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름 내내 미국을 뒤흔든 ‘의사당 폭동 청문회’에 이어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8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Mar-a-Lago) 리조트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 수색에서 다수의 비밀 문건이 추가 확보되면서 트럼프 ‘사법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11월 8일 치러질 미 중간선거와 2024년 11월 5일 시행 예정인 대통령 선거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트럼프가 유죄 확정될 경우엔 대선 재출마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수사 당국이 트럼프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여나갈수록 그의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의 차기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 후보에 대한 정권의 탄압’ 이미지가 강해져 지지층이 결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압수수색 뒤 트럼프의 후원금은 급증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6일 ‘도널드 트럼프는 법 위에 있지 않다(Donald Trump Is Not Above the Law)' 제하 장문의 사설에서 후폭풍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대통령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민주정부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트럼프를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트럼프는 사상 초유인 미국 전직 대통령 사저 압수수색이 ‘마녀 사냥’이라고 주장하면서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에 압수된 문서 중 보호받을 정보가 있는지를 확인할 ‘특별 조사관(special master)’을 선임해 달라고 신청했다. 법원은 이 신청을 받아들일 것으로는 보이나 이 결정이 연방 법무부의 수사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미 언론의 관측이다.

1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이 공개한 자택 압수수색 영장은 미국 연방 법무부가 수사 일환으로 보고 있는 간첩법(Espionage Act) 위반, 사법 방해, 정부 자료 불법 취득·파기 등 연방 범죄 세 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간첩법 위반 혐의다. 1917년 제정된 간첩법은 미국에 해를 끼치거나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국방과 관련된 정보를, 의도나 이유를 가지고 확보하거나 복사, 사진 기록으로 가지는 것 등을 금지한다.

미국 연방 법무부는 지난 1월 트럼프 측으로부터 회수한 184건의 비밀 문서에 이어 지난 8일 마러라고 압수수색에서 1급 비밀을 포함한 11건의 기밀문건을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들 문서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중에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CIA, FBI, 미국 국가안보국 등의 기밀문서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방 검찰이 간첩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고의성’(willfulness)‘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연방 검사 출신인 르나토 매리오티(Renato Mariotti)는 미국의 인터넷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 기고에서 트럼프의 협의 입증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왜냐하면 일반 미국 시민이 21개 상자 분량의 기밀문서를 자택에 보관하고 있다면 이는 바로 압수되고 해당인은 기소될 것이며 배심원들은 트럼프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의 경우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연방 법무부가 수차례 반납 요구를 했으나 이를 거부해 온 것이 역설적으로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안보문제 전문가 팀 와이너(Tim Weiner)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워터게이트 이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법(Presidential Records Act)’으로 FBI의 트럼프 수사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1973년 5월 3일 FBI는 워터게이트 관련 문서를 확보하기 위해 백악관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이 문서들은 내 것이다(They belong to me)”라며 반발했다. 선출된 대통령의 언사라기보다는 “짐은 곧 국가다”라고 선언한 절대군주 루이 14세를 연상시키는 발언이다. 미국 연방 법무부와 의회 조사에 의하면 닉슨은 관련 문서를 은닉하고, 변조하고, 파기했다. 그러고는 대통령 집무실의 대화가 자동 녹음된 테이프를 그의 사망 시까지 20년간 보관하기 위해 투쟁했다.

워터게이트를 계기로 대통령 기록물이 범죄 행위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 의회는 ‘대통령기록물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대통령 문서의 소유권은 국민에게 귀속된다(Presidential files ultimately belong to the people)”고 명시했다. 또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모든 대통령의 기록물은 미국 국립문서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NARA))으로 이관되고, 12년이 지나면 국립문서관리청이나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통해 공개될 수 있게 했다.

미 국립문서관리청이 작년에 트럼프가 보관 중인 기밀문서의 반환을 요구했을 때 트럼프는 ’’이것은 그들 것이 아니고, 내 것이다(It’s not theirs; it’s mine.)“라며 반발했다. 반세기 전 닉슨이 한 것과 똑같은 주장이다.

마러라고의 문서들은 트럼프의 정치적인 장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출처는 어디인가? 이 문서들에서 채취된 지문은 누구의 것인가? 압수된 녹화 화면에 찍힌 출입자들은 누구인가?

안보 전문가 와이너에 의하면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문서 추적이 아니다. 미래의 세대를 위해 역사를 보존하려는 법적 노력이자 국가 기밀을 보전하고 간첩을 색출하기 위한 방첩 행위다. 정보 전문가들은 마러라고가 트럼프와 함께 외국 스파이들의 표적이 되어왔다고 보고 있다. 마러라고의 기밀문서들이 트럼프에게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인가? 와이너는 트럼프가 그의 ‘황금 궁전’에 무엇을 감추고 있었는지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대통령의 비밀은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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