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화서가 대표 겸 커뮤니티 활동가 윤유선 씨

사진 구혜정 기자.
이웃이 가져다 놓은 고구마를 난로 위에 굽고 있는 화서가 대표 겸 커뮤니티 활동가 윤유선 씨. 사진 구혜정 기자.

강서구 화곡동 화곡중앙시장. 서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스럽고 한적하다. 시장 골목 안 미동약국 2층에는 아직 문패가 내걸리지 않은 윤유선(52) 씨의 공간이 있다. 준비가 덜 돼 많이 어수선한데 넓기는 또 매우 넓다. 중고 거래사이트에서 사들인 소파며 탁자, 책꽂이 등이 주인의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윤 씨는 버킷리스트 속 꿈을 이뤄 가려 한다.
“근처에 책방이 없어요. 하나가 있긴 있는데 소문에 문을 닫을 거라더군요. 책도 읽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하고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복합문화 공간을 만들 거예요.”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뭘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봤다고 윤 씨는 말했다. 찾아보니 40대 때 꿈이 서점 사장이었다. 

버킷리스트를 끄집어 내다
“대학 졸업할 때쯤 어린이 전문서점이 인기가 생길 때라서 관심이 많았어요. 아동복지학을 전공해서인지 연세대 뒤편에 있는 어린이 전문책방 초방을 좋아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화곡동 ‘동화나라’도 자주 찾았어요. 아동도서를 들여놓아도 문제집이 아닌 진짜 아이들의 감성을 키울 수 있는 책을 가져다 놓을 겁니다. 아이도 오고, 어른도 오는 책방이죠. 지금 ‘그림책 큐레이터 초급과정’도 밟고 있고, 음료를 팔 생각이라 보건소에서 보건증도 받았고요. 할 게 참 많더라고요. 정리를 다 하고 난 뒤 책을 들일 겁니다.”
인터뷰할 때만 해도 공간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다음 날 메시지가 왔다. ‘화서가’가 어떠냐고 물었다. 뜻은 여러 가지라고 했다. 화곡동과 조화로움을 의미하는 ‘화’, 책과 강서를 뜻하는 ‘서’, 가는 서가와 집을 말한다고 했다. 
“이제 저는 독립서점 화서가 대표이자 커뮤니티활동가, 지역전문가로 불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 학생회장 출신인 윤 씨는 사회에 나가 ‘(사)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에서 기획실장을 하고 NGO, NPO 영역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이후 정당 당직자 생활을 거쳐 '마을계획'을 담당하는 마을사업전문가로도 경험을 쌓았다. 제8대 강서구의회 구의원으로 당선돼 지난 4년간 정치인의 삶도 살았다. 정치인으로서 보람이라면 시민단체 활동보다 직접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좀 더 큰 꿈을 꿔보고자 서울시 의원에 도전했지만, 공천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의정 활동을 마치고 후회 없이 일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어느 순간 번아웃이 왔다는 생각에 휴식 시간을 가지고 나니 슬슬 해야 할 일이 보였다. 내가 사는 곳을 살피고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윤 씨는 화곡중앙시장 안 미동약국 2층에 자리를 틀었다. 사진 권해솜 기자.
윤 씨는 화곡중앙시장 안 미동약국 2층에 자리를 틀었다. 사진 권해솜 기자.

“무엇보다 시장 안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어서 오고 싶었어요. 사람은 엎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야 하고 현장에 답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장통 안에 책방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았어요. 이곳에 온 이유가 또 있어요. 시장 안에 널린 게 반찬이고 안주잖아요. 시장을 이용해야지요. 떡볶이집 세 개, 떡집 두 개, 순댓국집 하나, 족발집 하나 있어요. 업무 협약도 체결하고, 제가 전화 주문하면 이곳만의 특화된 메뉴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거죠.”

3년간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곳이 다시 태어났다. 중고거래사이트에서 구매한 가구와 소파 등이 보인다. 사진 권해솜 기자
3년간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곳이 다시 태어났다. 중고거래사이트에서 구매한 가구와 소파 등이 보인다. 사진 권해솜 기자

온기를 더해 갈 독립서점 ‘화서가’
곧 ‘화서가’ 문패를 달게 될 이 공간을 주위 사람 대부분이 반대했다. 3년이나 비어 있던, 말그대로 폐허였기 때문이다. 
“완전히 버려진 곳이었어요. 진짜 한 달 사이에 아주 180도 달라졌습니다. 집을 수리하다 보니 1975년에 지은 집이더라고요. 아예 들어오지 말라는 분들도 계셨어요. 시장 상권이 안 좋아 정리할지도 모르는데 왜 계약하냐고, 잘 되는 곳으로 가라고 다른 곳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주위 사람의 만류에도 윤 씨는 다른 방향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사회적 경제 부분이 들어오면 괜찮겠다 싶었다. 
“청년 창업이라든가 좀 재미난 시장으로 바뀌면 좋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목2동에 계시는 지역활동가 딱 한 분만 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그 말에 힘입어서 계약도 했고요.” 
화장실을 고치는 데 돈이 좀 들기는 했지만, 중고거래사이트에서 웬만한 건 다 샀다. 복고풍 핑계 대고 최대한 돈도 아꼈다. 조명도 새로 달고, 치우고 광을 내고, 사람이 드나들며 온기를 주니 훈기가 돌고 제법 사람을 여럿 품을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주인은 2층 전부가 아니면 임대를 낼 수 없다고 하여, 2층은 물론 옥상까지 윤 씨가 이용할 공간이 돼버렸다. 일단 내부 공간 중 하나는 책방과 함께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이야기 나누는 장소다. 다른 하나는 그림이나 사진 등을 전시하는 갤러리이자 건강 생활 강좌 등을 할 수 있는 시설로 이용할 계획이다. 작품 전시를 염두에 두고 조명을 벽 방향으로도 설치했다.
“이 동네가 다른 동네에 비해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동 주민센터도 멀어서 급하게 일을 보려면 택시 타고 가야 해요. 주민 거점 공간도 없고, 문화 시설도 없으니 문화센터 역할도 해냈으면 좋겠어요. 특히 근처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작품 전시를 위해 카페 등을 빌린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런 청소년에게도 도움 되는 공간이 돼야겠죠.”

화서가의 또다른 공간은 전시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벽쪽을 향해 조명도 설치했다. 사진 권해솜 기자.
화서가의 또다른 공간은 전시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벽쪽을 향해 조명도 설치했다. 사진 권해솜 기자.

책방은 우선 1인 주식회사로 시작할 계획이다. 결국에는 복합 문화 플랫폼과 관련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단한 소명 의식이 있다기보다 예전부터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고, 세 명 이상 만나면 신나는 일이 생긴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어요. 저는 특히 사회에 나와서 만난 사람에게서 되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인복도 있고요. 좋은 게 있으면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봐요. 이 나이 들어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게 행복 아닐까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콘셉트는 건조한 친절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뭔가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겠지만, 윤 씨는 '건조한 친절'이 콘셉트라고 했다.
“책방이라고 하면 손님이 오는 곳이니 친절해야 할 것 같고, 다 접대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러나 책을 매개로 각자가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과하지 않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의 성격이 강한 거죠. 그리고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맥주, 막걸리, 와인도 마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책도 보고 맥주도 마시는 ‘책맥’이라는 것도 있던데, 저도 그렇게 운영하려고 합니다.”
이후에는 막걸리나 맥주를 빚는 커뮤니티도 만들 계획이다. 막걸리는 만들어서 팔고, 와인은 한 잔 와인 형식으로 판매할 생각 중이다. 
“막걸리를 좋아하긴 해요. 예전에 마을 사업 전문가로 일할 때 막걸리를 담가봤습니다. 근데 신기한 건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 물, 담기는 그릇에 따라 막걸리 맛이 달라지잖아요. 맥주하고 막걸리 정도는 만드는 동호회를 만들 거예요. 제가 좋아하니까요(웃음).”

 강서문화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인 손영환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배우고 있다는 윤 씨. 손 선생 체본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강서문화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인 손영환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배우고 있다는 윤 씨. 손 선생 체본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누구든지 환영하겠지만 특히 경력단절 여성과 청년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작은 기회라도 만들고, 창업도 하고, 용기 내어 자신을 가꾸는 일을 돕고, 함께 하고 싶다고 윤 씨는 말했다. “옥상도 사용할 수 있으니 정리가 더 되고 따뜻해지면 옥상에서 시낭송회 같은 행사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 공간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지 생각은 참 많아요.”
윤 씨는 6개월 정도면 영업이 안정권에 들고, 곧 재정적으로도 플러스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미 내부에 있는 사무실 한쪽을 월세를 내고 이용하겠다는 청년 두 명의 상담도 받았다. 
“그냥 희망을 보고 걸어가는 거죠. 지금 사람들이 다 눈여겨보고 있어요. 얼마나 잘하나 관심이 너무 많아요. 이곳이 쇠퇴하는 곳이 아니라 북적대고 진한 사람 냄새가 나고, 많이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곧 사람들이 책방 안을 누비고 함께할 그날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마냥 행복할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화서가로 들어가는 1층 입구에 작게나마 추모 자리를 마련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윤 씨는 반복이 아닌 퇴보라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윤 씨는 세상 모두가 아프지 않고 국가와 지역 안에서 별 탈 없이 웃고 다시 모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화서가로 들어가는 1층 입구에 작은 추도공간을 마련했다. 사진 제공 윤유선 씨
이태원 참사 이후 화서가로 들어가는 1층 입구에 작은 추도공간을 마련했다. 사진 제공 윤유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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