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일본 도쿄 우에노(上野)공원. 1876년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도시공원이다. 넓이가 54만 평방미터나 된다. 봄에는 벚꽃놀이 인파가 밀려들어 인산인해다. 밤 벚꽃놀이를 위해 회사 말단 직원이 아침에 공원으로 출근, 자리를 잡고 퇴근하는 부원들을 기다리기까지 한다.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호수, 동물원 등 볼거리가 많은 서민들의 명소다.

공원 입구에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 동상이 있다. 그는 사쓰마 번(薩摩藩, 현 가고시마 현) 출신으로 1867년 동향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조슈 번(長州藩, 현 야마구치 현)의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와 함께 264년간 지속된 도쿠가와(德川) 막부(幕府) 정권을 쓰러뜨린 중심인물이다. 새로 세운 혁명 정부는 정치·경제·문화 전 분야에 걸쳐 대개혁을 단행, 일본을 근대화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라 부르는데 다카모리는 이에 결정적 공을 세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유신 3걸이라 불리우며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대하 드라마의 중심인물로 종종 등장한다.

도쿄의 명소인 공원에 동상을 세울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그에게는 큰 흠결도 있다. 일본이 그토록 큰 가치를 부여하는 메이지 유신 정부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한론(征韓論), 즉 조선 침략을 주장하던 그는 메이지 정부의 노선 투쟁에서 밀리자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를 따르던 불만 세력들과 함께 1877년 세이난(西南)전쟁으로 불리는 반란을 일으킨다. 그가 이끌던 반란군은 중앙 정부군에 패퇴하고, 그는 자결한다. 이 반란으로 1만2000여 명의 사망자와, 2만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반혁명분자요, 반란세력의 수괴인 그는 곧바로 사면 복권된다. 그의 동생과 아들이 새 정부의 고위직에 등용되기도 했다. 그의 과(過)보다 공(功)을 더 높이 산 때문이다. 반란을 일으킨 것은 잘못이지만 그의 공적이 과를 덮고도 남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마오쩌둥(毛澤東)도 많은 과실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핍박을 받았던 덩샤오핑(鄧小平)은 “그의 공이 7, 과가 3”이라며 그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그는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는다.

우리는 이런 이웃 나라들과 너무도 다른 것 같다. 모든 게 완전무결해야 한다. 조그만 흠결이 있어도 안 된다. 그의 공이 아무리 커도 조그만 흠이 있으면 능지처참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역사에는 존경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완벽한 인간은 세상에 없는데도 말이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도 요즘 같은 진영 대립에서는 전 국민의 숭앙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는 존경받는 대통령도, 동상도 없다.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만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존재로 젊은이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친일청산을 하지 않고, 장기집권을 꾀한 대통령으로 인식될 뿐이다.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진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그를 장기집권, 인권유린의 독재자로만 생각한다. 이념편향의 잘못된 역사교육,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 때문이다.

지난 5월 사망한 김지하 저항시인에 대한 평가도 완벽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운동권의 상징 같은 존재였던 그였지만 그의 장례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운동권 인사들 대부분 참석하지 않았다. 운동권이 그의 말년 행적을 배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성추행 의혹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경우 운동권은 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까지 마련, 대대적으로 추모했다. 박 전 시장보다 김지하 시인의 민주화운동 공적이 적다고 할 수 있을까? 운동권의 편향된 시각이 극명하게 드러난 좋은 예다. 고인의 49재에서 “김 시인의 공은 9요, 과는 1”이라고 언급한 유홍준 교수의 말을 우리 모두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지난 10월 26일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43주기였다. 그러나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지나갔다. 선진 대한민국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었는데도-. 그의 과는 묻지 말고 무조건 칭송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를 정당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과는 과대로, 공은 공대로 바르게 평가하고 후손에게 가르치자는 것이다. 우리에겐 박 대통령의 동상 하나 없다. 박 대통령이 사이고 다카모리보다 못한 인물인가? 진영논리로 역사를 재단하지 말자.

아직도 유신청산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는 계속 활동 중이다. 제주 4·3 사건, 여순반란사건 진상 규명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미래 지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들춰내고 흠을 찾아 응징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물론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정치세력들이 나설 일이 아니다. 감사하지 않고 은혜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 사물을 좀 더 너그럽게 보자. 쪼잔하게 시빗거리도 아닌 것 갖고 다투며 세월을 허송하지 말자.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