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띠 작가모임 ‘드래곤 날다’의 네 여성

M갤러리에서 만난 '드래곤 날다'의 회원들. 왼쪽부터 김미숙, 이미영, 주현주, 황선 씨. 쇼윈도에는 이 씨의 작품이 걸려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M갤러리에서 만난 '드래곤 날다'의 회원들. 왼쪽부터 김미숙, 이미영, 주현주, 황선 씨. 쇼윈도에는 이 씨의 작품이 걸려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한눈에 그들은 알아봤다. 통하는 게 있다는 것을. 사회에 나와 친구 사귀기 어렵다는데, 그림 그리는 곳을 좇아가니 인생 동지가 거기 있었다. 함께 걸어갈 인연을 만난 것도 행복이라고 여기다가 모두가 58세 용띠 동갑인 그들은 작가 모임 ‘드래곤 날다’를 결성하고, 첫 전시회 ‘드래곤 날다 2022전’(9.13~26)을 열어버렸다. 스케치북과 4B연필, 물감과 붓만 있다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는 김미숙, 이미영, 주현주, 황선 씨다. 이들의 꿈이 한자리에 들어찬 M갤러리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져봤다. 

그림을 함께 그린다고 하니 동문에 동기 동창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생각은 크게 빗나갔다. 
이미영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 정발산동 행정복지센터의 크로키 반에서 만났어요. 그 수업에 들어온 시기는 네 명 다 달라요. 저는 2006년에 시작했고, 미숙이는 2017년에 크로키를 하고요. 우리가 용띠 동갑인 것을 알게 된 건 현주와 선 때문이었어요. 

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크로키 반에 합류한 황선 씨가 알고 보니 주현주 씨와 금란여고 동기동창에 같은 반 출신이었다. 퍼즐이 맞춰지듯 주 씨가 황 씨를 알아보면서 이미 친하게 지내던 이미영 씨와 김미숙 씨도 함께 끈끈하게 묶였다.
주현주 처음에는 몰랐는데 얼굴이 낯익어서 초등학교부터 쭉 서로 읊었어요. 그랬더니 같은 고등학교에 고2, 고3 같은 반이었더라고요. 저는 학교에 조용하게 다녔는데 선이는 저보다 더 조용히 학교에 다녔어요. 가끔 쳐다봤던 기억이 나요. 

이미영 씨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과 아들이다. 긴 세월 지치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릴 적 꿈 중 하나였던 그림을 기억해 냈다. '드래곤 날다' 외에도 개인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이미영 씨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과 아들이다. 긴 세월 지치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릴 적 꿈 중 하나였던 그림을 기억해 냈다. '드래곤 날다' 외에도 개인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황선 정말 기억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현주가 절 알아봐 준 거죠.
김미숙 다들 만나고 보니 동갑내기여서 마음이 잘 통했습니다.

이들은 그럼 언제부터 그림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까. 공통점은 네 명 모두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시대적 편견과 각자 가정 안에서의 인식 차이가 장애였다. 황선 씨와 김미숙 씨는 미술을 전공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미영 씨와 주현주 씨는 전혀 다른 전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자신이 그린 그림과 마주하게 됐다. 그림만 그릴 것이 아니라 아예 전시회를 열어보자고 했다. 그 제안은 주현주 씨가 했다. 이들의 전시 공간인 M갤러리 대표가 바로 주 씨다.

황선 몇 년 전부터 현주가 갤러리를 만들 거라고 했어요.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코로나 때 진짜 열더라고요. 전시 날짜를 잡으면서 우리 모임 이름도 ‘드래곤 날다’로 만들었습니다. 

M갤러리 대표이자 '드래곤 날다'전을 기획한 주현주 씨. 그림에 대한 오랜 갈망을 갤러리를 운영하며 풀어가는 주씨는 앞으로도 '드래곤 날다'와 함께 힘차게 날고 싶다고 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M갤러리 대표이자 '드래곤 날다'전을 기획한 주현주 씨. 그림에 대한 오랜 갈망을 갤러리를 운영하며 풀어가는 주씨는 앞으로도 '드래곤 날다'와 함께 힘차게 날고 싶다고 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주현주 갤러리는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을 위한 복지 공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파주 본사에 하나가 있고, 이번에 건물을 매입하면서 자회사들이 함께 들어왔어요. 1층에 자회사 직원을 위해 카페를 겸한 갤러리를 연 것입니다. 10개월 남짓한 기간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사진작가 혹은 화가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그중에 우리 ‘드래곤 날다’도 전시하게 됐고요.  
이미영 오래전부터 우리끼리 전시해 보자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기회가 올 줄 몰랐어요. 
황선 네 명 다 개성이 강하니까 함께 전시회를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유화나 아크릴물감 작업도 하지만 본래 동양화를 전공했고, 나만의 방법으로 민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친구들은 서양화를 해요. 얼굴만 그린 작품은 주현주 대표 작품이고, 검은색 옷을 입은 여인이 등장하는 작품은 미영이 작품입니다. 김미숙은 풍경이나 어릴 적 살던 동네 등을 그렸고요. 

이들의 그림 안에는 살아오면서 지나온 각자 삶의 여정이 담겨 있다. 기억에 남는 순간, 인물, 현장 등을 개성적으로 잘 내보이고 있다. 황선 씨의 경우 젊은 시절 남편의 모습, 행복한 딸의 결혼 장면을 포착해냈다.

어릴 적 풋풋했던 그때 '드래곤 날다' 멤버는 그림을 곧잘 그린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 주위 반대에 부딪히거나 다양한 이유로 붓과 물감, 각종 그림 도구와 멀어지게 됐다. 이들이 다시 그림을 기억해 내고 다시 돌아와 이젤 앞에 선 이유가 뭘까?

이미영 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고양여성작가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나이가 좀 들고 그림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지적 발달장애가 있는 제 아들 때문이었어요. 긴 인생을 아이와 길게 가려면 제가 행복해야겠더라고요. 어린 시절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지는 않았는데 고교 때 미술 선생님이 제가 그림 그리면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미대를 꿈꿨지만, 부모님이 안 좋아하셔서 독어독문과로 진학해 한동안 잊고 살았어요. 아들 낳고 네 살 됐을 때 주위 분들과 아이 유치원 선생님이 취미를 가져보라고 조언해 주셔서 그림이 생각났어요. 저는 주로 저와 아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검정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저고 흰 말은 제 아들이고요. '드래곤 날다' 전시 바로 전에 인사아트갤러리(종로구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마치고 바로 이곳에서 용띠 친구들과 함께 전시하게 된 거죠.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는 김미숙 씨. 그녀는 스승 이현숙 작가를 만나서 "제가 선생님을 만나기까지 돌고돌아 25년 걸렸다"라고 말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는 김미숙 씨. 그녀는 스승 이현숙 작가를 만나서 "제가 선생님을 만나기까지 돌고돌아 25년 걸렸다"라고 말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충남 금산 출신인 김미숙 씨는 대전의 한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시각디자인보다는 지금처럼 붓을 들고 세상 이야기를 스케치북에 담아내는 작업이 더 좋다고 한다.

김미숙 초등학교 4, 5학년 때쯤 담임 선생님이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를 들고 뒷산에서 그림을 그려오라고 하셨는데, 며칠 뒤 제 그림이 교실 액자에 들어가 있었어요. 근데 그림에 제 이름이 없더라고요. 혹시나 선생님께서 “저게 김미숙 그림이다”라며 얘기라도 해주시겠지 했는데, 안 하시더라고요. 마음이 상했지만 저는 제 그림이 걸린 것 자체를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저 한 살 때 돌아가셔서 오빠가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값비싼 영어 과외비는 준다면서도 미술 한다면 굶어 죽는다고 지원을 안 해주려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머리가 좀 크니까 오기도 부리고 고집부린 끝에 미대에 갔죠. 20대 후반이 돼서 서울 남자라고 해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어요. 제가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서 공방 겸 교습소를 18년 했어요. 그때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저도 미영이처럼 이현숙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본격적으로 회화에 눈뜨게 됐습니다. 25년 걸려서 참 스승을 만났어요. 이 과정에서 용띠 친구들도 만났고, 같이 그림에 몰입하면서 사는 거 같아요. 

황선 그림을 잘 그리지만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공부는 또 하기가 싫었고요. 저는 좋은 기술 하나 있으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헤어 디자인이나 만화 같은 것을 하고 싶었어요. 대학 진학에도 관심이 없어서 희망 대학을 써내지도 않았어요. 엄마한테 대학에 안 간다고 했다가 많이 혼났어요. 너무 많이 혼나다 보니 이렇게는 못 살겠다, 마음 고쳐먹고 대학 갈 마음을 먹은 거죠(웃음). 중학교 때 서예반에도 있었고, 종이와 묵향을 좋아해서 처음부터 동양화를 전공하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 대학에 입학했어요. 학교 졸업하고도 딱 3년 바짝 그림에 몰두하다가 공군 장교인 남편을 만나면서 붓을 꺾었어요. 그뒤 코로나가 오기 1년 전 쯤 크로키 반에 들어갔어요. 그 시기에 스스로 ‘숨 쉬는 거만큼 자연스러운 일은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크로키 반은 친구들 만날 생각에 늘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중 현주가 갤러리 열 거라고 준비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나 빨리 될 줄 몰랐어요. 이 전시 바로 전에는 학교 동기들과 함께 이곳에서 전시회를 했습니다. 올해는 진짜 쉴 틈 없이 지나왔던 것 같아요. 

M갤러리에 전시된 '드래곤 날다' 4명의 작품. 권해솜 객원기자.
M갤러리에 전시된 '드래곤 날다' 4명의 작품. 권해솜 객원기자.

주현주 저는 아버지로부터 그림 소질을 물려받았어요. 각종 대회에 나가면 상도 많이 탔는데, 부모님이 그림을 반대하셨어요. 고1 때까지도 미술 대회 나가면 상도 받고 미술 선생님이 전공도 권했지만하지 못 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한계가 느껴졌어요. 색감이나 색채가 배운 아이들의 스킬을 못 넘겠더라고요. 전혀 관계없는 행정학과에 들어갔죠. 부모님은 저를 판사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웃음). 사는 내내 곁눈질이라도 하면서 미술을 봤습니다. 그때 취미로 홍대 평생교육원에 가서 신중덕 교수님께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현숙 선생님과 인연이 닿았고, 결국 갤러리 대표까지 하게 됐습니다.

대학 시절 전공 따위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림을 통해 나와 세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었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고 싶은 마음에 붓을 꺾었다가 다시 그림붓을 잡았다는 황선 씨. 묵향과 종이의 향을 사랑해 동양화에 빠졌고, 민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고 싶은 마음에 붓을 꺾었다가 다시 그림붓을 잡았다는 황선 씨. 묵향과 종이의 향을 사랑해 동양화에 빠졌고, 민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황선 전공자다 보니 주위에 꾸준히 전시하는 동창도 많고, 함께 전시하자는 말도 많았는데 저는 전시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전업주부로 아이와 가족에게 몰두하겠다고 붓을 꺾고 쉬었다가 이번에 전공자보다 더 열심인 친구들 덕분에 그 붓을 다시 들었죠. 갈고닦는다는 기분을 '드래곤 날다'를 통해서 느끼거든요. 여기서 만난 세 친구는 정말 성실해요. 배울 점입니다. 개개인에 따라 다른 거지, 전공과 비전공이라는 시선으로 보면 안 됩니다. 

사회에 나와 살면서 용띠 친구를 만나거나 또 만나보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그림 작가 모임 '드래곤 날다' . 그래도 만나고 보니 의지되고 좋은 친구들이기에 함께 전시까지 하게 됐다. 권해솜 객원기자.
사회에 나와 살면서 용띠 친구를 만나거나 또 만나보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그림 작가 모임 '드래곤 날다' . 그래도 만나고 보니 의지되고 좋은 친구들이기에 함께 전시까지 하게 됐다. 권해솜 객원기자.

이미영 저는 취미로 그림을 한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게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걸 거부하고 싶어요. 열심히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요(웃음). 어쨌든 다들 중·고등학교 때의 꿈이 그림 그리는 거였잖아요. 뜬금없는 사람이 하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저런 일로 막상 못했는데 이제는 밖으로 표현할 여유가 생긴 거죠. 

김미숙 저는 대전에서 살고 학원도 못 가봤어요. 시각디자인이 아닌, 제대로 된 회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저에게는 그게 잘 맞고요. 

서울 M갤러리에서 1차 전시를 마친 이들은 파주 멕갤러리로 이동해 10월 4일부터 28일까지 2차 전시를 이어간다. 앞으로 '드래곤 날다'의 전체적인 계획에 관해 물으니 주현주 씨는 “제2회 전시를 추진하고 싶은데 M갤러리는 스케줄이 꽉 차 강남으로 진출할까 생각한다”면서 “실력을 키워서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에도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20년 12월부터 2021년 3월 말까지 75세에 신진 작가로 데뷔해 세계를 놀라게 한 로즈 와일리(88)의 작품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걸리면서 로즈 와일리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78세에 붓을 잡은 미국의 국민화가 그랜마 모지스(1860~1961)가 있었고, 영화 ‘내 사랑’의 실제 주인공인 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는 류머티즘으로 붓을 들기 어려운 상황에도 그만의 따뜻한 정서를 그림에 담아냈다. 2019년 KBS 인간극장에 소개된 94세 김두엽 작가는 83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한국의 ‘그랜마 모지스’ 또는 ‘로즈 와일리’로 불리고 있다. ‘드래곤 날다’는 재능을 바탕으로 각자 40대, 50대에 다시 붓을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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