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사)현대미술관회 전 회장,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근래 우리 사회가 쪼잔해지면서 뒷걸음질치는 것만 같아 무거운 마음을 가누기 힘듭니다. 몇 달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가족이 청와대 역내에서 거주한다며 트집을 잡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되풀이해서 부정적인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친딸 가족이 아버지 어머니가 사는 주거 공간에서 함께 거처하는 걸 놓고 왈가왈부하며 탓하는 모습이 왠지 석연치 않았습니다. 비록 그곳이 청와대 역내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정치 무대의 주체가 바뀌었다고, 진보 좌파 역시 대통령 관저 개축 공사 등등을 놓고 이러니저러니 앞장서서 깐죽거립니다. 옹졸하고 쪼잔하기는 여야,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피장파장입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리도 쩨쩨하고, 치사하고, 옹졸하고, 쪼잔해졌는지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외국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정반대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필자는 그 유명한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작품 한 편을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 오래된 일이라 작품명이 생각나지 않아 당혹스럽습니다만, 그 극장의 둥근 천장에 그려진 한 폭의 명화는 선명하게 생각납니다. 바로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프레스코화 작품(1964년)입니다.

샤갈은 오페라 음악의 거장 14명의 모습을 천장에 옮겨 기렸습니다. 그 14명은 무소르그스키(Modest Moussorgsky),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라모(Jean-Philippe Rameau), 드뷔시(Claude Debussy), 라벨(Joseph Maurice Ravel),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아당(Adolphe Charles Adam), 비제(Georges Bizet),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입니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러시아 출신 샤갈이 그 특유한 몽롱하면서도 황홀한 불후의 명작을 만세에 남긴 것입니다. 

마르크 샤갈의 파리 오페라극장 천장화.
마르크 샤갈의 파리 오페라극장 천장화.

 그런데 필자에게는 그 대작의 탄생 과정이 또 다른 ‘놀라움’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지금도 예사롭지 않은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2년 당시 프랑스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대통령 내각의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André Malroux, 1901~1976)는 샤갈에게 파리 오페라극장의 천장화를 새로 단장해줄 것을 의뢰합니다. 그런데 샤갈이 보내온 스케치는 너무나 현대적이고 색감이 화려했습니다. 이에 언론에서는 혹평이 이어졌지요. 하지만 말로는 끈기 있게 사람들을 설득해 자기 뜻을 관철했고,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파리의 명품이 탄생했습니다.

근래 같은 맥락의 이슈가 또다시 알려졌습니다. 현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Emmanuel Macron, 1977~)은 2020년 11월 11일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독일 출신 신표현주의(Neo Expressionism) 화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및 프랑스 현대 음악가 뒤샤팽(Pascal Dusapin, 1955~)과 회동해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파리의 자랑이며, 프랑스 문화예술계를 상징하는 ‘판테온(Pantheon, 神殿)’의 너무나 침체한 모습을 새롭게 단장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필자로서는 말로 이후 또 다른 정치인의 문화적 행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와 마크롱 대통령의 독단적 행보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볼까요? 아마도 온 나라가 들썩거리며 ‘전형적인 절대권자의 독단적 행보’라는 막말이 횡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전문 선정위원회나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효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엄포를 놓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탄핵’이라는 소름 돋는 구호도 들리겠지요.

대통령이, 장관이 여론에 떠밀려 이런저런 일을 소신 있게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는 정치의 선(善)한 동력을 뭉개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되돌아보면 반세기 전 우리 사회는 오늘처럼 이렇게 쪼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1950년대 전란의 흔적이 아직 뚜렷하던 시절, 걸인이 먹거리를 구걸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먹던 밥그릇에서 성큼 한 숟갈 덜어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한 외국인은 우리 민족의 따듯하고 넉넉한 마음씨에 크게 감명받았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물질적으론 궁핍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오늘같이 메마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병폐와도 같은 쪼잔한 사회 정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양보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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