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성병(性病) 하면 다양한 그림이 떠오릅니다. 우선 필자는 피부과학을 전공한 의사입니다. 필자의 전문의 자격증에는 ‘피부 및 성병전문의(Facharzt für Dermatologie und Venerologie)’로 명기되어 있습니다. 성병 가운데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매독(梅毒)은 탈모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피부병변으로 발현되기에 매독은 피부병의 ‘원숭이’, 또는 ‘어릿광대(Clown)’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매독의 피부 증상은 다양하며, 뇌와 척수를 포함한 중추신경까지 침범하는 끔찍하고 무서운 질병입니다.

항생제가 출현하기 전까지, 1930,40년대 유럽 사회에 만연한 무서운 병이 바로 성병인 임질(淋疾)과 매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매독은 더욱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적인 음악가, 모차르트, 베토벤, 파가니니, 슈베르트, 슈만, 스메타나 등이 명예롭지 못한 ‘매독병자 명단’에 올랐으니 매독이 얼마나 큰 사회 이슈였는지 알게 합니다.[Eur. J. Clin. Microbiol. Dis(2008)]

아울러 고대 이집트 미라의 골격에서 전형적인 매독 증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여, 매독은 인류 역사와 같이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오래된 질병입니다.

필자는 오래전 한 독일 고서점에서 1781년 발간된 책 ‘성병질환과 치료학(Die Lehre von den venerischen Krankheiten und ihrer Behandlung)’(Dr. C. Kolb, 1871)을 구입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무슨 탐정소설 읽듯 숨 가쁘게 읽었습니다. 그 내용 중에 매독이 ‘바이러스균’인 것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항목이 흥미롭기 그지없었습니다.

매독은 사람들이 성관계하면서 전염되는 질환이라는 것은 확신하면서도, 세균(細菌, Bacteria)을 발견할 수 없는 가운데, 환자의 매독 병변에서 스며나오는 진물(津물, 상처나 부스럼에서 흐르는 물)을 원숭이 피부에 상처를 입힌 부위에 바르면 원숭이에게서 같은 매독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매독을 유발하는 병원체(病原體)는 박테리아가 아니고 세균보다 훨씬 작아 바이러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당당하게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이론에 따르면, 너무 미세하여 보이지 않는 병원균(病原菌)은 바이러스로 분류·정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당시 병원체를 크기에 따라 분류한 것입니다.

1962년 DNA 분자구조로 노벨상(생리학·의학상)을 'Watson & Crick'이 공동 수상한 연구 결과에 따라, 병원균의 분류체계가 새롭게 정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매독균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박테리아군(群)’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주해: James Watson(미국, 1928~), Francis Crick(영국, 1916~2004).

그런데, 1905년 독일 동물학자 샤우딘(Fritz Schaudinn, 1871~1906)은 기존 현미경의 특별한 기법으로 매독 병변의 진물에서 병인 세균을 발견 및 증명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당시 ‘광학현미경(光學顯微鏡)’이라는 고유명사가 말하듯 생태적으로 바깥의 광[빛]을 반사경으로 받아 현미경 몸체에 보내면서 확대경으로 미생물을 볼 수 있게 설계된 기계가 바로 ‘광학현미경’의 구조원리입니다. 즉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상기 ‘광학현미경’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병질환과 치료학’의 표지(왼쪽). 오른쪽은 현미경을 쥐고 있는 프리츠 샤우딘. 그의 손녀이며 필자의 동료인 L.샤우딘이 귀국길에 오르는 필자에게 준 사진이다.
‘성병질환과 치료학’의 표지(왼쪽). 오른쪽은 현미경을 쥐고 있는 프리츠 샤우딘. 그의 손녀이며 필자의 동료인 L.샤우딘이 귀국길에 오르는 필자에게 준 사진이다.

그런데 샤우딘은 기존 광학현미경에서 반사경인 광원을 제거한 컴컴한 상태(Dark field)에서 ‘매독 병변’에서 채취한 검사물을 관찰하였더니, 아메바 같은 물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피로헤타 팔리다(Spiroheta pallida)라 이름하였습니다.(훗날 ‘Treponema pallidum’으로 개명되었다).

역으로 생각하면, 1905년 당시 ‘x1000배 배율’의 현미경에서나 오늘의 ‘x10만 배 배율’의 첨단 현미경으로도 통상적인 방법으론 병원균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발상의 전환’의 산물인 ‘Dark field 검사’가 핵심 사항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샤우딘의 ‘발상의 전환’에 경탄하며, 이 ‘발상의 전환’은 세기의 발견을 이룩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바로 매독이란 무서운 질병 극복에 세기적인 큰 발자국을 남기게 됩니다. 1905년의 쾌거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큰 역사적인 쾌거 다음 해인 1906년에 3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합니다. 그래서 노벨의학상을 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고 독일학계는 애통해합니다.

돌아보면, 흥미로운 역사의 편린(片鱗)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독을 유발하는 병원균을 찾을 수 없다고, 당시 시각과 학문적 눈높이에서 매독균은 바이러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1871년 Dr. Kolb의 당당한 논거도 흥미롭고, 샤우딘의 ‘발상의 전환’이 ‘콜럼버스의 달걀’을 연상케 하는 쾌거인 것도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단세포적인 논쟁이 이어지는 ‘작금(昨今)의 상황’을 지켜보며, 역사의 시간이 품고 있는 ‘진리’라는 한계와 ‘발상의 전환’이 전하는 스토리텔링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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