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동시, 동화 작가 설용수 씨

다양한 취미로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동시, 동화, 극작가 설용수 씨.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다양한 취미로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동시, 동화, 극작가 설용수 씨.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사뿐히 도시를 걷는 여자. 머리는 한쪽으로 내려 묶고 챙이 조금 화려한 모자를 썼다. 걸음걸이는 박자감 있고 경쾌하다. 지나다 신기하거나 호기심 가는 것이 보이면 지나치는 법이 없다.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설용수 씨(70). 그와 10년 앞을 준비하며 살아온 취미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설용수 씨를 만난 곳은 서울 성신여대 인근 ‘극단 극발전소301’의 연습실. 연출가 겸 극작가인 정범철 극발전소301 대표가 직접 가르치는 희곡글쓰기를 수강한다고 했다. 벌써 네 번째 듣는 수업이다.
“제 직업은 작가이고, 동시나 동화를 쓰지만 주 장르가 희곡이에요. 수업을 통해서 앞으로 쓸 작품에 대해 각자 의견을 나눕니다. 다들 젊고 연극계에 종사하지만, 전문 극작가는 저 하나이고,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도 저 하나입니다. 서로의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도움이 됩니다.”
일이지만 취미를 즐기는 것 이상으로 작품 활동도 사랑하고 즐긴다는 설 씨. 현재 취미로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가지는 자전거와 댄스스포츠다. 코로나 시작과 함께 아침을 영어 공부로 여는 일상도 언제나 한결같다.  

두 가지 인생을 살고 있음에 행복하다
설 씨의 전직은 초등학교 교사다. 대학 졸업하고 26년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나이 50이 되자 교사를 그만뒀다. 교육 전공자로 대학원 공부도 마쳤고 승진은 물론 연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주위에서도 아쉬워했다. 그러나 설 씨는 제2의 삶을 일찍 살고 싶은 마음에 초등 교사를 하면서 한양여대 문창과 99학번으로 입학했다. 

작가로서 책도 내고 본인이 쓴 희곡으로 공연을 했지만, 좋은 희곡 글쓰기 수업이 있다면 꼭 찾아가서 배우는 설용수 씨(왼쪽). 오른쪽이 정범철 극발전소301 대표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작가로서 책도 내고 본인이 쓴 희곡으로 공연을 했지만, 좋은 희곡 글쓰기 수업이 있다면 꼭 찾아가서 배우는 설용수 씨(왼쪽). 오른쪽이 정범철 극발전소301 대표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2학기가 되어서야 직장인으로서 학교 가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게 됐죠. 오래전부터 50까지만 교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아이들이 예쁘지만, 가르치는 일은 보통이 아니에요. 그때쯤 체력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교사를 할 때부터 다양한 취미를 섭렵해왔다. 설 씨가 취미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교육의 연장선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스쿠버다이빙, 패러글라이딩, 스키, 수영, 가야금 3년, 단소 3년, 붓글씨도 2년 정도 하면서 사군자도 쳐봤습니다. 수영을 하고 보니 옆에서 다이빙을 가르치기에 좀 배웠어요. 탈춤과 사물놀이도 했습니다. 하나하나 떼어 보면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모든 게 시너지를 내면서 나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 가르치는 데 어떻게든 다 도움이 됐어요. 취미든 학문이든 배움에는 경계가 없다고 봐요.”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굳이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내 길을 갈 수 있어서다. 전국 자전거 도로를 섭렵했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자전거로 다녀왔다. 사진 제공 설용수.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굳이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내 길을 갈 수 있어서다. 전국 자전거 도로를 섭렵했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자전거로 다녀왔다. 사진 제공 설용수.

도전이라기보다 그냥 궁금한 건 못 참았다. 혹자는 왜 하나를 꾸준히 하지 않고 이거저거 다 해보느냐는 말도 했다.
“이거저거 다 해봐야 나에게 뭐가 맞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어떻게 처음부터 딱 알고 하나를 해요. 그래도 그중에 글쓰기가 취미보다 훨씬 특별해서 직업이 된 겁니다.”
설 씨 스스로 글에 소질 있다고 느꼈을 때는 고등학교 교지 기자를 할 때였다. 마침 학교 백일장에 나가 시부문에 당선됐는데 심사를 맡았던 조병화 시인(1921~2003)이 좋은 평을 해줬다.
“초등학교 근무할 때 좀 실력을 키웠어야 했는데 못 살렸어요. 살면서 아이 키우고 바쁘게 살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었어요. 그래도 일기를 꾸준하게 쓰고, 아이들 일기 쓰기 지도를 열심히 했어요. 사실 그때 글을 썼어야 했어요. 소재가 아주 많았거든요.”

10년 후를 준비하며 살아간다 
설 씨는 흘러가는 세월 속에 인생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젊어지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간다. 늘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30대에는 40대를 바라보고 성당에 다녔어요. 지금은 냉담 상태지만 40이 굉장히 중요한 나이라고 생각해 그때쯤 종교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40에는 나중에 내 손주 혹은 젊은 세대와 잘 교류하고 싶어서 신문을 읽었어요. 50이 되니까 내가 나이 들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생각하다가 문창과에 갔습니다. 60에는 건강을 다질 마음에 배웠어요. 70이 가까워졌을 때 80이 되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을까 했는데 주변에서 댄스스포츠를 권해서 하게 됐지요.”
젊었을 때는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 시니어로 접어들면서 세대 간의 교감과 자신의 건강에 집중해왔다. 
“우리나라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를 타고 거의 다 가봤어요. 대한민국 4대 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그랜드슬램을 했거든요. 자전거 동호회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15박 16일 다녀왔어요. 일본도 많이 다녀왔고요. 모두 자전거로요.”
지금은 무릎에 무리가 가서 자전거에 모터를 달았다. 무릎 건강을 생각해 65세 이상은 모터를 달고 취미 삼아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꽤 된다. 
“춤은 코로나 전에 동갑들과 함께 하는 연말 파티에 갔는데, 거기서 까만 턱시도와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나와서 커플댄스를 추는데, 아주 보기 좋았어요.”
주위 친구들이 “80 넘어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저거밖에 없다”면서 배우기를 권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사교댄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갖게 돼 그런지 선뜻 나설 수는 없었다고 한다.
“마침 집 근처에 댄스스포츠 학원이 있었어요.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혹시 분위기가 이상하면 바로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들어갔는데, 아주 깔끔했어요. 두 달 배우고 나서 선생님이 이제는 100명 손을 잡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고민하다가 동호회를 찾아 들어갔는데 우리 나이 또래 동호회가 정말 많더라고요. 그곳 선배들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몸 흔들지 마라, 발을 보지 말고 시선 들어서 앞을 봐라. 뛰지 마라. 손에 힘 빼라...전부 선배들이 알려줬어요.”

70대를 바라보다 시작한 댄스스포츠. 매주 목요일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사진 제공 설용수.
70대를 바라보다 시작한 댄스스포츠. 매주 목요일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사진 제공 설용수.

영어 공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 이후 2년 반 동안 매일 아침 2시간씩 영어에 투자한다.  
“학교 다닐 때 영어를 제일 못했어요. 중1 때 영어 선생님이 출석부로 저를 때렸어요. 제 뒤에 앉아 있던 아이가 수업 시간에 떠들었는데 저로 착각한 거죠. 그때부터 영어에서 손을 뗐습니다. 트라우마가 심해서 공부를 좀 해볼까 하면 몸이 아팠어요.”
나이가 들어 나쁜 기억이 좀 잊히기라도 했는지,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잘 가르치는 선생님을 알게 됐다.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보니 공식 카페가 있더군요.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예 평생회원권을 구매했어요.”
교사 출신이 아니랄까 봐 공부도 시작하니 작정이라도 한 듯 열심히 빠져들었다. 영어 선생님이 500단어부터 공부하라고 해서 같은 책은 4~5번을 보고 또 봤다. 잘 모르겠으면 프린트를 해서 몇 번을 들여다봤다. 단어든 문법이든 분량이 많아져도 무한 반복해 보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동화책 ‘샬롯의 거미줄’을 영어로 읽고 있다. 
이밖에도 관심 있게 몰두했던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연극 무대에 5번이나 오른 시니어 배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기활동은 좋은 작품을 썼을 때의 희열을 넘어서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기관지도 나쁘고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몸이 더 약해져 배우는 이제 안 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얘기하니 꼭 취미에만 몰두해 사는 사람 같아 보일까봐 걱정이라는 설 씨. 지난해 12월 동시집 ‘누구에게 말해요?’를 출간했고, 최근 발대식을 한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의 ‘자립준비 청년 멘토링 상록자원봉사단’ 소속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 리모델링 일에 관여하면서 6개월 여 공부해 도시정비관리사 최고위과정을 마쳤다.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고, 내년쯤에는 희곡집을 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 끝에 ‘뭐가 되고 싶다, 뭘 이뤄야겠다’는 건 없고, 궁금한 게 있으면 배우고 또 배웠어요. 살아온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잘 살았다 싶어요.” 
지난해 못한 고희연을 올해 가까운 지인들과 만나 열고 나니 10년 후 80이 된 나를 생각하며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불교철학에 대한 공부와 한국무용이다.

지난 9월,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 ‘자립준비 청년 멘토링 상록자원봉사단’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 제공 설용수.
지난 9월,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 ‘자립준비 청년 멘토링 상록자원봉사단’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 제공 설용수.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생활철학이라고 생각해요. 죽기 전에 성찰을 잘 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잠깐 산 적이 있는데 당시 영어학원 선생님이 각자 자기 나라 춤을 다음 시간에 준비해오라고 했는데 저는 한국무용의 특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국무용이 노인들에게 가장 무리가 안 가는 춤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어딜 가야 할지 못 찾았어요.”
그와 함께 길을 걸으며 얘기하는 동안 언뜻 보이는 모습 속에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보인다. 작가이자 취미 자산가로 빛나는 제2의 인생을 사는 설용수 씨의 네버엔딩 힘찬 나날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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