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세요, ‘내 이야기’를!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안녕하세요? 지난번 연재에서 우리 시니어들이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씀드렸지요? 최근 제 건강과 삶에 아주 커다란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그 원인이 밝혀지면 함께 그렇게 살기 위해서 선택한 제재입니다.

지금 제 건강이나 삶이 기적적이라는 것을 짐작하시도록 만들려면 먼저 50대 이후의 제 삶을 요약해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그때 제 인생은 참 찬란했습니다. 1999년 제 연구실에서 ‘다층’이라는 계간 문예지를 창간하고, 서양 이론에 끌려다니는 한자문화권의 문학 이론을 함께 마련하기 위해 한ㆍ중ㆍ일 협력시스템을 조직하고, 앉은 자리에서 원하는 자료를 골라 읽고 발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부보다 4년 먼저 한국문학도서관(www.kll.co.kr)을 구축하기 시작하고….

옳은 일이라면 누구든지 먼저 시작하고, 정부도, 그걸 발견한 사람들도 협력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60대로 접어들고, 정년퇴임 2년을 앞둔 2009년부터 절망의 구렁텅이로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봉급으로는 도서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어 매일 집 앞 생맥주 집에 웅크리고 앉아 줄담배를 빨면서 홀짝대다가 뇌수막종에 걸려 뚜껑을 열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11년에 제가 쓴 돈 일부만 갚겠다고 회생신청을 하고, 다시 3년 뒤인 2014년 어머니 삼우제(三虞祭) 날에는 돌아가신 그 병원에 입원해 후두암으로 멱을 따고, 다시 2년 뒤인 2016년에는 퇴원을 하려고 검진을 받다가 만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후두암으로 벙어리가 되었을 때는 병원 휴게실 창문을 열고 눈 내리는 정원을 내려다보다가 주사액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단 휠대 때문에 다시 닫으면서 ‘하느님, 내가 뭘 잘못했단 말입니까’라고 삿대질을 하고. 지난해 집사람이 목욕을 하고 하늘나라 들판으로 혼자 떠났을 때는 악도 못 쓰고 차디찬 시신만 쓰다듬으며, 부산 사는 큰딸에게 119에 연락하라고 문자를 보내고 페이스 톡을 눌렀습니다.

그렇게 집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니까 제 건강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하데요. 어떤 음식을 먹든 체해서 수저를 들기가 싫고, 온몸이 건조해져 살결이 여린 곳마다 피멍울이 솟아올랐다가 검은 점으로 굳는가 하면, 뭔가 한 2분만 들고 있으면 손에 쥐가 나고….

그중에서 가장 겁나는 것은 금년 1월부터 급격히 심해진 건망증이었습니다. 화장실을 갔다 나올 때마다 수도를 틀어놓는가 하면 전등을 끄지 않고, 찌개를 끓이다가 잠깐 서재로 들어오면 태워 먹기가 일쑤고, 외출을 하려고 차 앞에 가서 문을 열려면 열쇠를 안 가지고 나오고, 다시 들어가 찾아가지고 나오면 제 소통 도구인 휴대폰과 필담용 패드를 안 가지고 나오고.

MRI 촬영을 해봤지요. 간병인으로 다니는 제자가 여러 번 마취 수술을 받은 사람은 ‘가성(假性) 치매’에 걸릴 확률이 7,80%쯤 되고, 제 나이의 경우는 ‘진성(眞性)’으로 굳어질 확률이 아주 높고, 연 2000만 원 이상의 간병비를 들여도 가족 중 누군가는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하던 말이 떠올라서.

담당 의사 선생님이 대뇌 관자엽 밑 해마(海馬, hippocampus)가 7% 정도 감소했다고 하더군요. 기억을 저장하고 상기시키는 장치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집사람 얼굴이 떠오르데요. 그래서 그 필름을 담은 CD를 가지고 집 앞 대학병원 뇌신경과로 갔지요.

후배 교수님은 CD를 보시더니, 2019년에 드린 제 시전집 4권에 덧붙인 자서전을 읽으셨기 때문인지 “조금 위축됐지만 워낙 큰 분이라 꿈쩍없습니다.”라며 웃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말씀이 사실인지 격려인지 모르지만 그 뒤부터 조금씩 기억력이 회복되고, 얼굴도 볽으데데하고, 손에 쥐가 나는 것도, 피멍울이 생기는 증상도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에 13~14시간씩 컴퓨터를 켜놓고 집사람이 죽은 뒤 반년 가까이 접어뒀던 20여 권의 작품집과 이론서를 다시 고쳐 쓰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저엉 지치는 날에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안 도로로 드라이브를 하고.

77세의 노인네가 하루에 열서너 시간씩 글을 쓰다니 놀랍다고요? 네, 그래서 그 원인을 함께 추론하고, 그럴듯하면 실험해보자고 제안하기 위해 이번 화제로 택한 겁니다.

앞 이야기 이외 더 참고하실 건 간혹 집 뒤 공원을 한 4000보쯤 걸었다는 것이랑, 평생 고생시킨 집사람에게 미안해 유품을 정리해 내실을 작은 박물관처럼 꾸미고, 사진과 일기장 같은 것들은 자식들이랑 나눠 가지려고 스캔하고 있다는 거랑 정 외로운 날은 막걸리 한 병 반쯤 마시고 밤새도록 TV를 틀어놓고 잔다는 겁니다.

아니,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전 같으면 말도 안 붙이던 사람들에게 조금씩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첫 번째 상대는 쓰레기 처리장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밥 해먹기 싫은 날 가는 콩나물 국밥집 중국인 아줌마였습니다. 제 신분을 짐작하는 쓰레기장 아줌마는 쓰레기통을 들고 가니까 분리수거를 도와줘 냉장고에 넣어뒀던 초콜릿을 드리고, 식당 아줌마에게는 거스름돈 천원을 주면서 하트를 날렸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습관이 형성되니까 모든 일에 너그러워지기 시작하데요. 골목길을 운전할 때는 30km 안팎으로 조심조심 몰고, 저만큼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보이면 100m 전방쯤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무엇보다 넓어진 건 아빠에게 다 맡기면 다시 개조하고 있는 한국문학도서관에 몽땅 투자할지 모른다며 두 딸이 집사람 이름으로 등기된 집을 공동 상속하자고 요구하는 데 대해 그동안 미뤄뒀다가 동의하고 인감을 떼어 보내준 겁니다. 과거 같으면 죽어도 만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을 텐데.

이젠 다 고백했습니다. 그래, 여러분은 제 건강과 기억력이 회복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음이 너그러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요? 그렇지요. 건강의 제일 조건은 마음이 편해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운동량은 부족한 것 같다고요? 그렇지요. 그런데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제가 직접 밥을 해 먹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식료품을 사러 슈퍼에 오고가는 걷기가 보충해주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요? 더는 모르겠다고요? 저는 우리 대학병원 그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주목하신 글쓰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억력의 회복만 해도 그렇습니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의사들이 권유하는 게 뭔가 생각해보시면 제가 왜 글쓰기를 내세우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의사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 활동을 하라면서 두뇌를 자극할 수 있는 서예, 자수, 그림, 종이접기, 퍼즐 게임, 화투나 트럼프 같은 것과 독서와 일기 쓰기 같은 것을 권합니다. 그런데 글쓰기는 이 모두를 함께 하는 활동입니다.

우선 글을 쓰려면 남의 글을 읽어야 하고, 쓰다 보면 손끝을 움직여 뇌세포를 규칙적으로 자극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쓰는 과정에서 전인적 감각과 인식과 반응, 심지어는 무의식적 욕망까지 뒤섞여 상상하고, 억제하고, 변형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기능이 숨어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쓰는 겁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나를 가다듬고, 일으켜 세워 끝없이 새로운 나를 만드는 작업이라서 집사람이 죽은 뒤 다시 고쳐 쓰기 시작한 작업이 저를 일으켜 세웠을 겁니다.

눈이 침침한 늙은이들이 어떻게 읽고 쓰라고 권하느냐고요? 그럼 비결을 일러드릴게요.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모니터 크기는 가로가 72cm, 세로가 43cm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종이를 자르는 작두와 스캐너 한 대가 있습니다. 이 정도 모니터라면 아무리 잔글씨라도 스캔해서 읽으면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것도 귀찮으시면 ‘Balabolka’라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다운받아 버퍼로 원고를 복사하면 소리를 내어 읽어줍니다. 모니터만 바꾸려면 한 40만 원, 스캐너와 작두를 사려면 50만~60만 원쯤 들 겁니다.

그럼 어떤 장르가 좋겠느냐고요? 저는 시나 수필 또는 자서전 같은 1인칭 장르를 권하고 싶습니다. 객관적인 글들은 쓰기도 어렵거니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어 쓰는 욕망을 억눌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써도 발표할 기회가 없잖으냐고요? 아닙니다. 다 쓰고 교정이 끝나면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PDF파일로 바꿔 전 세계 독자들의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띄워 보낼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멋있게 만들고 싶은 분들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끼워 넣을 수도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고쳐 쓸 수 있습니다. 저도 앞에서 고쳐 쓰고 있다는 책들을 금년 가을부터 전자책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띄울 작정입니다.

아, 어느덧 약속한 지면이 다 되었네요. 제 노년의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모든 계획을 다 밝히려고 했는데, 다음 연재 주제를 말씀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글을 쓰라고 권했으니,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제가 만들어낸 ‘화자(話者) 시학’을 아주 쉽게 소개하겠습니다.

안녕, 안녕, 광복절을 쇠고 사흘 뒤에 만나용. 아주 쉬운 글쓰기 방법을 안내해 드릴테니까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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