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놀이로 낮춰봐 메달 전망 불투명

길거리 아이들의 문화로만 여겼던 브레이킹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서 다시 대중의 관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거리 아이들의 문화로만 여겼던 브레이킹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서 다시 대중의 관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민족을 말할 때 ‘흥(興)’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한판 잘 논다’는 얘기를 자랑삼는다. 그런데 춤추고 노는 거 좋아하다가도 제대로 ‘춤’을 즐기는 이들에 대해서는 유독 색안경 끼고 본다. 음악을 틀고 춤추는 젊은이가 길거리에 모여 있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제 좀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 좀 노는 아이들의 문화로만 여겼던 ‘비보잉’이 ‘브레이킹’이라는 이름으로 댄스 대회가 아닌 정식 스포츠로 무대를 넓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브레이킹이 세계를 주름잡던 2000년대 초중반, 색다른 문화로 관심받으며 크게 인기를 얻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축구나 야구처럼 자주 방송되지 않았지만, 서구권의 텃새를 압도적인 실력으로 이겨내며 온갖 국제 대회를 휩쓸었다. 브레이킹 팀이 생겨났다. 신나는 리듬에 멋진 동작을 하는 모습에 빠진 젊은이들이 문화를 주도하며 조금씩 영역을 키워 가는 듯했다.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2005년)’와 ‘비보이 코리아(2006년)’ 등 브레이킹을 주제로 한 콘텐츠도 주목받았다.

문화계의 다양한 노력이 있었지만, 브레이킹은 늘 ‘방황하는 청소년이 좋아하는 거리 문화’로 인식됐다. 이 고정관념은 사그라질 줄 몰랐고, 그 당시 공연계 문제가 됐던 임금 체불 문제 등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다. 환경 개선 혹은 자정 노력을 했으나, 저변 확대 실패 수순을 밟아갔다. 2010년을 기점으로 브레이킹의 인기가 누그러지면서 공연과 기업 후원도 줄었다. 현재 브레이커 중에는 브레이킹으로만 전업 생활을 할 수 없어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힘겹게 꿈을 이뤄가는 이도 적지 않다. 어떤 이는 중국으로 건너가 경연 심사 혹은 강습 등 관련 일자리를 찾아 살고 있다. 

2005년 초연되어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한 장면.
2005년 초연되어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한 장면.

2000년대를 열며 잠시 잠깐 인기 있었던 문화로 잊혔던 브레이킹이 최근 다시 관심받고 있다. 우리가 애들 놀이로만 알고 치부하는 동안 외국에서는 저변을 넓히며 인기 콘텐츠로 잡아간 브레이킹. 2018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첫선을 보이고, 내년 9월 23일로 연기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열릴 예정인 ‘제33회 파리올림픽’에서 브레이킹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걸린 스포츠로  화려하게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래전 명성만 기억하고 브레이킹이 양궁만큼이나 국제 대회 효자 종목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큰일 날 소리다. 긴 시간 동안 브레이킹을 대하는 나라 바깥 사정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브레이킹을 진심으로 대했던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국립 비보이단을 창설해 전문 댄서를 양성했다. 급기야 자국에서 올림픽을 개최하자 유럽에서 다소 인기가 떨어지는 야구를 제외하고 브레이킹을 정식 종목으로 이끌었다. 

열악한 상황에도 우리나라 브레이커들은 세계 랭킹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2022년 현재 브레이킹 개인 세계 랭킹 2위와 3위는 대한민국의 김헌우(브레이커 닉네임 ‘윙’/진조크루)와 김홍열(홍텐/플로우엑셀)이다. 브레이킹 크루(팀) 세계 랭킹 3위에 진조크루가 이름을 올렸다.

최근 다행히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대한 기대효과를 반영하듯 공공기관의 관심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한 선수의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지난 9월 28일 서울문화재단은 2022서울비보이페스티벌을 통해 갬블러크루를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으로 선정했다. 의정부시는 국가대표 김종호(레온)가 있는 퓨전엠씨를 소속 비보이단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는 국가대표 김종호와 전지예(프레시벨라)와 갬블러크루의 박인수(킬)가 김연아(피겨스케이팅), 김자인(스포츠클라이밍) 등이 소속되어 있는 올댓스포츠와 매니지먼트 계약한 바 있다. 국가대표 김예리(옐)도 YGX에서 나온뒤 신한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월 신한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체결한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 선수. 
지난 1월 신한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체결한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 선수. 

거의 죽다시피 했던 브레이킹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세계 제패는 옛말이고,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고 상위권에만 든다면 다행한 일일 것이다. 과거 인기에 비해 저변 확대가 제대로 안 되어 선수층이 얇다는 큰 허점이 있다. 

남들 눈에 브레이킹이 애들 놀이처럼 인식됐겠지만, 물구나무선 상태에서 연속 회전하는 고난도 기술인 에어트랙이나 나인틴 프리즈(순간적으로 멈추는 동작) 등 고난도의 기술을 갖추려면 춤의 영역 그 이상의 노력과 재능, 체력이 필요하다. 기술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개월 혹은 1년 넘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높은 점수를 위해 트리플(세 바퀴), 쿼드러플(네 바퀴) 점프를 연습하는 만큼의 시간을 브레이커들도 투자한다. 춤을 추다 다치면 격한 스포츠와 비교될 만큼 심한 부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말을 해도 대중은 큰 관심이 없다.   

그래도 지난해 방송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tvN)’에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김예리가 출연해 브레이킹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더니, 브레이킹으로 경연을 펼치는 ‘쇼다운(jtbc)’에는 국가대표 김종호가 나와 녹슬지 않은 우리나라의 브레이킹 실력을 보이면서 다가오는 큰 국제대회에 대한 기대를 심어줬다.

이달 21~22일 이틀간 서울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리는 ‘2022년 세계댄스스포츠연맹(WDSF) 세계 브레이킹 선수권대회’에는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최승빈(헤디),  전지예가 출전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대회이니만큼 브레이킹이 대중의 관심사가 될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올댓스포츠와 올해 초 매니지먼트 계약한 국가대표 김종호(왼쪽)와 전지예(오른쪽)
올댓스포츠와 올해 초 매니지먼트 계약한 국가대표 김종호(왼쪽)와 전지예(오른쪽)

 백석예술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실용댄스 전공 김선엽 겸임교수는 우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인해 다시금 브레이킹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소식이 매우 반갑다”고 밝혔다. 이어 “2000년대 중반까지도 세계를 호령하던 대한민국의 브레이킹은 사실상 전성기를 지나온 지 오래다”라며 “어떤 한 분야가 국가경쟁력을 갖추려면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드는데, 육성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그간의 실패 원인을 되짚어 보고 일어선다면 한국의 브레이커들이 다시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레이킹은 흔히 ‘비보잉(b-boying)’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남자는 비보이, 여자는 비걸로 부른다. IOC 및 IOC 관련 단체 주최나 주관 대회에서는 ‘비보잉’ 대신 ‘브레이킹(breaking)’이란 명칭을 쓴다. 비보이와 비걸은 ‘브레이커(breaker)“로 통칭된다. 주로 본명보다는 '윙'이나 '홍텐' 등 외국 사람들도 부르기 쉬운 활동명을 따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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