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태평양 건너편에서 보는 한국정치는 한 편의 코미디다. 여야가 매일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이라는 가십 같은 해프닝을 놓고 사생결단으로 대결하니 말이다. 여야가 서로 상대방을 막말로 저주하며 물어뜯는 모습은 절로 한숨이 나오게 만든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질타한 ‘정치는 4류’라는 말이 적확한 지적인 것 같다. 마치 ‘상복을 몇 년 입느냐’는 문제로 다투던 조선조의 당쟁을 보는 느낌이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들이 당파적 이해로 엇갈린 의견을 내놔 전쟁 준비를 소홀히하던 모습마저 떠오른다.

지금 원화의 대 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어섰다. 달러당 1964.8원까지 치솟았던 1997년의 외환위기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심상치 않다. 만년 흑자이던 무역 수지도 6개월째 적자다. 9월 현재 누적 무역 적자는 389억 달러다. 외환보유액이 4300억 달러를 넘어 문제가 없다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북한은 한미 훈련 중에도 미사일을 쏘는 등 도발을 일삼고 있다. 노골적으로 핵무기 사용 위협까지 한다.

그런데도 여야는 지금 가십 같은 비속어 사용 해프닝을 놓고 한가하게 정쟁이나 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미국, 캐나다 순방을 외교참사로 규정,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까지 통과시켰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정국은 급격히 냉각, 내년 예산안 심의, 국정감사 등 모든 현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야당의 발목 잡기와 정부의 서툰 국정 운영이 가져온 결과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시각에 따라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불발, 윤 대통령의 바이든에 대한 비속어 사용 여부 논란, 일 총리와의 약식 회담,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불발 등에서 보듯 윤 대통령의 순방이 매끄럽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를 굴욕적, 외교적 참사로 보는 것은 민주당의 지나친 정치 공세다.

사실 윤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조문하지 못했다고 큰 문제가 되거나 외교적 결례도 아니다. 주 행사인 장례식과 찰스 왕 리셉션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조문록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조문 글을 남겼다는 문제도 책잡을 일이 아니다. 나루히토 일왕도 오른쪽에 글을 남겼다. 다만 좀 더 치밀하게 스케줄을 조율하고 대처하는 솜씨를 발휘하지 못한 것은 비판받을 일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에 대한 비속어 사용 논란도 그렇다. 대통령실은 부정하지만 설사 윤 대통령이 사적 대화 중 비속어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외교적 참사’ 운운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모 방송이 미 백악관에 이메일을 보내 의견을 물은 것은 한술 더 떠 진짜 코미디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이나 백악관, 정치권은 이를 문제 삼기는커녕 거론도 않는다. 일종의 가십성 해프닝이기 때문이다. 부시, 바이든 대통령도 그런 전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그런 문제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즉각 당사자에게 사과, 문제가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했다. 진실 공방을 벌이는 윤 정부와는 대처방법이 달랐다.

민주당은 한 건 잡았다는 듯 전방위적 공세다.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몰랐다”고 거짓말한 닉슨 대통령을 닮았다는 공격까지 했다. 범죄 사실을 감춰 물러난 닉슨 대통령과 비속어 사용을 부정하는 윤 대통령을 거짓말이라는 잣대로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치다. 윤 대통령을 개에 비유하는 비판도 나올 정도로 정치판이 온통 품격을 잃고 막 나가고 있다.

정부가 조율이 채 안 된 한일 정상회담을 발표한 것도 세밀하지 못한 처사였다. 일본과의 정상회담은 이번에 그렇게 서두를 사안이 아니었다. ‘징용공 배상에 따른 일본기업 자산압류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오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남 자체도 불투명하던 것이 그나마 만남으로 대화의 물꼬는 튼 셈이지만 스타일을 구긴 것은 사실이다. 바이든과의 정상회담 불발도 사전에 어려움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솔직하게 안 된다고 했어야 됐다. 끝까지 미련을 갖고 추진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고 외교부 장관이 해임될 문제는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정책이 아니라 언행, 부인 문제로 무수한 구설수에 올랐다. 이는 지지율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이 됐다. 물론 이를 시시콜콜 정쟁화하는 야당이 문제지만 빌미는 항상 윤 대통령 측에서 제공했다. 윤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검사가 아니다. 검사 시절 쓰던 비속어나 언행을 예사로 아무 데서나 써서는 안 된다. 수업료를 낼 만큼 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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