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얼마 전 우연한 자리에서 ‘숭례문(崇禮門) 방화 사건’을 언급했더니, 몇몇은 “가물가물하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이 탓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제 같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 멀지도 않은 2008년 2월 10일 저녁에 치솟던 검은 연기와 불꽃. 그리고 큰 화마(火魔)에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소중한 문화유산 숭례문을 지켜보기만 했던 그 충격이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까지 했습니다.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조성되었습니다. 많은 문화유산이 임진왜란(1592~1598) 때 전소된 후 재건이라는 아픈 상흔(傷痕)을 간직한 가운데, 숭례문은 600년의 세월을 무사히 버텨왔기에 더욱 각별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숭례문이 이성을 잃은 한 남성의 방화로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참담하고 부끄럽기까지 한 사건이었습니다.

(화마에 휩싸인 숭.례.문. 영상자료를 차마 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것은 방화범 채(蔡) 모 씨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6년 4월 26일 창경궁 문정전(文政殿)에도 불을 지른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그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추징금 1,300만 원)을 선고받았는데, ‘고령의 70대 노인’이라는 점을 형량에 참작했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도무지 동의할 수 없고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채 모 씨가 집행유예 기간에 숭례문 방화라는 더 크고 무거운 죄를 저질렀습니다. 필자가 허탈해하는 이유는 70대 고령이라는 이유로 감형을 선고하는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솜방망이 의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독일 대법원이 2018년, 95세의 나치 조력자에게 4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투옥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던지는 매서운 메시지로 인식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재앙은 늘 겹쳐서 닥친다[禍不單行]”라는 사자성어처럼 얼마 전 ‘신당역 살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2022.9.14.). 언론에 의하면, 범인은 만나기를 거부하는 동료 여성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성이 고소했고, 검찰은 전형적인 그 ‘스토킹 범죄자’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는데, 그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필자는 법조계 관행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재판정에서 징역 9년이란 무거운 구형을 받은 피고인, 그것도 ‘스토킹’이라는, 평상의 범주를 벗어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법정 구속하지 않고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게 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의 전형적인 폐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 칼럼 공간에서 필자는 <‘솜방망이 처벌’, 부끄러운 적폐(積弊)>(2018.6.15.)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른바 ‘솜방망이 처벌’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정론은 아니지만, 필자는 서구(西歐)의 사회질서 통념이 우리 것과 사뭇 다르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서구사회가 ‘냉기’가 감도는 직선적 논리를 추구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온기’를 느끼는 굴곡형 논리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경우를 보곤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긍정적인 징후가 보입니다. 1980~1990년대 ‘마이카 시대’에 진입했을 때 여기저기서 눌러대는 자동차의 경종과 더불어 양보 없는 앞지르기 운전 행태가 만연했습니다. 당시 필자는 우리 사회의 발전 수준은 교통법규를 지키는 수준과 비례할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근래엔 시내에서 그런 굉음이 거의 사라지고, 교차로의 횡단보도에서 자동차들이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몇십 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는 그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성숙해진 시민의식과 함께 분명 엄격한 벌칙을 부과한다는 경고도 한몫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제는 예전과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기대할 수 없다는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 끔찍한 ‘숭례문 방화 사건’과 그 비참한 ‘신당역 살해 사건’의 공통분모는 다름 아닌 사이코패스에 대한 국내 법정의 너그러운 판결, 바로 ‘솜방망이 처벌’이라 생각하면서 국내 법조계가 범죄에 대하여 좀 더 엄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비현실적인지 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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