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면 큰일 나는 사회에서 큰일 좀 내봐!

영화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이 장면 하나로 대한민국에서는 탱고가 큰 인기를 얻었다. 
영화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이 장면 하나로 대한민국에서는 탱고가 큰 인기를 얻었다. 

아름다운 영화 장면을 꼽을 때 ‘여인의 향기(1992년)’가 빠지지 않는다.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공 알 파치노가 아름답고 젊은 여인과 탱고를 추는 모습이다. 영화 내용은 기억에 없다 해도 탱고에서 느껴지는 벅찬 감동과 수줍은 웃음소리는 기억에 남아 있다. 

이후 한국에서는 탱고 열풍이 불었다. 영화 OST는 물론이고 탱고 장면에서 흘렀던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 음반은 불티나게 팔렸다. 2003년 내한한 댄스 뮤지컬 ‘포에버 탱고’는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이때를 전후해서 탱고를 직접 배우고 싶어 하는 인구도 꽤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도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아르헨티나땅고협회’가 발족했으니 이전부터 오랜 시간 노력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선입견이 있다. 남녀가 함께 손과 몸을 맞대고 추는 이른바 ‘커플댄스’는 사회 통념을 깨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눈으로 보고 감상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탱고는 물론 커플댄스를 보는 시각은 ‘외면’ 아니면 ‘부정적’이다.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에 소개된 우리나라 스포츠댄스 역사를 보면 대한제국 고종황제 당시 러시아 공사에 의해 볼룸댄스가 처음 소개됐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사교댄스’로 널리 퍼졌으나 사회의 따가운 시선으로 교습이 중단됐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미지 쇄신을 위한 각고의 노력으로 2000년대 이후 평생교육원 교양 강좌, 복지관 프로그램 등 생활 체육을 파고들면서 인식 전환을 꾀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커플댄스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동호회가 운영되고 있다. 유럽 등지에서 새롭게 탄생한 춤까지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환경 개선을 해나가고 있다.

춤을 보고 즐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정작 나 자신이 추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늘 있어왔다. 
춤을 보고 즐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정작 나 자신이 추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늘 있어왔다. 

 어찌 됐건 출 사람은 춘다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커플댄스’를 즐기는 이들은 꽤 있다. 단, 골프나 발레, 요가, 영화감상처럼 ‘이게 내 취미’라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서울의 경우 홍대입구역과 이태원, 강남역, 압구정역 일대, 특별히 60대 이상은 영등포구청역 일대에 댄스 클럽이 활성화돼 있다. 지방은 부산을 비롯해 광주, 구미, 대구, 대전, 순천, 울산, 청주, 제주 등 주요 도시에서 동호회가 움직이고 있다. 최근 코로나 방역 초치가 완화된 틈을 타 그간 열지 못했던 크고 작은 댄스페스티벌과 파티 등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춤의 종류도 다양하다. 앞에서 언급한 탱고, 스윙댄스, 살사와 바차타, 키좀바 등이다. 커플댄스의 경우 남자의 리드로 춤을 추기 때문에 남자의 실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이르면 6개월, 1년 정도는 기본기를 다져야 남자는 파트너와 춤을 출 수 있고, 여자는 3개월 정도면 출 수 있다. 대부분 커플댄스가 한 곡을 추고 손을 놓지만, 키좀바의 경우 3곡 이상을 기본으로 춘다. 시니어들이 추는 지르박, 블루스 등도 몇 곡을 추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 

격식을 갖춰 접근하다 ‘탱고’와 ‘스윙’
탱고는 댄스스포츠 정식종목인 데다 사교댄스의 오명을 가장 적극적으로 벗어낸 장르다. 1880년대 아르헨티나의 부둣가에서 시작했으나, 유럽 상류층 문화와 만나면서 예절과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품격 있고 우아한 커플댄스로 인식되어 왔다. 탱고는 탱고만 추는 전용 공간인 밀롱가(원래는 탱고 음악의 종류이지만, 탱고를 추는 곳으로 혼용함)에 모여 춤을 춘다. 
199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 현지 탱고협회가 공인한 공명규 마에스트로가 아르헨티나 전통 탱고를 한국에 전파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추고 있는 커플댄스 중 실력 면에서 탄탄하다고 할 수 있다. 즐기는 층도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세대 경계 없이 다양하다. 

'스윙프렌즈'의 유튜브 채널, 최근에도 스윙댄스를 추는 영상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스윙프렌즈'의 유튜브 채널, 최근에도 스윙댄스를 추는 영상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스윙댄스는 1920~40년대에 스윙 형식의 재즈 음악과 함께 미국의 할렘을 근거지로 발전한 춤이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스윙댄스 장르 중에서도 ‘웨스트코스트스윙’과 ‘이스트코스트스윙’이 대세이다. 이름에 ‘스윙’이 공통으로 들어가지만, 전문적으로 추는 이들은 음악도 다르고 춤 스타일도 달라 함께 춤을 추지는 않는다. 1999년 나혜석 씨가 영등포 보라매공원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강습했던 것을 시작으로 ‘스위티스윙 동호회’와 ‘스윙스쿨’, '스윙프렌즈' 등을 통해 점차 저변이 확대됐다. 전국에 다양한 동호회가 있고 등록 회원 수만 1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2005년부터 3박 4일간 진행하는 제주스윙캠프가 열렸다.

젊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살사’와 ‘바차타’
현재 가장 대중적이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춤은 살사와 바차타이다. 살사는 1940년대에 생겨나 1950년대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쿠바인과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발전시킨 음악이고 여기에 맞춰 추는 것이 살사댄스다. 바차타는 20세기 전반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원주민, 아프리카, 유럽의 음악적 요소를 가지고 유래한 라틴 음악 장르다. 바차타댄스는 이 음악에 맞춰 춘다. 

두 춤 모두 엇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들어왔다. 춤을 배울 때 살사와 바차타를 함께 배우지만 개인의 선택이다. 살사는 턴이 많고 동작 등이 화려하고 운동량이 많다. 바차타는 살사에 비해 골반을 좌우로 흔들어 이동하고, 웨이브 동작을 많이 사용해 특히 여성스러움이 강조되는 면이 있다. 

바차타는 2010년에 접어들면서 센슈얼 바차타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스타일이 만들어졌고, 한국에는 2014년쯤 도입됐다. 2017년 스페인 댄서 알렉스 알베롤라가 한국에 3개월 체류하며 센슈얼 바차타를 가르쳤고 이때부터 센슈얼 바차타를 추는 이들이 늘어났다. 살사와 바차타 또한 코로나로 인해 축제 등이 많이 축소된 감은 있으나 최근 외국 강사들이 속속 들어와 강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홍대입구역 일대와 강남역, 압구정역 일대에 커플댄스를 출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서울의 경우 홍대입구역 일대와 강남역, 압구정역 일대에 커플댄스를 출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유럽, 키좀바 더 많이 춘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커플댄스인 키좀바도 한국에서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앙골라 노예들이 부두에서 해안을 거닐면서 움직이는 동작이 키좀바가 됐다고 한다. 포르투갈 부부들이 즐긴다고 해서 주로 걷는 춤, 연배 있는 사람들의 춤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키좀바도 전통 키좀바로 줄곧 추다가 몇 년 전부터 ‘어반키즈’라는 장르가 급성장하면서 세련된 젊은이들의 춤으로 재인식됐다. 살사와 바차타의 경우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스텝을 밟지만, 키좀바는 같은 음악이라도 스텝이나 춤에 필요한 동작 등을 댄서가 알아서 해야 하므로 난해하거나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댄서의 수준에 따라 스타일이나 춤선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장르에 비해 늦게 알려진 춤이다 보니 스타일이 달라지는 속도도 유행에 따라 상당히 빠르게 나타난다. 댄서의 역량에 따라 스타일도 제각각이지만 정확한 중심 이동과 파트너 간 간격(프레임), 음악 해석력(뮤지컬리티)이 이 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커플댄스는 남자의 경우 6개월~1년, 여자는 3개월 정도 꾸준히 배워야 파트너와 원활하게 춤을 출 수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커플댄스는 남자의 경우 6개월~1년, 여자는 3개월 정도 꾸준히 배워야 파트너와 원활하게 춤을 출 수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지르박 스텝을 밟고 싶다면?
시니어 세대 댄서가 모이는 커플댄스의 성지는 앞서 밝혔듯 영등포구청 일대이다. 젊었을 때는 전혀 모르다가 은퇴하고 노인복지관이나 문화센터에서 지르박과 블루스 등을 접하고 난 뒤 실제로 춤을 추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이들이 상당수다.
 
시니어들이 자주 정기모임을 위해 모이는 H 클럽의 경우 춤출 수 있는 공간이 살사나 바차타, 키좀바를 추는 곳보다 4배 이상은 크다. 게다가 식당은 물론 음료를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다. 된장찌개나 돼지고기 삼겹살도 사 먹을 수 있다. 
이 일대에서 춤을 췄다는 A씨(65세)는 “문화센터에서 지르박과 라틴, 모던 기초를 배워 춤을 추러 다녔다”며 “(커플댄스를) 배우고 나니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성격이 개선되는 등 사회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음악을 들으면서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운동이 되고, 이성과 함께 추다 보니 자연스레 자기 관리에도 관심 두게 됐다”며 장점이 많다고 밝혔다. 

문화센터나 노인복지관에서 커플댄스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대부분  인기가 상당히 높다. 
문화센터나 노인복지관에서 커플댄스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대부분  인기가 상당히 높다. 

키좀바 강사로 활동하는 윤창선(닉네임 블랙썬) 씨에게 "어떻게 하면 커플댄스를 배울 수 있을까?"하고 물으니 “모든 커플댄스는 길거리 문화”라며 “어떻게 배우든 시작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더 배우고 싶으면 강좌를 찾아 배우고, 그것보다 더 좋아지면 외국에 나가 배우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행복하기 위해 춤을 추는 것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추면 된다고 했다. 바차타 아딕시온 대표이자 키즈미 코리아 전임강사 이보라(보라) 씨는 커플댄스에 대해 “신체 동작을 하는 동안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면서 감정적 교류도 나누는 일종의 감정 치료 같은 것”이라며 “사람과 관계를 좀 더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혹시 지금 사는 게 우울하고 생활에 활력이 없다면 춤에 관심을 둬보면 어떨까.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운동은 물론 마음의 위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은 대한댄스스포츠경기연맹과 전국댄스스포츠연합회를 통합해 2016년에 창립됐다. 댄스스포츠 정식 종목으로는 라틴댄스(삼바, 룸바, 차차차, 파소도블레, 자이브), 스탠더드댄스(왈츠, 퀵스텝, 탱고, 슬로우 폭스트롯, 비엔나왈츠), 브레이킹(비보잉)이 있다.

도움말. 최경진 오름사진작가(스윙댄스) / 윤창선(키좀바) / 이보라(살사, 바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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