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몇 년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덩달아 ‘반지하’라는 낱말이 이 시대의 반(反)사회적 아이콘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얼마 전 온 나라가 큰 물난리를 겪는 가운데 ‘반지하’ 공간에서 생활하던 저소득층 가족의 안타까운 비보가 우리네 마음을 크게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에 몇몇 정치인이 나섰고, 주택단지의 반지하공간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에만 무려 20만 호가 반지하 구조로 되어 있는 게 현실인데도 말입니다.

필자에게는 ‘반지하공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독일에서 필자가 많은 시간을 보낸 연구실이 요즘 말하는, 바로 ‘반지하공간’이었습니다. 여름철에는 환자가 머무는 병실보다 시원하고, 겨울철에도 지상보다 더 춥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대형 대학병원 건물 중에서도 가장 쾌적했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이 필자를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항온항습(恒溫恒濕) 조건이 절대 설치 요건인 전자현미경실이 그 옆방에 있었습니다. ‘반지하공간’이 근래 우리 사회에서처럼 손가락질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도 있습니다. 필자는 몇 년 전, 옛 동독 지역인 데사우(Dessau)에 있는 바우하우스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현대 디자인 예술, 현대건축 예술의 발원지인지라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터였습니다. 저 멀리 바우하우스가 보일 때부터 가슴이 뭉클해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현대 디자인의 격을 높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가 1919년 바이마르(Weimar)에서 문을 열었다가 1925년 데사우로 옮겨 세운 건물이 바로 지금의 바우하우스입니다.

그 바우하우스에 세계 건축 예술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와 현대미술의 거장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가 교수진으로 합류했다는 사실이 그 위상을 짐작게 합니다.  

 독일 데사우에 있는 바우하우스. 자료 출처: UIG VIA GETTY IMAGE)
 독일 데사우에 있는 바우하우스. 자료 출처: UIG VIA GETTY IMAGE)

거기에 더해 바우하우스가 건축가 그로피우스가 직접 설계한 건물이어서 역사성을 더합니다. 그 결과 바우하우스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1996).

그런데 그 바우하우스 건물은 반지하공간 위에 반듯하게 서 있습니다. 반지하공간에는 식당 겸 카페와 기념품 매점이 있습니다. 그 반지하공간에서 커피 향을 즐기고, 푸른 잔디 마당을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그 특별함을 즐겼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즉, 필자는 현대건축에서 반지하공간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처럼 규탄의 대상도 아니며, 저소득층을 상징하는 공간은 더더욱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바우하우스가 고산지대에 있으니 홍수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걸어서 몇 분 거리에 큰 물줄기를 자랑하는 엘베(Elbe)강과 물데(Mulde)강이 있고, 바우하우스는 이 두 강 사이 평야 지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엘베강이 범람했다는 소식은 가끔 들었어도 바우하우스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반지하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창밖 도로 위에 빗물이 퍼부어 생성된 큰 물줄기가 지하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컨대 반지하공간의 창틀이 얼마나 엉성하고 부실했으면, 도로 빗물의 유입을 막지 못했을까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지하 공간을 없애겠다”라는 행정 당국의 엉뚱하기 그지없고 즉흥적이며 비전문적인 견해에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근래 우리 아파트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스템창호’ 같은 구조물을 그 반지하공간의 창틀에도 시공했다면, 이런 저개발국형 물난리 같은 재난은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며칠 전 한반도 남단을 덮친 역대 최강의 태풍 ‘힌남노’에도 부산 해운대지역에 있는 초고층 건물의 창틀이 파손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시스템창호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면서, 반지하공간은 결코 반사회적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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