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안녕하세요? 한라산 기슭의 초가을 햇볕이 아슴아슴 시가지 쪽으로 내려오고 있네요.

오늘은 우리가 지금 할 일이 뭔가 함께 생각해보자고 했지요? 금년 내내 TV를 켤 때마다 눈물로 세운 이 나라가 ‘폭망’할 것 같아 절망하다가, 간혹 국민들만 정신 차리면 한 10년 안에 세계사를 이끄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논의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자고 내세운 주제입니다.

정말 지난 8월 한 달도 절망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정치판에서 저를 피식 웃게 만든 건, 꼰대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영빈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포기했다는 보도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움직임은 그래도 ‘아직은 안 망해’ 하고 자주 희망을 꿈꾸게 만들었습니다. 이달 중 제일 먼저 그런 꿈을 꾸게 만든 건 황동혁(黃東赫, 51) 감독의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6개 분야를 휩쓸었다는 수상 소식이었습니다.

너무 기뻐 에미상이 어떤 상인가 알아봤지요. 미국 TV예술ㆍ과학아카데미(ATAS)가 주관하고,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방영된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끈 프로그램에 주는 상이고, 미국의 4대 지상파 방송사가 공동으로 보도한다고 하데요.

그 순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아, 한국도 이제 보통 나라가 아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이 어른거리데요. 그리고 이어서 3년 전 봉준호(奉俊昊, 53) 감독이 ‘기생충’으로 프랑스 칸(Cannes)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를 휩쓴 일이랑, 2년 전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Chung Lee Isaac, 42) 감독의 ‘미나리’가 아카데미 6개 부문 상을 휩쓸고, 75세의 윤여정(1947∼) 선생이 시상식장에서 조용히 웃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이제 한국 영화는 세계적이라는 생각이 들데요.

제가 왜 저보다 한 살 아래인 윤여정 씨에게 ‘선생’이라는 존칭을 썼는지 아세요? 미국으로 이민 간 우리 교포들의 슬픔과 고통을 다루는 영화에 찬조 출연해 도와주신 품성이 너무 고맙고 아름다워 본받고 싶은 분이라는 생각에 고른 존칭입니다. 우리말에서 ‘선생(先生)’은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먼저 도를 깨달은 분’이라는 뜻으로 스승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제게 ‘일어날 수 있어, 아니 꼭 일어나야 해’라고 마음을 바꾸게 만든 일은 수상 보도를 보고 며칠 뒤에 겪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10여 년만에 고향 충남으로 건너가 추석을 쇠고, 서울에 갔을 땝니다. 작년 이맘때 하늘나라 들판으로 떠난 집사람에게 조의(弔意)를 표해준 문우들께 너무 늦었지만 인사라도 드리려고….

저처럼 지난봄에 싱글이 된 친구네 집에 묵으면서 만나야 할 친구들께 톡을 했지요. 그런데 꼭 만나야 할, 저랑 40년 가까이 ‘응시 동인회’를 이끌고, 서울 문단에 부고를 전해준 분이 가족들이랑 시골을 다녀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며 며칠만 미뤄달라는 겁니다.

할 수 없이 미뤘지요. 그리고 한글세계화운동연합회(www.hgmu.org)를 이끄는 오양심(吳良心, 62) 이사장께 연락을 했지요. 제가 계간 문예지 ‘다층’을 창간할 때 도와준 제자일 뿐만 아니라, 금년만 해도 1월부터 서울에 간 그 이튿날 아침까지 9개월 동안 38번의 한글 세계화 운동 소식을 보내주고, 아프리카 오지(奧地)나 남태평양 외딴섬의 소수민족들에게 한글을 보급해 문맹 퇴치에 앞장선 사람이라서.

     왼쪽부터 황동혁, 봉준호 감독, 오양심 이사장.
     왼쪽부터 황동혁, 봉준호 감독, 오양심 이사장.

반색하더군요. 차를 마시면서 왜 한글 보급 운동에 앞장섰느냐고 물었지요. 옳은 일이긴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일 것 같아서.

그러자 정부가 2007년부터 국립국어원을 통해 세종학당을 설립하고, 한국어 학습자와 교원을 위한 ‘누리-세종학당(www.sejonghakdang. org)’이라는 원격 시스템을 보급하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오지의 소수민족들은 돕지 못해 나섰다는 겁니다.

어떻게 돕느냐고 필담으로 물었지요. 해외 파견 기독교 선교사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추진한다는 겁니다.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데요. 그러면서도 적지 않은 경비가 들 것 같아 다시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그냥요” 하면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데요.

그러더니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소리를 하는 겁니다.

“젊은 날 학원 강사를 해서 번 돈을 몽땅 쓸어 넣고도 막혀, 겨우 남편이 해결해줬는데 손을 안 떼니까 못 살겠다고 야단을 쳐서 별거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남편에게 몹시 미안하고, 또 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 순간, 12년 전 정년퇴임을 앞두고 집 앞 생맥주 집에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내다보며 한국문학도서관(www.kll.co.kr)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제 모습이 떠오르데요.

“미안해요 나도 도울게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우선 이번 연재에 한글세계화운동연합회를 소개하고, 개조하고 있는 도서관 시스템이 완성되면 3만 5000명 회원들에게 호소해 우리 문학 작품집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전 세계의 한글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돕고, 한글세계화운동연합회 홈페이지를 도서관과 연동시키자고 했지요.

그런 연계를 위해 도서관 관리를 11년간 봉사해온 노경영 총괄관리실장에게 설명할 겸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 보급운동에 대한 해외 반응을 물어봤지요. 그러자, 한류(韓流) 붐의 영향이 큰 데다 한국으로 유학이나 취업 이민을 오려면 한글 기초 시험은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난다고 하더군요.

그날 저녁부터 한류의 흐름을 조사해봤지요. 놀랍더군요. 2018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조사 발표에 의하면, 가장 대중적 인기를 끄는 분야는 한식(韓食, 42.7%)이고, 그다음 패션과 미용(39.8%), K팝(38.9%), 애니메이션(33.0%) 순이라는 겁니다.

K팝도 조사해봤지요. 제가 아는 K팝 그룹은 방탄소년단(BTS)뿐이었는데, 블랙핑크(BLACKPINK), 트와이스(TWICE), 모모랜드(Momoland), 엑소(EXO) 등이 줄줄이 떠오르더군요. 열람 지역과 연령에 따라 다를 뿐 엄청난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블립(blip)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작년 7월부터 1년간 238억 5500만여 명이 K팝 유튜브를 열람했더군요. 국가별로는 인도네시아(9.9%), 태국(8.1%), 베트남(7.4%), 미국(7.4%) 순이고, 도시 별로는 베트남의 수도 호치민 시가 가장 많다는 겁니다.

아아, 눈에 보이지 않는 유튜브까지 이 정도로 세계인들이 넘나든다면 망할 수도 없고 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데요. 그래서 아주 엉뚱한 생각을 했지요. 어떻게 하면 정치판을 바로잡을까 하는.

처음엔 아예 정치판을 없앨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세계 최고로 발달해 있는 빅데이터와 인공 지능을 이용하여 국민들이 원하는 게 뭐고, 그런 방법을 택할 때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정치가 직업인 인간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데요.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국민 모두가 마음속에 하드 디스크 하나를 묻어두고, 그들의 언행과, 왜곡 보도하는 언론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여론조사 때마다 끄집어내어 경고하고, 그런 언론은 시청하지 말아 광고료 수입을 확 떨어뜨려 주고, 1년 반 뒤인 2024년 4월 10일 22대 총선 때는 하드 디스크를 꺼내 그런 정치인들을 투표로 속아내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데요.

그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서 저장하느냐고요? 어느 연재에서던가 말씀 드렸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민주’와 ‘자유’와 ‘평등’은 누구나 자기 편한 대로 골라 쓰는 개념이고, ‘너와 나’,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대립된 기준을 안고 있어 끊임없는 분란과 투쟁으로 이어지게 만들므로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국시(國是), 그러니까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기준으로 삼자고 제안하고 싶네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홍익인간’은 문자 그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자는 거고, 재세이화는 그런 이념을 ‘논리화’해서 ‘실천하자’는 뜻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을 말씀드릴까요? ‘전체’가 아니라 ‘나나 우리 편’만 내세우는 사람은 입력하면 돼요. 그리고 ‘실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만 주장하는 사람은 입력해두세요. 아주 쉽지요. 또 남을 위해 희생하는 분들은 별도의 폴더를 만들어 기록해두고, 조금씩이라도 도우면 돼요.

아주 쉽지요? 되었네요. 다음 글 예고를 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이왕 꺼낸 이야기니 이번 주제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세계 1등국가’가 되려면 뭘 고쳐야 할까를 함께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사랑해요, 안녕…. (♥)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