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피아노 조율명장 1호 이종열씨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이종열 조율사.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이종열 조율사.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지구상 80대 중 이분만큼 현역으로서 바쁜 날을 보내는 이도 드물다. 피아노 조율 일정도 빠듯한데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키즈’에 출연한 이후에는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아져 고민이다.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의 아버지이자 조율 명장 1호 이종열(84) 조율사를 예술의전당 음악당 피아노 보관실에서 만났다. 독일에서 온 명품 피아노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가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서려면 명장의 손이 끊임없이 닿아야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새 피아노인데 꼭 조율이 필요한가요?
현재 예술의전당에는 피아노가 11대가 있습니다. 그중 연주자가 공연 전에 피아노를 쳐보고 좋아하는 음색을 고르거든요. 한국으로 보낼 때 조율해서 안전하게 보내지만, 음이 잘 맞지 않아요. 그리고 동양인 손은 서양인에 비해 작아서 건반 깊이를 다시 설정해야 해요. 피아노가 도착하면 몇 달은 만져야 무대에 나갈 수 있어요. 석 달 아니면 1년 넘게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연주를 앞둔 피아노는 최소 1시간 40분 정도 손봅니다. 이 피아노는 3일째 만지고 있어요. 아마도 제가 연주자보다 더 예민할 겁니다. 그들은 피아노만 잘 치면 되지만 저는 속의 기계를 다 정비할 수 있어야 하고 연주도 좀 할 수 있어야 해요.

지난해 출연했던 tvN 인기 프로그램 '유키즈'의 한 장면.
지난해 출연했던 tvN 인기 프로그램 '유키즈'의 한 장면.

‘유키즈’로 다시 회자됐는데 달라진 점은?
다 늙어서 떴어요(웃음).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요. 후배 조율사들이 덕분에 대접받는대요. 조율하러 가면 조율하러 온 ‘총각’, ‘아저씨’라고 했는데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부른답니다. 사람들이 다 유키즈를 봤나 봐요. 여기 앞에 동판이 걸려 있으니까 그런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유키즈에 나와서 유재석 씨랑 웃겼잖아요. 이후에 아무 데서나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오늘 인터뷰가 예순여섯 번째입니다. 며칠 후 인터뷰가 또 있어요. 무슨 독서 모임에서도 저를 초대한다고 합니다. 피로가 풀릴 사이가 없어요.

긴 세월 조율을 하시는데 싫증 나지 않으신가?
저는 정말 66년 동안 조율에 미쳐 있습니다. 직장 생활도 20~30년 하면 싫증 나서 옮기기도 하는데 같은 일을 이렇게 오래 하면서도 질리지 않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매년 진화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조율사 없이는 좋은 연주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 눈에는 연주자만 보인다,. 이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무대 뒤쪽에서 조율사가 뭘 했을까 생각합니다.

이종열 조율사의 조율 장비. 스스로 개발해 쓰는 공구도 많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이종열 조율사의 조율 장비. 스스로 개발해 쓰는 공구도 많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을 기억하는지?
사실 기억에 없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그렇고 이곳 영재아카데미 출신입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다면 아마 제가 조율한 피아노로 연주했을 거예요. 연주하는 걸 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것도 일이거든요. 그래도 연주자의 연주를 듣는 이유는 다음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임윤찬 공연은 10월에 잡혀 있습니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그 또래 신인들이 정말 기량이 좋습니다. 어설프게 연주했다간 누구하고 비교되니까 자동으로 세대교체가 된 것 같습니다. 나는 LP 레코드를 돌리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이 조율 다 했잖아요(웃음).

연주자들이 조율사님을 알아보는지?
제 방이 연주자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와 연결돼 있지만 인사하러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연주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죠. 연주를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기억에 남은 연주자가 있다면?
조성진은 어린 나이인데도 따뜻합니다. 말을 많이 안 하는 형이라 얘기를 걸어보면 대답이 짤막하고 간단해요. 미루어 짐작하는데 어디 가든지 말을 시키니까 말하는 게 힘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내 느낌이에요. 예전에 SBS뉴스에서 저를 취재하러 온 적이 있어요. 그때 마침 조성진 독주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뉴스팀이 조성진 씨한테 가서 제가 하는 피아노 조율에 관해서 물어봤어요. 표현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데 음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날 바로 제 책 '조율의 시간'의 띠지를 바꿨습니다. 조성진 씨가 한 멘트를 띠지에 썼습니다. 

새 피아노가 들어오면 명장의 손을 거쳐야 한다. 3개월 혹은 1년 넘게 걸려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새 피아노가 들어오면 명장의 손을 거쳐야 한다. 3개월 혹은 1년 넘게 걸려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명품 조율사가 명품 피아니스트를 만드는 거지요?
그게 아닙니다. 명품 피아니스트가 명품 연주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조율사의 역할이죠. 아무리 테크닉이 우수해도 피아노가 좋지 않으면 감동을 못 느낍니다. 피아노 음색을 만들어서 소리가 아름답게 완성되면 내가 먼저 감동합니다. 그걸 내주면 피아니스트가 거기에서 감동하고요. 그 사람들이 연주하고 가면서 피아노 조율 수준을 탑클래스로 인정하고 가는 겁니다.
지난 3월 초에 코로나에 걸렸어요. 아프지도 않았는데 일주일 격리하잖아요. 그런데 그때 마침 그 기간에 조성진 공연이 있었어요. 조성진 기획사에서 난리가 났죠. 저를 찾는데 없으니까 당황했나 봐요. 내가 몸이 아픈데도 조성진만 위해 달라고 하니 기분이 나빴어요.

예술의전당에 마련된 이종열 조율사의 방. 입구에 명장 명폐가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예술의전당에 마련된 이종열 조율사의 방. 입구에 명장 명폐가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조율 시간 외에는 어떻게 지내시는가?
나는 우리 동네 노인 복지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관심도 없고요. 거기 가도 말이 안 통해요. 조율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학교 동창이 가끔 전화를 걸어요. 은퇴해서 놀고 있으니까 보자고요. 그런데 저는 현역이잖아요.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술도 안 먹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정 제가 보고 싶으면 예술의전당으로 오라고 하지만 오는 친구는 없었습니다(웃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건강관리를 잘해야죠. 6월 초에 내한한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홀을 가봐도 이런 피아노는 처음 본다고 그랬어요. 피아노가 너무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수천 명의 피아니스트가 제가 조율한 피아노로 연주합니다. 다 기억할 수 없어요. 나에게 기억에 남는 얘기를 해준 사람이라 생각났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프면 안 됩니다. 건강관리 잘해서 소리 좋은 피아노를 만들어 놓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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