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대표

민경보 논설위원
민경보 논설위원

조금만 방심하면 체중이 불어난다. 주위에선 나잇살이라고 얘기들 하지만 DNA 탓이려니 하고 산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저녁은 적게 먹고 걷기는 많이 하려고 애쓰고 있다. 강남역 근처로 회의가 잡히면 버스를 타고 판교역에서 전철을 타면 시간도 단축되고, 운동도 되고 또 회의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7월 들어 버스에서 내려 판교역 가는 게 너무 힘들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보도블록이 말썽이다. 발이 닿으면 흔들거리거나 튀어 올라와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넘어질까 힘들고, 비가 오는 날에는 옷에 흙탕물이 튀기까지 했다. 더구나 한여름 여성들의 신발은 거의 샌들이라 정말 위험천만이다. 테크노밸리로 이름을 날리는 판교 초입에 최근에 깐 보도블록이 이 모양이다. 여기뿐만 아니라 걷는 곳곳에 불량보도가 도사리고 있다. 아마도 ‘전국 불량보도블록 사진전’을 열면 성황을 이룰 것이다.

보도블록은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며 장애인에게는 나침반(점자블록) 역할도 한다. 만일 파손된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영조물(營造物) 배상책임’이라는 보험에 의해서 받을 수가 있다고 하는데, 피해자 본인이 공공기관을 상대로 직접 사고를 입증하는 그 과정이 까다로워 배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성남 판교역 3번 출구에서 신호등 건너 H백화점을 왼쪽으로 두고 있는 보도블록(2022년 2월경 시공). 7월 29일 필자 촬영.
성남 판교역 3번 출구에서 신호등 건너 H백화점을 왼쪽으로 두고 있는 보도블록(2022년 2월경 시공). 7월 29일 필자 촬영.
위 사진과 같은 위치의 보도블록에 야자매트를 깔았다. 8월 12일 필자 촬영.
위 사진과 같은 위치의 보도블록에 야자매트를 깔았다. 8월 12일 필자 촬영.

우리나라 보도블록의 역사는 86 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선진국 수준의 보행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던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간 튼튼함이나 정밀시공은 뒤로하고 디자인에만 신경을 써왔고, 2008년에 들어와서야 ‘서울거리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시공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보도블록 첫 시공 사례로 서울대공원(과천)을 꼽고 있다. 1982년(그때까지 보도블록 생산이나 시공기술이 없었다.) 덴마크 기술자가 입국해서 보도블록 생산과 시공에 직접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때 시공된 보도블록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고 하니 선진국과 약 30년 이상 보도블록의 시공기술 격차가 나는 셈이다. 기술격차에는 알지 못해서나 노력해도 되지 않는 IT 같은 정밀기술 격차가 있는가 하면, 노력 부족 혹은 ‘의도적인 부실시공(?)’에 의한 기술격차가 있다. 우리의 경우는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 등 어렵고 돈 되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보도블록 공사쯤은 하찮은 일로 여기고 하자가 생기면 다시 또 하면 되지, 이 정도 가지고 징징대느냐고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 예산이라고 하는 것은 깎이는 걸 각오하고 짜기 때문에, 항상 연말이 가까워오면 소진해야 하는 예산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을 메워줄 기막힌 아이템이 보도블록 공사라고 작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울퉁불퉁하고 깨진 블록을 새것으로 교체해서 시각적으로 뭔가 해내고, 일자리 창출도 하고, 지역 의원의 이미지도 개선한다고 신나 하면서, 내년을 위해 또 ‘의도적 부실 공사’를 하고 감독은 눈감아주고 그래서 겨울이 시작되면 보도블록을 다시 까느라 분주했던 짓을 올해도 겪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보도블록 파손은 부실시공이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보도에 차량이 올라오는 것 또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사람 다니는 곳에 사람의 몇 배인 차량이 들고난다면 당연히 보도가 쉽게 망가질 것이다. 물론 점용허가를 받고 점용료를 납부하는 사용자(건물주, 상점주 등)는 그나마 다행인데 대개가 무단으로 보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법 제69조에는 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사용주로부터 변상금을 강제 징수하게 되어 있지만. 지자체 공무원의 의지 박약(?)으로 법이 고무줄이 되고 있다 하니, 이건 또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근래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강화되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2022년 1월 27일)되면서 대표이사 못해 먹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시장 못해 먹겠다, 구청장 군수 못해 먹겠다는 얘기가 나오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시공자나 이를 감독하는 공무원이 자신의 역할을 대충 넘어가더라도 분노하는 시민이 없다면 이들은 또 다른 곳에서 부실시공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러니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부실 공사 예방은 설계도면과 공사 시방서에 적힌 대로만 한다면 대부분 해결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내의 시공한 지 40년이 넘은 보도블록. 6월 27일 필자 촬영.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내의 시공한 지 40년이 넘은 보도블록. 6월 27일 필자 촬영.
일본 아이치켄 가스가이시(愛知縣 春日井市)의 약 30년 이상 된 보도블록. 8월 7일 필자의 지인 촬영.
일본 아이치켄 가스가이시(愛知縣 春日井市)의 약 30년 이상 된 보도블록. 8월 7일 필자의 지인 촬영.

지난 8월 5일 새로 단장한 국회박물관(4월 11일 재개관)이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비가 새고 내장재가 곳곳에서 떨어지는 부실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서 ‘대한민국 국회 발주공사도 이런데’ 하고 혀를 찼다. 하지만 좌절만 할 건 아니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부실 공사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국회가 앞장서 예산 낭비를 막고 자원도 절약하고 잦은 공사로부터 환경도 보호해 부실로부터 진정 해방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기가 막힌 핑곗거리가 생겼으니. 서울 경기지역(8, 9일)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