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전후 최악의 한일관계 개선을 향한 첫걸음.” 일본 아사히신문이 4년 7개월 만에 양자회담을 위해 방일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 간의 지난달 18일 회담을 보도하면서 쓴 표현이다. 한국 외교장관의 방일은 55개월 만이지만 한일 정상이 상대국을 오가며 소통하던 ‘셔틀외교’는 2011년 1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교토 회담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으니 ‘전후 최악의 한일관계’라는 표현을 쓸 만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요시마사 외상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까지 면담한 박 장관의 이번 방일은 한일관계 복원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겠다.

한일관계가 이토록 악화한 것은 양국 지도자들이 한일관계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인 결과다. 2012년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독도를 전격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이라며 취임 후 2년 8개월간 한일 정상회담을 갖지 못했던 박근혜 대통령, 두 차례에 걸쳐 8년 9개월간 최장수 일본 총리로 재임하면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역사 왜곡 등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심화시켜 한일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야스쿠니신사는 A급 전범들이 합사되었다는 이유로 1978년 이후 일본 천황들도 참배를 거부해 왔는데, 아베는 이를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라고 강변했다.

이렇게 바람 잘 날 없던 한일관계는 문재인 정부 때 거의 파탄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정부는 국가의 영속성을 무시하고 2015년의 한일 위안부합의를 부정하면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일 합의로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을 2019년 일본 정부에 통보도 하지 않고 해산했다. "국가 간 합의를 한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일본이 국제사회에 선전할 빌미를 준 것이다.

또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문 대통령은 "일본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피해는 심각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익과 국제법을 고려하지 않은 ‘사법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의 한 사례로, 한일관계 악화의 결정적 ‘뇌관’이 되었다. 징용·징병 피해자 보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종결된 것으로 보는 아베 정부는 대한 수출규제 조치로 보복했다.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3각 협력도 삐걱거렸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가 미국의 개입으로 막판에 물러섰다.

이번 회담에서 한일 외교장관은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피고 기업 자산에 대한 한국 법원의 현금화가 실행되기 전에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가을로 예상되는 한국 내 일본 전범기업 자산의 강제 매각(현금화)을 앞두고 우리 외교부는 정부 인사와 전문가,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참여한 민관협의회를 가동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피해자 측이 불참을 선언하는가 하면 일본 기업과의 직접 협상을 요구하고 있어 설득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사히신문이 한국 정부가 ‘묘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장관은 이와 관련, 지난주 서울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일본 측에서도 이러한 노력에 대하여 나름대로 상응하는, 성의있는 호응 조치가 있어야 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새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 의사를 적극 표명한 만큼 일본도 이제는 대승적인 자세로 양국 관계 개선 노력에 적극 호응해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한일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숙적에서 최상의 동반자가 된 독불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와 독일은 화해하는데 한국과 일본은 왜 못 하는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래전 필자가 유럽을 잘 아는 한 지식인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기독교권에서는 회개와 용서의 문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속죄하고 피해자는 용서하며 서로 화해하는 문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는 이런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독불 간의 화해 협력과 이를 초석으로 한 유럽 통합은 무엇보다도 독일이 과거사 반성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이는 높은 역사인식과 혜안을 지닌 드골과 아데나워, 미테랑과 콜 등 양국 지도자들이 이끌어낸 것으로, 이들은 유럽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독일의 과거사 반성이 한 번의 협정이나 제스처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독일은 또 이러한 사실을 전 세계에 적극 홍보하여 감동을 주고 있다. 과거사 반성은 독일의 국가 브랜드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고개 숙여 참배를 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갑자기 무릎을 꿇어 전 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2013년 9월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 독일 대통령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1944년 부녀자와 아동을 포함하여 642명의 주민이 독일군에 의해 학살된 프랑스 중부지방의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Oradour-sur-Glane)을 찾아 용서를 빌었다.

2차 대전 이후 역대 일본 천황들은 미국, 유럽(영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동남아, 인도, 남미 등 거의 전 세계를 ‘친선’ 목적으로 순방했다. 1992년에는 천안문 사태로 국제적으로 고립된 중국도 방문했다. 중국의 초청이었다. 그러나 가장 ‘친선’이 필요한 이웃나라 한국은 여태 방문을 못 하고 있다. 한일관계는 아직도 20세기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한일 양국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이 된 한국은 이제 열패의식에서 벗어나 더 큰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 20년 전 일본의 1인당 GDP는 우리의 3배였다. 지금은 거의 비슷하다. 한편 일본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금도(襟度)와 공감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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