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얼마 전까지 도서관은 대체로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며 고시와 취업공부, 입시공부 하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산자락이나 공원 속 등 조용한 곳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고시나 무언가 중요한 시험이라면 깊은 산속 암자로 들어가 면벽수련하듯 홀로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현대의 도서관은 그와는 정반대다. 가장 큰 변화는 도서관이 주로 학생이나 수험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바뀌어 이제는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시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시설로 여기는 것이다. 도서관이 집중적 공부의 장소에서 즐거운 일상적 책 읽기 장소나 평생학습사회의 주요 정보와 자료 구득의 중심이 되고 있다. 시민들 커뮤니티 생활의 장소로도 사용된다. 전시회나 연주회를 위한 공간을 함께 갖춘 도서관들도 생긴다. 요즘 많은 정보들이 인터넷 등을 통하여 유통되고 흘러 다니고 있으나 좀 더 신중한 판단이나 생각을 위해서는 원전(原典)인 책과 문헌을 찾아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을 양식 있는 시민이라면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도서관 위치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많은 시민이 가기 편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접근성이 좋은 곳이어야 하며 이는 결국 도시의 중심지를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에서도 도서관이 도시 중심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때로는 중요한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꼭 시설이 커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만나고 기억하기에 자연스레 랜드마크가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영국 맨체스터시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나의 머릿속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의 핵심 ‘공업도시’로, 그리고 최근에는 ‘축구를 아주 사랑하는 도시’ 정도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심지를 답사하며 마주친 도서관은 나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성 피터스 광장(St. Peter‘s Square)에 면해 시청과 나란히 서 있는 입지부터 파격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높은 기둥들이 둘러싸는 2층 높이의 장중한 현관이 방문객을 맞아들이며 그 뒤에는 마치 신전 같은 거대한 원형 평면과, 지붕이 둥근 건축물이 주변의 사각형 건물들과 구별되며 은근히 중요한 시설임을 드러내고 있다.
둥근 지붕 아래 궁륭(穹窿) 천장이 있고 그 아래가 주 열람실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상상력과 창조력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듯한 높은 천장이 시선을 위로 높이 향하게 한다. 1934년 시청을 증축하며 별도로 현상설계를 통하여 지어진 이 건축물(건축가 Vincent Harris)은 당시 영국에서 지방정부가 지은 가장 큰 공공도서관이었다(열람석 약 2000개). 이 건물은 지어지자마자 앞에 면한 성 피터스 광장의 명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가 되었다. 건물 내에는 그림과 조각 등 풍부한 예술작품이 있고, 지하에는 극장(2014년 증개축 이후 다른 곳으로 이전)이 있어 다양한 이용자를 맞이한다.
그리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변화가 근년에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 지어져 오랫동안 서울시 청사로 사용되던 건물이 10년 전 도서관으로 재단장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었다. 이름도 군더더기 없이 ‘서울도서관’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 과연 그 입지도 서울을 대표할 만한 곳이다. 입지나 이름뿐 아니라 실제로 ‘도서관’이라는 시설을 많은 시민들이 추앙하며 서울을 대표하는 시설이 된다면 시민과 모든 방문객들은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단번에 알게 될 것이다. ‘책 읽는 도시 서울’ 얼마나 멋지고 미래지향적인가!
서울 강남의 한 쇼핑몰에도 얼마 전 진기한 도서관이 생겼다고 난리다. 정말 그 위치나 높은 서가(書架)와 햇빛까지 드는 하늘이 보이는 높은 내부공간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을 만하다. 다만 도서관이 주인이 아니라 쇼핑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것이 참 아쉽다. 그 자리에 그대로 진정한 도서관을 만드는 것은 선진국 대한민국에 너무 부담스러운 일일까? 최소한 도시기본계획에서 설정한 3개의 도심(역사도심, 강남도심, 영등포도심)만에라도 도서관이 하나씩 우뚝 서기를 바라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