 상인들과 일한다고 해서 나이 지긋한 시니어 세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두 사람 모두 1974년생, 40대 젊은 피다. 시장 상인회장이 젊어서 어쩐지 시장분위기는 첫 느낌부터 활기찼다.

심근보 계획대로 다 만들어졌어요. 11월에 예정하고 있던 축제를 위해서 드론까지 장만했습니다. 맥주잔을 한껏 들고 있는 모습을 찍어보려고요. 어쩔 수 없이 축제는 연기가 됐습니다. 나라 분위기도 있고 춥기도 하니 내년을 기약해야죠.

지난 7월에 열린 제5회 깨비놀이마당 현장. 사격, 전통놀이 등 세 가지 이벤트에 참여해야만 깨비어를 마실 수 있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지난 7월에 열린 제5회 깨비놀이마당 현장. 사격, 전통놀이 등 세 가지 이벤트에 참여해야만 깨비어를 마실 수 있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그렇다면 세상 많은 주종 중에 왜 맥주였는지 궁금했다. 

심근보 ‘술을 빚는 사람들’이 처음 얘기 나눴을 때 가까이 제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게 맥주였어요. 그러다가 막걸리, 소주, 양주까지도 하자는 말이 나왔어요. 문제는 맥주 하나만으로도 너무 벅차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맥주를 증류하면 양주가 되고, 막걸리를 증류하면 정종이 되니까 여러 종류의 술을 한번 만들어 볼까 했는데 힘들다는 걸 빨리 알았습니다(웃음).

조진호 다른 지역도 맥주 하나를 생산까지 하는 데 최소 3년에서 5년이 걸리더라고요. 국토교통부, 서울시, 지방자치구에서 주민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지원하는 도시재생 예산 중에 주민공모사업이 있어요. 2020년부터 올해까지 꾸준히 지원받고 있어요. 술을 빚는 사람들은 그 예산으로 술을 만들고 행사 때 나눠주기도 했어요. 맛이 괜찮다는 평가도 받았고요. 지금은 술을 빚는 사람들을 협동조합으로 만들기 위해서 서류 준비도 마친 상태입니다. 아직은 축제 현장에서만 맛보는 정도지만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맥주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친목 도모하고 시장 축제에 써볼 생각으로 맥주 주조에 도전했다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업까지 바라보게 됐다.

심근보 맥주 판매를 하려면 제조 면허가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시설이 필요해요. 아무리 못해도 7천에서 1억 정도 들어가기 때문에 내년에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맥주 만들어서 맛보고, 축제 일정이 잡히면 그때 내놓을 맥주를 만들고 있어요.

심 회장은 특히나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술을 만드는 활동에도 진심을 담았다고 말한다. 

깨비어 초기에 만들어 본 수제 맥주. 사진 목동깨비시장 상인회 제공.
깨비어 초기에 만들어 본 수제 맥주. 사진 목동깨비시장 상인회 제공.

심근보 솔직히 맥주는 제가 마시고 싶어서 만들었던 거예요. 혼자 마시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 불러야죠. 맥주 만들려면 10명 정도는 모여야 해요. 제가 만들자고 시장 분들에게 말하면 젊은 사람들부터 60대 어르신도 오십니다. 맥주 마실 때 고기도 구워 먹으려고 바비큐 그릴도 상인회 건물 야외 한편에 준비해 놓았습니다. 코로나로 만남 자체가 어려웠을 때 많이들 답답했잖아요. 이걸로 사람들이 모이고 시간을 나누는 의미를 찾기도 했습니다.

처음 맥주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맥주와 관련한 책도 샀지만, 한 번도 안 읽었다는 심 씨. 맥주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마포의 수제 맥주 전문가를 초대해 배우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양천구청 도시재생과 주민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은 '술을 빚는 사람들'. 사진 목동깨비시장 상인회 제공.
지난해 3월 양천구청 도시재생과 주민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은 '술을 빚는 사람들'. 사진 목동깨비시장 상인회 제공.

심근보 맨 처음 만들었던 맥주는 탄산도 없고 이상해서 그대로 버렸어요. 맥주 맛이 뭔가 이상하거나 달라질 때마다 질문하고 또 질문했어요. 전문가 선생님이 만들면 굉장히 맛있는데, 우리가 만들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딱 세 번 째만에 이게 우리의 맛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아직은 그때그때 조금씩 맛이 달라요. 우리한테 주조 시설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서도 지금은 제각각입니다.

조진호 깨비어는 주로 축제를 앞두고 준비하거나 아니면 먹고 싶은 사람들 몇 명이 모여 마셔요. 꾸준히 경험해 나가면서 차츰 성장 중입니다.

심근보 맥주 만들기에 참여하고 싶다는 분들 많으세요. 정기모임을 하고 싶지만 저뿐만 아니라 다들 본업이 있어 그렇게 못 하고 시간 될 때 모여서 만들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에서 끝이 아니라 뭔가 만들어서 결과물을 내고 함께 맛을 공유하고 말이죠. 정말 좋은 시간인 거죠.

빚은 술을 마시며 놀아보겠다고 했는데, 긍정적인 의견이 많이 모였다. 지역과 사회가 따뜻하게 조화를 이루다 보니 즐겁고 발전적인 내일을 생각하게 됐다. 최근 양천구의 한 축제에 초대받아 나가서 처음으로 깨비어를 팔았다는 '술을 빚는 사람들'. 참가한 여섯 곳 중 깨비어가 제일 맛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좋아했다.

조진호 '술을 빚는 사람들'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들이었어요. 누구든 모이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모으셨습니다. 우리 같이 모여서 즐겁게 해보자는 마음이 ‘술을 빚는 사람들’에 힘과 용기를 불어넣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깨비어가 과연 지역을 대표하는 수제 맥주로 탄생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고, 수입맥주가 잠시 줄어드는 틈을 수제 맥주 시장이 치고들었다. 너도 나도 새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다보니 이젠 수제 맥주 시장의 거품이 꺼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상품 혹은 경쟁력 생각 말고 사람들이 모이고 축제에서 맛볼 수 있는 따뜻함이 담긴 맥주 맛도 필요하지 않을까. 올해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운 마음을 안고 차분하게 보낸 뒤, 내년 봄쯤 100% 주민 손으로 만들어낸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목동깨비시장 골목. 언젠가 다시 이곳에 축제가 열리면 테이블과 의자가 길에 놓이고, '술을 빚는 사람들'이 정성껏 만든 깨비어를 마시게 될 것이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목동깨비시장 골목. 언젠가 다시 이곳에 축제가 열리면 테이블과 의자가 길에 놓이고, '술을 빚는 사람들'이 정성껏 만든 깨비어를 마시게 될 것이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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