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사단법인 현대미술관회 전 회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수년 전 일본 도쿄의 한 저명한 화랑에서 백자전(白瓷展)이 열려 들른 적이 있습니다. 일본 도예계의 거장 이노우에 만지(井上萬二, 1929~ )의 작품전이기도 하거니와 명도무잡(明陶無雜), 즉 ‘잡스러운 것 없는 명품 도자기’라는 전시 테마에 더욱더 흥미를 느꼈습니다. 명도무잡은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어떤 잡스러운 것도 용납하지 않고 순수함만을 추구한 도예품’이라는 뜻입니다.

넓은 전시 공간이 크고 작은 백자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서울의 백자 도예 전시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전시장에서 뿜어 나오는 어떤 생소함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차분히 둘러보던 중 전시 작품들이 하나같이 화려하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습니다. 순백의 백자들이 너무나 눈부시게 하얬던 것입니다.

문득 독일의 한 도자 예술 전문 미술사학자가 했던 코멘트가 생각났습니다. 1895년 함부르크에서 조선 시대의 도자기를 처음 본 에른스트 치머만(Ernst Zimmermann, 1866~1940)이 한 얘깁니다. 그는 조선 도자기를 극찬하면서도 조선 도자기가 일본 도자기에 비하면 한 수 밑이라고 깎아내렸습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조선 도자기는 일본 것과 달리 유약(Glasur, 釉藥)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평가의 잣대로 지적한 것입니다.

지금 같으면 웃음거리로 조롱받을 만한 일이지만, 19세기 말까지 우리네 도자기가 유럽 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상황을 참작하면 치머만의 이런 평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가 우리네 고려청자(高麗靑瓷)를 보았다면, 그러니까 오래전인 10세기 한반도에서 출현한 고려청자가 유약 처리한 자기라는 걸 알았다면, 그런 실언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이노우에가 ‘잡스러운 것 없는 명품 도자기’라고 하면서도 ‘흰색 광채’를 의식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직물과 비유하면 일본 도자기는 번들거리는 명주 옷감이고, 우리네 백자는 무명[綿]처럼 소박하다고 하겠습니다.

1894년 우리나라를 찾은 저명한 여행 작가 헤세-바르테그(Ernst von Hesse-Wartegg, 1854~1918)는 《조선, 1894년 여름(Korea, Eine Sommerreise nach dem Land der Morgenruhe 1894)》(책과 함께, 2003)이라는 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인 그는 중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를 방문했기에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당시 조선의 여러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책의 ‘여성들의 삶’이라는 항목에서 흥미로운 여행 인상기를 남겼습니다.

“꽃무늬나 다른 무늬가 새겨진 옷감을 나는 조선에서 본 적이 없으며, 가수나 무희도 화려한 색의 옷을 입지만 옷에 무늬가 그려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요컨대 중국이나 일본 여인의 의상에서는 다양하고 화려한 무늬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조선에서는 그런 걸 찾아볼 수 없어 신기했다는 얘깁니다. 우리 한복에 색깔은 있어도 ‘무늬’는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 한복 문화 연구를 선도한 이영희(1936~2018) 한복 디자이너는 “한복은 색(色)의 시작이자 끝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필자는 전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 화단이 단색화(單色畵, Monochrome)라는 장르를 독보적으로 창출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달항아리가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구미 문화예술계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 한 예입니다.

또한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는 한국 미술사를 가장 집약되게 표현하는 것으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아니하며, 화려하되 사치하지 아니하다[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 온조왕(溫祚王) 15년(BC 4년)의 기술을 꼽으며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백제의 미학이고,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의 미학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안목(眼目), 유홍준의 美를 보는 눈 III》, (눌와, 2017)

이는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온 우리의 문화 토양이며, 우리의 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로 자랑스러운 문화 코드입니다.

그런데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국회의사당 안팎에서 오가는 행패에 가까운 언행은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 코드와는 거리가 있어도 너무 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의 비문화적인 언행을 지켜보기가 곤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한 번이라도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가 우리 문화의 코드인 조용함과 담백함의 정서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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