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숙 논설위원, 동의대 융합부품소재핵심연구지원센터 부소장

원미숙 논설위원
원미숙 논설위원

2019년 8월,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고 불화 폴리이미드와 EUV 레지스트, 에칭가스 인 불화수소 등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하였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 산업체는 이들 소재 확보에 초비상이 걸렸던 상황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았으나 정부는 즉각적인 대응책으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소부장 1.0, 2019년 8월)을 마련하였으며, 반도체 소재를 비롯한 부품 장비 개발에 2020년부터 10년간 매년 1조 원씩을, 일반 소부장의 경우 2021년부터 6년간 5조 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소부장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었다.

2020년 7월에는 수출 규제 차원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장기 전략인 소부장 2.0 전략이 마련되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제1차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기본계획이 의결되어 법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 계획에는 첨단산업의 세계적 클러스터화를 통한 소부장 강국 도약을 위한 정책 확장 및 첨단산업 강력 유치, 그리고 범부처‧민관 총력 지원체계의 지속적인 가동도 포함되었다.

소부장은 원자재→중간재→완제품의 생산단계에서 중간재이나 완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완제품 생산에 기초가 되는 산업을 의미한다. 반도체를 예로 든다면 공정 과정에서 단 한 개의 소부장이 부족하더라도 전 생산라인이 멈추게 되고 소부장의 기술력이 반도체의 성능을 좌우한다.

이렇듯 중요한 소부장의 개발과 국산화는 왜 늦어진 것일까? 대기업이 국산화된 부품·소재를 실제 공정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서류 및 사양 검토를 거친 후 생산 공정 라인에서 테스트를 한다. 여기에 수백억 원의 예산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이러한 과정을 굳이 대기업이 부담하여 실제 공정라인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중소기업도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려면 투자 대비 수익이 커야 하며 시장 규모와 경쟁력, 원가절감 효과 등을 고려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의 기초원천기술이 효율적으로 기술개발로 이어지지 못한 점도 이유 중 하나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현재까지 반도체를 포함한 소부장 분야의 기술경쟁력 강화와 핵심품목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하여 대규모 예산 투자와 함께 산․학․연․관의 적극적인 협력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1.1조 원이었던 정부의 소부장 예산이 2021년에는 2.6조 원으로 크게 증가하여 소부장 R&D와 기반구축 등을 지원하였으며, 소부장 경쟁력강화위원회 신설, 소부장 특별법 전면 개정 및 특별회계 신설 등 소부장 자립화를 위한 체계적 체계도 갖추어졌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소부장 100대 핵심품목 대일의존도가 2년 만에 2019년 30.9%에서 2021년 10월 24.9%로 6%p 감소하였다. 불화수소는 국내생산량을 2배로 확대함으로써 대일수입액이 5분의 1 이하로 감소하였으며 불화폴리아미드는 국내 생산 및 대체소재(초박유리, Ultra Thin Glass) 투입으로 대일 수입은 사실상 0인 상태이다. 또한, EUV 레지스트는 자체 기술 확보와 수입 다변화를 통하여 대일의존도는 50%로 감소되었다. 현재 소부장 핵심 3대 품목의 공급 안정성이 개선되어 수급에는 거의 문제가 없는 상태이다(관계부처 합동, 2022년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 시행계획 (안)).

소부장 상장기업의 매출액도 2년 사이에 15.7% 증가하여 전체 상장기업의 매출액 증가율 9.8 %에 비해 큰 폭 상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핵심 전략기술 재편 및 공급망 핵심품목·미래선도품목 R&D에 2.3조원을 투자하는 2022년에는 기업의 매출액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이다.

수요기업, 공급기업, 공공연구기관, 대학의 연계에 의한 소부장 협력 생태계가 빠르게 활성화되고 있으며, 기업의 자체기술 개발과 정부․수요기업의 연결에 의한 소부장의 국산화 성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소부장 협력모델 지원으로 율촌화학은 현재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는 전기차(EV)용 배터리 파우치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바이오․․백신 소부장의 국산화를 이룬 에스티팜, 및 세계 유일 '파우치형'LTO배터리 양산 기술을 확보한 그리너지 등은 소부장 국산화와 수출 성공 사례를 만든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투자 대비 소부장 산업의 육성 성과가 미흡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소부장은 특성상 단기간 내 성과가 나지 않을 수 있어 민간 기업이 도전적으로 뛰어들기 쉽지 않다. 정부는 단기적 결과보다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꾸준한 지원을 계속하여야 한다.

당초 소부장 정책은 대일 100대 품목의 경쟁력 강화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소부장 2.0에서는 글로벌 차원 품목의 핵심 전략기술 확보 및 글로벌 공급망 대응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기술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현 시점에서 소부장 산업육성의 궁극적 목표가 국산화라는 점에는 문제가 있다.

소부장 핵심품목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핵심 품목의 국산화와 함께 대체품 확보, 그리고 수입 다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수입 다변화는 또 다른 수출규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 국산화를 넘어 소부장 미래 핵심기술 및 기술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핵심 품목의 안정적 공급뿐만 아니라 나아가 글로벌 진출로 이어질 수 있다. 확보된 소부장 핵심기술이 해외로 수출될 수 있도록 판로 개척에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모든 산업의 경쟁력 강화의 중심에는 인력이 있다. 반도체 인력 수급을 위한 대학의 반도체학과 신설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인재는 단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부장 전문인력의 중·장기적인 수요와 공급을 파악하고, 양성에 대한 체계적 계획 수립과 실행이 중요한 시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k-소부장 새로운 역사를 쓰다.
산업통상자원부. k-소부장 새로운 역사를 쓰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