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성은 67%, 남성은 57.9%로 나타났다. 2014년에 비해 여성은 14.8%, 남성은 15.2%포인트 높아진 인식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평하게 분담하는 비율은 20% 내외로 여전히 낮다. 2019년 기준, 맞벌이 가구 여성의 돌봄,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7분인 데 비해 남성은 54분밖에 되지 않았다. 남편 외벌이 가구일 때 여성이 5시간 41분, 남성 53분으로 아내가 밖에서 일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식사 준비나 빨래, 청소, 설거지같이 제때 해야 하는 반복적이고 고달픈 일을 수행하는 반면 남성은 아이와 놀아주기, 정원 관리, 쇼핑 같은 다분히 오락적이고 가시적이며 융통성 있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는데 왜 아직도 가사 분담은 요원한 일일까? 가사와 자녀 돌봄은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남성들뿐만 아니라 사회나 여성들조차도 그런 인식을 뿌리 깊게 갖고 있다. 둔감한 기업들의 태도도 문제다. 개정된 법을 근거로 직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기업이 친가족적인 정책을 먼저 펴는 곳은 별로 없다. 남성은 그가 가족에게 얼마나 관심과 사랑을 쏟는가보다 집 밖에서 무엇을 하고 돈을 얼마나 버는지로 평가받는 사회 분위기도 가사 분담을 억제한다.

아버지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가사 분담을 어떻게 하는지, 바람직한 모델을 못 보고 자란 환경 탓도 크다. 안 해 봤으니 서툴고 서투니까 가사 분담을 안 하는 악순환 속에서 자신은 소질이 없으니 아내가 하는 게 낫다는 것이 남편들의 군색한 변명이다.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 만들고 설거지하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 어머니나 누이, 친구들의 시선도 한몫한다.

여성들 자신도 가사나 자녀 돌봄을 여자 일이라고 생각하고 요구하지 않거나 아예 본인이 해버리는 것도 원인이다. 일껏 해 주어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남편들은, 끊임없이 간섭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타박하거나 했나 안 했나를 점검하며 재촉하는 아내의 잔소리 때문에 아예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남편이 도와주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도 있다. 가사와 자녀 돌봄은 자신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힘은 들어도 일을 해내는 자신에게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여권이 신장하였다고는 하지만 가사 분담을 가로막는 걸림돌의 뿌리는 너무나 깊고 깊다.

가족도 알아주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무급 가사노동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안 하면 금방 표가 난다. 함께 일하는 재미도 없이 혼자서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지루한 가사노동은 출퇴근 시간도 없고 휴가도 없는 일이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다시 집으로 출근해야 하고 주말에는 밀린 일 때문에 더 바쁘고 피곤하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으면 남성들은 가사 분담을 더 안 하는 경향도 있다.

결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가사 분담을 하려면 보다 체계적이고 정교한 전략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집안일을 가사 분담표를 만들어 눈에 보이게 해야 한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은 전기밥솥이나 세탁기, 진공청소기가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맡길 사람을 구했다고 그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오기 전까지 기다려야 하고,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달래며 유의 사항을 전달한 뒤, 일일이 물어오는 전화에 응대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갈 준비까지 해야 한다.

가사 분담에 합의하고 약속만 하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약속해 놓고도 까먹거나 제대로 안 해 놓고 아예 손도 안 대는 남편도 있다. 상대적으로 서툰 남편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고 기다려 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눈물겨운 노력과 함께 끊임없이 조율하고 재협상을 하면서 가사 분담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도 생긴다.

여성들은 50; 50 가사 분담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한 가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이 제대로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업에서 직무 분석하듯이 그 일의 성격을 정확하게 공유하고 최소한의 관리 수준을 합의해야 한다. 그 많은 일을 일일이 분석하고 합의를 끌어내느니 내가 하고 만다는 여성이 많다. 하지만 내가 해버리는 것이 당장엔 속 편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면 가사 분담은 영원히 물 건너가고 만다. 자녀들 또한 바람직한 성 역할 태도를 배울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만 하면 그저 오냐오냐 키우지 말고 자녀들의 연령에 맞춰 가사 분담을 시켜야 부모의 노고도 알게 되고 결혼 후, 가사 분담으로 인한 불화를 줄일 수 있다.

기업이나 국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변화를 끌어내는 출발점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한 개인의 변화가 결국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파도로 이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가사와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만 떠맡길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자립을 위한 생활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제 공정하게 분담해야만 한없이 추락하는 출산율 또한 높일 수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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