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출고적체에 금리인상까지…경영 불투명성 ↑

철수하기에는 아까운 시장성…러시아·중국 시장 어쩌나

美 상·하원서 IRA 유예 법안 발의됐지만 낙관하긴 일러

현대차그룹 제네시스의 SUV GV80 모델.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제네시스의 SUV GV80 모델. 사진.현대차그룹

[데일리임팩트 김현일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연말을 앞두고 출고적체, 금리 인상, 러시아·중국 시장 부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수혜 배제 위기 등 겹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 모두 국내외 수요로 이어지는 민감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IRA의 경우 미국 상원에 이어 하원에서도 유예 법안이 발의된 데다 중간선거에서 야당이 선전할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는 만큼 개정 내지 법안 시행 유예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낙관하긴 이르다는 반응이다.

9일 현대차·기아가 최근 딜러들에게 제공한 납기표에 따르면 11월 초 기준 인기 모델들의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은 대부분 전달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출고 대기 기간이 긴 모델은 GV80 2.5 가솔린 모델로 전월과 동일하게 30개월(2년 6개월) 이상이 걸린다. GV80 3.5 가솔린의 경우 24개월에서 26개월로 납기가 길어졌다.

이외에도 △아반떼 하이브리드 24개월 △싼타페 하이브리드 24개월 △아이오닉5 12개월 △아이오닉6 18개월 △EV6 14개월 이상 △쏘렌토 하이브리드 18개월 이상 등 인기 차종 대부분의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은 전달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하반기 들어 차량용 반도체난이 하반기 들어 점차 해소되고 있다고 봤으나 그 속도가 아직 더디고, 그동안 쌓인 수요 적체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 보고 있다.

3분기 말 기준 현대차의 글로벌 백 오더는 100만대, 기아는 120만대 수준이다. 백 오더(back order)는 해외쇼핑을 할 때 재고가 부족해 주문 요청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즉시 배송은 불가능하지만 상품이 입고될 경우 발송이 이뤄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현대차는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이 개선됨에 따라 생산이 늘고 있으나 여전히 주요 시장에서의 재고 수준이 매우 낮아 인센티브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은 회복세를 보이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와 금리 인상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상페테르부르크 소재 현대차그룹 러시아생산법인(HMMR) 전경. 사진.현대차그룹
러시아 상페테르부르크 소재 현대차그룹 러시아생산법인(HMMR) 전경. 사진.현대차그룹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개인의 자동차 구매력을 억제하는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도 간과할 수 없다”라며 “이 기조는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비수기에 신차 호재 등도 기대할 수 없어 경영불투명성이 짙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해외 시장도 그리 좋지 않다. 해외판매 비중이 높은 현대차·기아 특성상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빗장이 걸린 러시아 시장과 폐쇄적인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도 골치거리다.

현대차 러시아법인(HMMR)에 따르면 현지 판매량은 지난 8~9월 두 달 연속 0대를 기록했다. 지난 2월 24일 이후 지속 중인 전쟁 여파다.

전쟁 개시 한 달 뒤인 지난 3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잠시 중단했던 현대차는 전쟁이 장기화되자 결국 10월 들어 공장 완전 중단을 선언했다. 기아 역시 현지 업체를 통해 위탁생산을 이어왔지만 그마저 중단한 상태다.

이미 BMW·폭스바겐·메르세데스 벤츠 등 유럽 완성차 브랜드들은 물론 점유율 1위였던 르노그룹, 도요타·닛산 등 일본 업체들도 러시아 공장을 철수한 상태지만 현대차는 철수 여부에 관해서는 논의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설립에만 5억 유로(당시 7500억원)이 들어간 데다, 지난 2020년 러시아 생산 확장을 위해 옛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을 인수하기도 하며 그간 투입한 비용이 적지 않은 만큼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철수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쟁 이후 시장 재진입을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높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점도 문제다. 최근 러시아 완성차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 역시 뼈아프다.

현대차의 올 상반기 중국 판매 실적은 9만500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9.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지난 2016년 113만3000대의 판매 실적을 올리며 최고점을 찍은 뒤 △2018년 79만대 △2019년 65만대 △2020년 44만대 △2021년 35만3000대로 매년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업계는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로 판매가 한 차례 급감한데다 코로나 19 사태가 연달아 터지며 판매량이 악화 일로를 걸었던 것을 현대차의 중국 시장 부진의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저가 모델 위주의 전략으로 ‘저가 브랜드’로 낙인찍힌 것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현대차는 지난 2021년 8월 중국 전략 발표회를 열고 △현지화 R&D 강화 △전동화 상품 라인업 확대 △수소연료전지 기술 사업 본격화 및 수소 산업 생태계 확장 △브랜드 이미지 쇄신 등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무엇보다 현대차·기아가 가장 민감한 것은 오는 2023년부터 발동될 IRA 적용에 따라 가장 큰 해외 시장인 미국에서의 전기자동차 보조금 수혜 배제다.

그동안 국내 정부와 정의선 회장이 미국 정부 설득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 온 데다, 미국 내에서도 IRA 반대여론이 일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소속 테리 스웰 앨라배마주 하원의원은 지난 4일(현지시간) 한국산 전기차 차별 조항을 3년간 유예하는 ‘미국을 위한 저렴한 전기차 법안’(Affordable Electric Vehicles for America Act)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지난 8월 개시된 북미 최종조립 규정 시행을 오는 2025년 12월 말까지 유예할 것 △2023년부터 적용되는 특정 광물 및 배터리 부품에 대한 규정 시행 일시 유예할 것이 명시됐다.

앞서 상원에서도 지난 9월 민주당 소속 래피얼 워녹 조지아주 상원의원에 의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조지아 주는 현대차가 최근 전기차 전용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기공식을 연 곳이기도 하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8일 밤 투표가 시작된 미국 중간선거 결과 역시 야당인 공화당의 우세가 점쳐지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승인했던 IRA 역시 개정의 여지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상원의원 100명 중 35명, 50개 주 가운데 36개 주의 주지사를 선출한다. 선거에서 의회 권력이 어느 쪽으로 넘어가느냐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의원들 입장에서 발의는 할 수 있는 만큼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유예 여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0%에서 20~30% 정도로 가능성이 커진 상태. 너무 안 좋았다가 좀 덜 안 좋아진 정도로 변했을 뿐”이라며 “수혜 업종과 피해 업종이 공존하는데다 정치적인 문제도 엮여있다 보니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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