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숙 논설위원, 동의대 융합부품소재핵심연구지원센터 부소장

 

원미숙 논설위원
원미숙 논설위원

과학기술 발전은 소통수단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원전 3만년 프랑스의 동굴벽화로부터 시작된 인류 최초의 소통수단은 1994년 월드 와이드 웹(WWW)이 개발되면서 빠른 속도의 뉴스 전달과 온라인 쇼핑도 가능해졌다. 2005년 선보인 유튜브 등 다양한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는 많은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만남까지도 온라인상에서 가능케 해 주어 삶이 편해지면서 삶의 형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동료들의 모임에서, 심지어 가족의 외식 자리에서조차도 서로 간의 대화보다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진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학에 근무하면서 교수들 간의 대화와 모임, 그로 인한 정보 공유가 원만치 않음이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전공을 불문하고 바로 옆 연구실의 교수와도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운 날이 다반사이다. 늘 함께하는 직장문화에 익숙해 있었던 나에게는 새로운 업무환경 적응과정에서 편치 않았던 일 중 하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연구실 안에서도 업무의 많은 부분을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리라. 서로 관여하지 않는 엘리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 탓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더하여 코로나 팬데믹이 대면문화를 대폭 축소시킨 탓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온라인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특히 실험실에서의 실험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영역에서는 대면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부산 지역의 대학, 연구소 및 기업에 근무하는 젊은 과학자 30여 명을 모아 ‘산학연 3040 네트워크’를 운영했던 적이 있다. 지역 연구자들의 역량을 합하여 더 좋은 연구주제를 도출하여 이를 공동연구로 연결하고, 사업화가 가능한 기술을 발굴해 기업에 제공함으로써 산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꾀하였다.

한정된 시간에 강의와 연구, 그리고 가사 및 육아 등에 바쁜 시간을 보내는 젊은 연구자들이었으나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여 각자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정보를 공유하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이 모임에서는 연구자들이 직접 만나기 어려운 중앙의 오피니언 리더와 정책 관계자를 초청하여 과학기술 연구개발 과정에 필요한 소통을 진행하였고, 참여 연구자들의 ‘5분 톡’을 통하여 각자의 연구내용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5분은 10분, 20분으로 이어졌으며 모임이 거듭될수록 참여자들의 만족도는 높아지고 있었다. 연구자들의 성과 공유와 소통을 위해선 칸막이 없는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던 경험이다.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지식과 기술이 축적되고 사회가 편리하게 변화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2000년대 초기부터 세계적으로 이러한 복합적인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하여 신기술 간 융합연구뿐만 아니라 학제 간, 산업 간 융합연구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 과학기술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오염, 고령화, 기후변화 등 현대사회 문제의 인식, 정의, 접근과 해결에 다양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한국 정부는 2008년 ‘국가융합기술발전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다양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융합 R&D 사업을 확대해 왔으며, 2018년에는 제3차 융합연구개발 활성화 기본계획(‘18~’27,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 수립되어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소 등이 활발하게 융합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중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주관하는 사업비와 출연연 간 사업비 총 규모만 1600억 원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융합연구 진행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며 진정한 학문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2019년 기준, 정부의 R&D 성공률은 99.5%에 비해 사업화 성공률은 20% 수준에 불과하며 융합기술 R&D 사업화 성공률은 3.27%로 더욱 저조하다.

융합연구는 2인 이상이 참여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 간 공동연구와는 달리 NT, BT, IT 등의 신기술 간 또는 이들과 기존 산업· 학문 간의 상승적인 결합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소 근무 시절 효율적으로 고전류, 다가 중이온을 발생시키는 초전도전자싸이클로트론공명 이온원 개발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초전도, 기계설계 및 정밀 제작, 극저온, RF(Radio Frequency) 발생 기술, 플라즈마, 고전압 기술 및 정밀 등 다양한 기술이 요구되는 장치개발 사업이었다. 물리, 기계, 전기, 전자, 플라즈마 및 극저온 관련 과학기술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하는 실질적인 융합연구의 사례였다. 전공이 화학이라 장치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었으나 한국 최초의 장치 개발을 위하여 필요한 연구자 및 제작업체들을 찾아 발품을 팔았다. 정성이 통한 탓인지 한국뿐만 아니라 개발 경험이 있는 일본, 중국, 미국 및 유럽 연구자들이 아낌없이 기술 노하우를 공유해 주었고, 한국 최초의 초전도전자싸이클로트론공명 이온원 제작기술 시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었다.

융합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첫째 왜 융합연구를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연구수행 과정이 달라져야 한다. 연구비 확보를 위한 단순 융합연구가 아닌, 과학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상상력 및 예술적 창의성을 융합하여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물론 융합연구의 활성화에는 제도적 지원과 예산 확대가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융합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실질적인 소통과 협력이다. 소통 문화가 변화되려면 연구실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만남과 열린 소통으로 다양한 지식과 정보, 관점을 공유하고 결합하여야 진정한 융합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과학적 난제 및 국가․사회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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