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선 논설위원,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 산업협력교수

이주선 논설위원
이주선 논설위원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인플레이션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은행 금리 규제 등 다양한 가격 규제 방안과 정유회사들의 이윤 환수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경제학은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이 이야기를 듣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나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경영대학원에 다니는 기업의 중견 간부 이상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에서 기업경제학을 강의할 때,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하나, 원가가 결정하나?”를 물으면 대부분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고 한다. 이는 정답을 맞힌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답했어도 이게 정말로 그 의미를 이해한 것인지는 별개 문제이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사례를 들어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단골로 드는 사례는 대학 주변 하숙집을 구하는 학생의 경우이다. 이 학생이 하숙집을 구하려고 부동산 중개소를 방문하면 중개사는 그와 함께 하숙집을 보러 다닌다. 첫 경우는 중개사와 중개소에서 500m 떨어진 한 하숙집에 갔는데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할 경우이고, 다른 경우는 여러 집을 소개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종일 돌아다니고도 못 찾고 나흘째 되던 날에야 겨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계약을 할 경우이다. 이렇게 집을 찾아준 중개사는 그에게 중개수수료로 두 경우 모두에 같은 50만 원을 내라고 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이 사례에서 500m 가서 단번에 하숙집이 구해졌는데 소개료로 50만 원을 주는 것은 너무 비싸다고 대답한다.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나흘을 돌아다니고 나서 구한 후 50만 원을 주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전자를 바가지라고 규정하는 것은 중개사가 단 500m만 데리고 가서 계약을 했는데 50만 원을 받는 것이 한 일에 비해서 지나치게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후자가 정당하다는 것은 나흘이나 이 집 저 집을 소개하러 다녔으므로 50만 원을 받아도 비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가격이 원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중개사가 500m를 가서 50만 원을 벌었다고 생각을 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나흘을 이리저리 다녀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이는 중개사가 발품을 판 거리와 시간(원가)이 그 수수료(가격)를 결정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인 학생 입장에서 중요한 가치는 마음에 맞는 하숙집이 구해졌느냐 여부이다. 오히려 이 학생의 입장에서는 후자보다는 전자가 훨씬 이득이다. 그는 더 오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어렵게 이리저리 헤매지 않고도 원하는 하숙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생의 입장에서는 전자나 후자가 다 동일한 (중개)서비스를 받은 것이고 따라서 집을 구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가 50만 원으로 결정되는 것은 수요에 의해서이다.

만일 방금 설명한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논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아파트 원가공개’나 ‘은행 금리 인하 규제’, 정유사가 막대한 이윤을 내게 되었다는 이유로 세금으로 환수한다는 발상은 다 ‘원가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므로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도 원가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우리 생활 도처에서 시시각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신문이나 방송 기사들 가운데는 휴가철에 휴가지의 식당이나 숙박업소의 ‘바가지 요금’에 대한 비난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대기업이 제조한 김치 가격이 원가보다 너무 비싸다며 자기가 직접 담글 경우 담그는 비용과 비교한 기사가 버젓이 신문에 난다. 이 기사를 쓴 기자에게 나는 “그러면 왜 직접 담그지 비싼 그 김치를 사는가? 정부가 직접 담그지 말고 그 대기업 김치를 사 먹으라고 규제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회사 김치가 없는 것도 아닌데."라고 묻고 싶다. 

원가가 아무리 많이 들었더라도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그 물건은 쓰레기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농민들이 풍년이 든 양배추밭이나 양파밭을 갈아엎는 경우이다. 왜 원가를 따지면 적잖은 가격에 팔려야 할 양배추와 양파를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데 손해를 보고도 갈아엎는가? 수요가 없어서다. 갈아엎는 것보다 파는 것이 더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서 들인 비용(원가)으로 계산하겠다는 발상이나 생계비를 기준으로 계산하겠다는 발상도 경제원리를 무시한 것이다.

이렇게 경제원리를 무시하는 경우 경제는 시장의 역습에 직면한다. 수요의 초과, 공급의 부족, 가격 불확실성의 증폭 등이 나타나서 결국 모든 사람들이 다 고통을 받게 된다. 그중에 가장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당연히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장에서의 가격변동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누구보다 작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격 규제는 명분은 그럴듯하나 실제는 부작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정의롭지 못한 불량규제이다. 그런데 여전히 정책당국자, 기업인, 노동조합 등 힘을 가진 이해 당사자들과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많은 기자, 인플루언서들이 원가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논리에 근거해서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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