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무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때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더 더워하는 것 같다. 정치에서 기대하는 만큼 시원한 바람이 안 나오고 정책의 혼란이 반복돼 짜증이 난다는 소리가 들린다. 국정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졌느니 젊은 층뿐 아니라 보수층도 지지층에서 이탈한다는 등의 소식도 있다. 오늘로 취임 석 달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의 새 정부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은 것은, 새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이나 방향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만 5세로 어린이의 입학 연령을 낮추겠다는 정책이 그 대표일 것이다. 교육부총리가 보고를 하고 대통령도 이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하자 곧 관련 기구, 기관, 학부모나 유아원 단체 등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러자 며칠 만에 정책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물러서더니 결국 교육부총리가 사퇴를 하고 말았다.

어떤 정책이든 발표를 하려면, 그 전에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를 미리 점검하고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하는 절차를 거쳐 결정하되, 그 뒤에도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것을 설득하고 토론해서 공감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옳은 방식 아닌가?

과거 정부에서 미진했거나 문제가 되었던 부정부패나 수사의 지연, 에너지 정책의 오류, 검찰과 경찰의 권력 조정문제 등의 정책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정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국민의 이해가 직접 걸린 분야도 그런 식으로 밀고 간다면 문제가 안 될 수 없다.

​조선조 14대 왕 선조는 왕이 될 가능성이 5%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왕이 되자 곧바로 당대에 덕망이 높았던 퇴계 이황에게 정치의 방도를 물었다. 7순의 퇴계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仁)이라고 말한다.

“‘ '임금이 되면 인(仁)에 머물러야 한다.’ 하였으니 인(仁)자는 임금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性)의 네 가지 덕(四德)이나 인은 그중에서 으뜸이 됩니다."(『선조실록』)

그것은 공자의 생각이었다. 왕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탕에 ‘인’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뵌 듯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며,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으며, 집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어야 한다”(『논어』 「안연」)

간단히 말하자면 특정인들만을 편들지 않고 전 국민, 전 계층 모두를 사랑하고 보듬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을 살린다고 다른 쪽의 희생을 무시하면 그것은 인(仁)이 아니기에 불평과 불만, 사회적인 혼란의 씨가 된다는 뜻이라 하겠다.

​예전에 임금의 길이 참으로 쉽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통령의 길도 쉽지 않다. 해방 이후 70년, 역대 새 대통령들은 새 출발을 내세웠지만 현실에서의 진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눈앞의 큰 문제들을 빨리 해결하고 싶은데 세상이 잘 따라주지 않으면 조급한 마음이 앞서게 된다. 그래서 택하는 것이 '과감함'이다. 과감한 정책, 과감한 개혁, 과감한 인적 청산을 내세우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모든 정책은 과감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럴 때에 중요한 것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하면 민심은 떠나간다. 정책은 바람이고 국민들은 풀이어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바람 따라 몸을 순응할 수 있는 시간과 부드러움이 필요하다. 갑자기 잡초라고 뿌리째 뽑아버리려고 하면 뿌리 밑에 붙은 흙먼지가 날아올라서 온통 세상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해지지 않겠는가?

​“백성을 긴장만 시키고 늦추어주지 않으면 문왕(文王), 무왕(武王)도 다스릴 수가 없고, 늦추어주기만 하고 긴장시키지 않는 것은 문왕, 무왕도 하지 않는다."(『예기(禮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전 한 간담회 자리에서 자신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 '편가르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오'의 측면이 있었다고 시인하며 "제 정치적 역량의 부족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뤄내지 못한 데 대해 대가를 톡톡히 받고 있다"고 토로했었다. 결국 정치의 요체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 배려하는 정책, 곧 대화와 설득이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퇴계가 지적한 대로 정치에 있어서의 인(仁)이리고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에 관해 "대통령이 되는 게 목표였지 그 뒤엔 뭘 할지 계획이 없었던 것 같다."는 말이나, "임기가 두 달을 좀 지났는데 마치 임기가 두 달 남은 정권 같다“는 말도 있단다. 현 정권을 흔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일 것이다. 또 서울 용산의 대통령집무실을 일부 사람들이 편하게 줄여 쓴다고 '용궁'으로 부르며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왕조시대의 꽉 막힌 소통구조인 것처럼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말이 나도는 것도 위기상황의 방증이다.

​지금은 대통령 임기 초라서 난제 해결의 적기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줄었고 의구심은 커졌다.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평가가 70%를 넘었다는 조사도 있다. 국민들의 의구심을 가라앉히고 신뢰를 높이려면 뭔가 달라졌다는 신호를 이쯤에서 분명히 줘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신뢰의 위기는 대통령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원로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국민에게 약속했던 '공정한 사회', '상식적인 기반'에 의한 국정 운영, '법치'를 제대로 지켜나간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민감한 정책적 현안을 너무 쉽게 던짐으로써 반대편의 반발을 키워서는 안 된다. 국가를 어떻게 이끌고 가겠다는 핵심 가치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 주어야 한다. "청와대를 베르사이유궁전처럼 만들겠다"거나 "청와대에 경무대 건물을 복원 전시하겠다"는 등의 과거회귀적인 발언이 정제되지 않고 나오도록 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야당과의 협조일 것이다. 국회에선 압도적 다수인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와 협조 없이는 개혁이건 정책이건 관련된 법률 개정이 어렵다. 야당 탓만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프게 남긴 말이기도 하다. 야당 지도부와 자주 접촉하고 야당에 협조를 구하는 것은 야당과 책임을 나누는 중요한 의미도 된다.

국무회의/ 대통령실 사진
국무회의/ 대통령실 사진

어쨌든 위기를 과장할 이유는 없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볼 소지가 많다. 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만 한 사람인 데다가 성격이 소탈하고 다이내믹하기에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벌써 판단하는 것은 너무 빠르다고 하겠다. 국정의 큰 방향에서 본다면 윤 대통령이 전 정부에서 일어난 많은 불공정 행태와 시장의 왜곡을 잡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다소의 혼란이 있는데, 이런 점들이 단순하게 묻는 여론조사방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언론이나 사회단체들이 국정 수행에 있어서 갈등과 혼란을 화두로 삼다 보니 국민들도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상황이 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현 경제난은 정책의 잘잘못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에 금방 뚜렷한 해법을 찾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국회 연설에서 3대 개혁, 즉 연금·노동·교육 개혁에 관해 "지금 추진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는다"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현재의 인기나 지지도에 신경을 쓰지 않고 묵묵히 해야 할 바를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했다. 집권 초기, 처음 해보는 대통령으로서의 약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멀리 가지를 못했지만 여름 휴가도 보낸 만큼, 이제 대통령이 새로운 국정 운영 구상으로 안정적인 새 정치를 펴는 것을 관심을 갖고 지켜볼 때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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