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임철순 주필
임철순 주필

이번 글은 7월 27일에 나간 ‘때려서 안 잊힌 선생님’의 속편이다. 체벌과 몽둥이질로 악명 높았던 독일어 교사 ‘지겨훈’(별명)의 이야기를 읽고 여러 사람이 자신들의 경험담을 들려주어서 이 속편을 쓰게 됐다.

우선 글에 소개한 A의 경우부터 더 이야기하자. ‘지겨훈’ 선생님이 독일 유학을 가기 위해 퇴직하면서 후임으로 추천한 대학 동창도 만만치 않았다. 새 선생님은 학생들을 때리지는 않았지만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화가 나면 “개미 X대가리 같은 새끼” 식으로 험악한 욕을 퍼붓거나 멍청하다고 학생들을 비웃곤 했다. 개미 X대가리를 본 적이 없으니 그 크기를 알 수 없었지만 하여간 엄청난 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옷차림에 전혀 관심이 없어 바짓단이 튿어진 채 출근하기 일쑤였던 그를 학생들은 ‘똥걸레’라고 불렀다. 그도 ‘지겨훈’처럼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되어 현상학(現象學)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저서도 여러 권 냈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고등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전혀 없었다.

그 학교에 있던 다른 독일어 선생님도 무서웠다. 키가 작은 그는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어 늘 화가 난 것처럼 보였고, ‘독일 병정’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언제나 차가운 인상이어서 말을 걸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이번엔 다른 고등학교 이야기. 그 학교 독일어 선생님의 별명은 돌배였다고 한다. 진짜 돌배같이 생겨서 돌배, 돌배스, 돌뱀, 돌밴, 이렇게 여러 가지로 정관사 변화처럼 변형해 불렀다. 본인도 학생들이 자기를 돌배라고 하는 걸 알아서 스스로 '석당(石棠)'이라고 호를 지었다니 나름대로 유머감각은 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그런데 이 돌배 선생님은 여름철에 교실에 들어오면 당번을 시켜 양동이에 물을 떠 오게 하고는 교단 위 의자에 바지를 걷고 앉아 양동이에 발을 담그고 수업을 했다. 그리고 교실 끝까지 가는 긴 장대로 한 명 한 명씩 머리를 툭툭 치면서 “여기 읽어봐, 해석해봐” 그랬다고 한다.

상당히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이었지만 이런 행동과는 달리 일본 교과서나 문제집을 프린트해서 나눠주며 수업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친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 다닐 때 친구 집에 돌배선생이 왔다고 해서 여럿이 찾아간 일도 있다는데, 당시 모 대학 사학과 강사였던 돌배는 나중에 교수가 됐다고 한다. 특이하긴 했지만 ‘폭력교사’라기보다 실력은 있는데 좀 이상한 선생님이었나 보다.

이번엔 최악의 경우를 소개한다. S라는 사람이 고등학교에 들어가 독일어를 처음 배울 때 이야기다. ‘황ㅍㅇ’이라는 독일어 교사가 있었다. 학생들이 뒤에서 떠들자 한 학생을 나오라고 하더니 시계를 풀고 그 학생의 어딘가를 쳤는데 붕 날아서 구석에 처박혔다. 완전 공포 분위기였다. 그날 이후로 독일어 공부는 종쳤다고 한다.

영어는 웃고 들어가 울고 나오고, 독일어는 울고 들어가 웃으며 나온다고 했다. 지금은 거의 잊혔지만 그런 말이 있었다. 그만큼 독일어는 처음 배울 때가 어렵지 일정한 규칙만 익히면 쉽다는 뜻이다. 처음이건 나중이건 배우기 쉬운 외국어가 어디 있겠냐만 독일어는 특히 처음에 사귀기 어렵다. 그런데 초장에 독일어 선생님이 이렇게 폭력을 행사했으니 누가 독일어를 좋아하겠는가. 학생들은 교사가 싫으면 그 과목 자체가 싫어져 공부를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영향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황ㅍㅇ’ 선생님 사례를 알려준 사람의 근본 질문은 “독어 선생들은 하나같이 왜 그런가?”라는 것이다. 왜 하나같이 무섭고 엄격하고 폭력적이냐는 것이다. 정말 왜 그럴까? 히틀러한테서 배워 그런 거냐고 농담한 사람도 있지만, 정말 왜 그럴까? 일정한 규칙에 엄격하고 충실한 독일어의 영향일까, 아니면 독일인과 독일 문화의 철저성과 강인함에 잘못 물든 탓일까?

오늘날 독일어는 한국 사회에서 시세가 없다. 독일어와 불어로 대분되던 고교의 제2외국어 교육은 1973년에 배우기 쉬워 보이는 일어가 도입되면서 결정적으로 판도가 변했고, 딱딱하고 지겨운 독일어는 그 이후 거의 실종과 인멸상태에 이르렀다.

1960~70년대만 해도 독일어는 고급 언어였으며 우리 사회에는 독일의 문화와 철학에 대한 관심, 진지한 사유에 대한 존중이 남아 있었다. 진짜든 겉멋이든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로 대변되던 젊은이들의 철학적 사유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가볍고 가시적이고 감미로운 감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변했다.

“데어 데스 뎀 덴, 디 데어 데어 디, 다스 데스 뎀 다스, 디 데어 덴 디!”(der des dem den, die der der die, das des dem das, die der den die!) 이렇게 독일어 정관사 변화를 외쳐대면 독일인들은 깜짝 놀란다. 아니 그 복잡한 걸 어떻게 다 외우느냐고.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교육은 암기교육이며 독일어의 경우는 더 그랬다. 이렇게 철저하게 외우며 배우는 동안 독일어와 독일 문화에 대한 관심과 교양이 배양되는 것인데, 학생들을 때리고 욕하는 선생님들은 독일어를 싫어지게 만들었다.

나이 들어서도 고교 시절의 아픈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선생님들을 떠올리는 것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같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폭력과 학생인권 유린인데... 대체 왜들 그러셨어요? 학생들에 대한 폭력과 인권 유린은 독일어에 대한 폭력이나 배척과 마찬가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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