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측, 그동안 받은 선수금으로 공사미수금 9천억 해결 가능 주장

하지만 신용평가사 설명 보면 남아있는 선수금 거의 없는듯

9천억 대부분 떼이고 국내외 신인도 추락 등 직간접 피해 엄청날 수도

서울시 장교동 한화그룹 빌딩 전경. 사진.한화그룹
서울시 장교동 한화그룹 빌딩 전경. 사진.한화그룹

한글날 사흘 황금연휴를 앞둔 지난 7일 금요일, 한화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한화와 ㈜한화의 100% 자회사인 한화건설(대표 김승모)은 깜짝 놀랄만한 기습공시를 했다. 한화그룹이 김승연 회장까지 직접 나서 심혈을 기울인 끝에 수주를 했고, 지난 10년간 대대적으로 자랑해왔던 이라크 비스야마 신도시건설 사업에서 전면 철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업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인근 비스마야란 곳에 2012년부터 2027년까지 모두 101.2억달러(한화 14.4조원 상당)를 투입, 주택 10만호, 상주인구 60만명 정도의 분당급 신도시를 만드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한화그룹 역대 최대 해외수주였다.

한화건설은 2012년 이라크 국가기관인 국가투자위원회(NIC)로부터 계약금액 80억 달러의 비스마야 국민주택도급사업(BNCP)을 수주했다. 또 비스마야 신도시의 도로, 상하수도 등 인프라 사회기반시설 확충사업인 SI(Social Infra) 사업은 2015년 4월 계약금액 21.2억달러에 수주했다. 납기(공사준공)는 2건 모두 2027년 12월말이다.

지난 7일 공시에서 한화건설측은 BNCP와 SI의 공정율이 현재 각각 약 38%, 26%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화건설 반기보고서를 보면 지난 6월말 기준 이 두 프로젝트의 진행율은 각각 44.99% 및 29.02%로 나온다.

공정율과 진행율의 명확한 차이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다만 진행률 설명에 “현재 물리적인 공사는 완료되었지만, 발주처의 준공확인서 발급지연, 하자보수요구 및 변경계약협의 등의 사유로 인해 계약상 공사종료일이 경과한 현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공정률은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았는지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공사진행 정도는 30~40% 선으로 보인다. 한화측 언론 설명에 따르면 현재까지 3만호 정도 주택이 완공돼 10만명 이상이 거주중이라고 한다.

한화건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BNCP의 수주총액은 10조3432억원, 기납품액 4조6530억원, 수주잔액 5조6901억원이고, 미청구공사와 손상차손누계액은 각각 0, 공사미수금은 6019억원, 대손충당금은 256억원으로 각각 나온다. 

공사대금 중 아직 6019억원을 못받았고, 이중 256억원 정도를 사실상 떼였다고 보고 미리 비용으로 설정해 두었다는 얘기다.

또 SI사업은 수주총액 2조6532억원, 기납품액 7700억원, 수주잔액 1조8831억원, 미청구공사 464억원, 공사미수금 2116억원, 대손충당금 63억원, 손상차손누계액 0(제로)다.

두 프로젝트를 합쳐 지난 6월말 공사미수금은 모두 8135억원으로, 한화건설 전체 미수금 1조478억원의 79.6%에 달한다. 합계 대손충당금 319억원도 회사 전체 충당금의 100%다. 한화건설이 현 시점에 떠안고 있는 위험의 상당부분이 이 이라크사업에서 나오고 있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말 4537억원이었던 비스마야 공사미수금 규모는 2018년말 1227억원으로 크게 줄었다가 2019년말 5851억원, 20년말 7876억원, 작년말 7415억원, 그리고 지난 6월말 8135억원으로 계속 늘어왔다.

처음에 요란하게 출발했던 이 사업은 2014년 수니파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상당 지역을 점령하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상황으로 몰렸다. 2017년 전쟁 종결 선언으로 안정되는가 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공정이 중단된 이후 2년 이상 정상화되지 못했다.

2020년 9월 일부 보도에 따르면 비스마야 신도시 현장이 대폭 축소돼 한국인 필수 인력 100명만 남아있고, 외국인노동자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유가급락으로 이라크 정부 재정수입이 크게 줄어 공사대금을 제대로 주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었다.

지난해부터 유가가 급등했는데도 공사는 계속 지지부진했다. BNCP 공사진행율은 20년말 44.3%, 작년말 44.83%, 올해 6월말 44.99%였다. 

이라크사업이 대부분인 한화건설의 해외도급건축공사 완성공사 및 수익인식액은 지난해 125억원, 올 상반기 193억원에 각각 불과했다. 올 상반기 한화건설 매출의 1.07%에 불과한 금액이다.

2019년 6619억원, 20년 3597억원 선이었던 이 공사현장 매출액이 작년이후 이렇게 줄어버린 것이다. 아주 조금씩만 공사를 진행하면서 그만큼의 공사비만 받은 것이었다. 거의 진척이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한화와 한화건설은 지난 7일 “NIC의 기성금 지연지급 및 미지급 등 계약위반을 이유로 계약에 따라 NIC에 계약 해지를 통지했다”고 공시했다. 한화건설측은 언론에 “더 큰 손실을 피하려는 결단이며, 여기서 공사를 더 진행하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어 사전에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앞으로도 공사비를 제대로 받을 것이란 기대를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일부 언론에 설명하기도 했다.

한화건설은 또 NIC에 대한 본건 공사 대금 중 미수금 약 6.29억달러에 대해서는 계약상의 권리 행사와 분쟁 절차를 통해 최대한 회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 환율로 8930억원 안팎, 9천억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한화건설측은 “이라크에서 사업 진행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만큼 앞으로 협상을 통해 공사가 재개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면서 "미리 받은 선수금으로 미수금의 상당분을 상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손해는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론에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설명은 과연 사실일까?
한화건설 반기보고서상의 지난 6월말 별도 기준 단기 공사선수금 및 장기 공사선수금 잔액은 각각 4526억원, 8541억원에 달한다. 이 선수금들이 모두 이라크 비스마야 관련 선수금이라면 미수금 처리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공사 뿐 아니라 수많은 한화건설의 국내외 공사 관련 선수금들이 여기에 모두 들어있다.

지난 6월말 기준 이라크 신도시 계약잔액은 7.57조원으로, 한화건설 전체 수주잔액 22.96조원의 33% 정도다. 이라크 관련 선수금이 얼마나 되는지 회사측이 자세히 공시하지 않아 전모를 알 수 없으나 신용평가회사들의 과거 보고서들을 보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이미 작년에 이 사업의 위험성을 본격 거론한 적이 있다. 한신평은 당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사현장 및 발주처의 특성을 반영해 다양한 리스크 통제수단을 한화건설이 보유하고 있는점”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한화건설은 NIC의 대외신인도가 낮은 점을 감안해 프로젝트 진행시 공사채권이 공사 선수금 규모를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으며, 발주사인 NIC의 귀책사유로 공사비 지급이 지연되는 경우 공사를 중단할 수 있고, 공사중단의 경우에도 선수금 정산 책임 이외의 별도의 의무는 부담하지 않도록 해놓았다고 설명했다.

또 전쟁, 테러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완공 세대를 블록 단위(1,400~1,800세대)로 분할해 공급하고, 공급된 주택소유권을 NIC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고 설명했다.

작년과 올해 공사진행 방식이 꼭 이 설명처럼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수금을 더 주었다면 공사도 더 진행했을 것이다. 한신평 보고서 내용이 맞다면 이라크 관련 선수금은 이제 남아있는게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작년 이후 공사 진행율이나 공사매출을 보면 한신평 설명이 거의 맞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업계 일각에선 선수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면 최악의 경우 미수금 9000억원을 거의 모두 떼일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도 사업철수를 강행한 이유는 뭘까. 한화건설 설명처럼 더 끌어봐야 손실이 더 커질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수 공시가 있기 전 작성된 한화건설 반기보고서에도 이와 관련된 대목이 있다. 반기보고서는 “이라크 BNCP, SI 계약의 공사는 이라크 정세불안 및 대금지연 등으로 당초 공정보다 지연되고 있어 발주처인 이라크재건위원회와 안정적인 사업완료를 위해 상호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7년 이후로 공기(工期)가 (더) 지연되는 경우,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원가에 따라 당기 손익에 (더)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공기가 2027년보다 1년 더 지연될 경우 연간 당기순손실은 225억원 증가하고, 2년이면 44억원, 3년 670억원, 4년 890억원, 5년 1108억원씩 각각 더 증가한다고 밝혔다. 현재와 같은 상태가 더 지속되면 공기 지연이 불가피하고, 공기가 지연될수록 손실도 눈덩이처럼 더 불어난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한화와 한화건설의 합병을 갑자기 발표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화측은 그룹 사업구조재편의 일환이라고 설명했고, 일부 언론은 김승연 회장 차남의 한화생명 지배를 목적으로 한화생명 대주주인 한화건설과 ㈜한화를 합병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한화 공시에 따르면 NIC는 지난 6일 한화와 한화건설이 진행하고 있는 합병 절차에 대해 부동의(不同意) 의사를 전달해왔다. 당초 신도시 공사계약에 합병 등에 관한 조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합병을 한다고 하니까 NIC측이 반대의사를 표명해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화건설은 이를 구실로 하루만인 7일, 공사계약 전격해지를 통지해 버렸다.

한화건설측이 합병을 계약해지 명분의 하나로 이용한게 아니냐는 추측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이 추측이 맞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지난해 이후 올 상반기까지 국제유가가 많이 올랐고, 이라크의 재정상태도 많이 좋아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업은 2년 이상 거의 진전이 없었다. 결국 파국에 이르게 만든 이라크측 진짜 이유도 궁금하다. 이라크와 한화간에 공개 안된 다른 사정들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10년 전 중동 플랜트 사업 등에서 많이 떼인 국내 다른 대형 건설사들이 중동사업을 대부분 줄이거나 철수하기 시작할 때 한화는 역으로 용감(?)하게 적극 진출을 선언했다. 당시 고개를 갸우뚱하는 국내 건설업계 관계자들이 적지 않았다. 사업의 실속이야 어떻든 한화그룹은 오히려 이 사업을 홍보용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PC공법을 통한 모듈화 기술로 공기 단축을 실현할수 있는 탁월한 기술을 제안해, 2012년 총 80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공사 계약을 체결했으며 2015년 21억 달러 규모의 사회 기반 시설 공사를 추가로 수주해 이라크 누적 수주액 100억 달러 돌파로 세계 건설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22년 한화건설 반기보고서)

한화건설은 이라크 정부가 전후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100만호 주택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수주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이라크 신도시사업이 한화건설의 발전과 해외진출에 큰 분수령이 되고, 많은 직간접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런 명예스런 대 프로젝트를 절반도 완성 못하고 전면 철수함에 따라 그 이유야 어떻든 한화가 입을 피해는 단순히 공사미수금 9000억원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한화에 건설이 합병되더라도 한화의 해외사업에는 멍에처럼 따라 다닐 가능성이 높다”며 “한화의 국내외 신인도에도 여러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