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언론 학자들은 정보 제공, 여론 형성, 의제 설정, 환경 감시, 오락 제공 등을 언론의 5대 기능으로 꼽는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여론 형성과 의제 설정이다.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기 때문이다.

의제 설정의 중요성은 국민의힘 내홍 전개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집권 3개월 만의 비대위 출범은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간에 오간 텔레그램 방의 대화 노출에서 촉발됐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라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와 언론의 확대 재생산이 그 단초를 제공했다. 언론은 이준석 대표 징계가 윤 대통령의 뜻에 따라 단행됐다는 물증이 나왔다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솔직히 말해 이 대표 징계가 윤 대통령의 뜻에 반해 일어났겠는가? 이심전심으로 우리 모두 알고 있던 사항이다. 내부 총질이라는 윤 대통령의 평가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 대부분이 이 대표에게 그런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손보고 싶어 했다. ‘성상납 무마용 각서 의혹을 빌미로 한 당 윤리위 징계’는 윤심과 당심의 발로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안이다.

‘내부 총질하던 당 대표가…’라는 대화는 이 대표에 대한 대통령의 속마음이다. 그런데 그 은밀한 뒷담화가 들통나는 바람에 대통령의 체면이 손상됐다. 뒷담화는 종종 가십거리다. 불법이나 비리가 아니라면-. 따라서 언론은 이를 가십성 해프닝으로 간단히 다룰 수도 있다. 그렇게 됐으면 대통령의 속마음을 들킨 대화 노출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말처럼.

이 대표는 당초 윤리위의 징계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하는 등 극단적 반발은 하지 않았다. 전국을 돌며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 여론을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6개월 뒤 당 대표로 복귀하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권 대표 직대 체제가 정착되는 듯했다. 그러나 메시지 노출을 대단한 사건으로 본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상황은 바뀌었다. 연일 계속된 언론의 대서특필은 이 대표와 ‘윤핵관’의 감정을 자극했다. 싸움은 점점 커지고 구경꾼은 늘어났다. 결국 다혈질의 싸움꾼인 이 대표가 대통령까지 비판, 마지노선을 넘었다. 이는 여당의 지도부 개편과 이 대표 아웃으로 이어졌다. 언론의 여론 수렴과 의제 설정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안이다.

한국 언론은 언론자유, 권력 감시 측면에서는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 중 40위로 상당히 높은 수준(2020, 국경없는 기자회 자료)이다. 언론의 권력 비판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오히려 언론의 지나친, 무책임한 비판이 문제가 되는 실정이다. 허위 또는 명예훼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도입이 추진될 정도다.
문제는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라는 점이다. 2020년 옥스포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언론의 신뢰도는 조사 대상 40개국 중 40위다. 4년 연속 최하위다. 독자들은 ‘언론이 공정과 객관성에 벗어나 정파나 당파성에 입각, 보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속한 진영에 따라 구독하는 매체도 확연히 갈라진다. 언론의 당파성은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을 부추긴다. 이는 언론에 대한 신뢰 상실을 가져왔다.

한국언론의 신뢰도 추락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언론에 있다. 언론은 종종 가치에 우열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적 가치는 박하게, 진보적 가치는 후하게 점수를 준다. 얼치기 진보, 보수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진영의 가치와 맞지 않으면 아예 보도도 않기 일쑤다. 조국사태가 아주 좋은 예다. 당시 언론은 광화문의 조국 반대 시위를 폄하, 중요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이런 언론의 편향성은 ‘보수는 꼴통, 태극기 부대’라는 악의적인 프레임으로 광화문 모임을 폄하했다. 반면 서초동에 모이던 촛불시위는 대서특필, 큰 가치를 부여했다. 가치에 우열이 있는가?

이렇게 된 데는 온라인 매체는 물론 유튜브나 SNS 등 1인매체가 범람하는 시대 환경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정통 언론과 달리 검증되지 않은, 주관적 기사를 마구 내보낸다. 진영으로 나눠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한다. 페북 등 SNS에 올린 정치인들의 별 볼 일 없는 글들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다. 정통 신문 방송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마치 게이트키퍼가 없는 것 같다. 사회갈등을 조정하던 정통 신문은 구독자가 점점 줄어 고사 직전이다. 모바일로 보는 자극적 포탈 뉴스가 대세다. 시청률에 목매는 지상파 방송도 흥미 위주, 선정적, 당파적 기사로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언론의 책임은 망각한 지 오래된 것 같다. 이런 자의적, 주관적 의제 설정으로 사회적 갈등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1시간 이상씩 하루 3번 방영하는 종편의 시사 토크쇼도 진영 간 갈등을 증폭시킨다. 기계적으로 진영을 나눠 편성된 패널들은 자기네 진영 입장만 무조건 대변한다. 자기네 편에 대해서는 ‘흑을 백이라고 우기는 일’도 예사로 한다. 사회적 갈등을 수렴, 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조장한다.

언론의 수준은 그 국민의 수준과 비례한다. 독자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언론은 존재한다. 우리 언론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모두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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